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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조나 드림

아리조나 드림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 조니 뎁, 페이 더너웨이, 릴리 테일러, 제리 루이스 (출연)
썬엔터테인먼트
7,7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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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조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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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아리조나 드림 
· 분류 : DVD/블루레이 > 드라마/코미디
· ISBN : 8809154127333
· 출판일 : 2010-03-19

저자소개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    정보 더보기
고교시절부터 단편영화를 찍었으며, 프라하 영화학교 FAMU 연출과를 졸업했다. 졸업 작품 <게르니카>(76)로 1979년 카를로비바리 영화제 학생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1977년에는 방송국에 입사, 두 편의 텔레비전 드라마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이라는 작품은 성적인 노출이 지나치다는 이유로 후에 방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장편 데뷔작 <돌리벨을 아시나요>(80)는 리얼리즘 속에 초현실주의를 도입, '미술적 리얼리즘'을 처음으로 영화안으로 끌어들인 것으로 평가 받는 작품. 몽유병에 걸린 아이의 시선으로 전환기의 유고 사회를 예리하게 통찰한 두 번째 영화 <아빠는 출장 중>(85)이 깐느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션 되기까지 했다. 이후 에밀 쿠스투리차는 세 번째 영화로 찍으려했던 <드리나 강변의 다리>, <뒤호보 종족>과 같은 영화가 기획 단계에서 무산되자 사라예보 연극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금연'이라는 록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했다. 1989년 깐느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고 '까이에 뒤 시네마' 선정 세게 영화 걸작 10편 중에 하나로 선정된 <집시의 시간>으로 쿠스트리차는 '발칸의 펠리니'라는 찬사와 함께 거장에 대열에 합류한다. 쿠스트리차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절정에 달했다는 평가를 들은 이 작품은 집시 토착어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관객 동원 신기록을 수립하는 등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아리조나 드림>에서는 한 평범한 청년이 주변인으로 밀려난 몽상가들과 만나면서 겪게 되는 내면의 성장을 그린 것으로 잃어버린 것이 많은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가슴을 되찾게 해주는 아름다운 어른을 위한 동화였다. 쿠스투리차 감독이 헐리우드에서 다시 보스니아 내전으로 전쟁의 불길에 휩싸인 그의 조국 유고를 다시 찾은 것은 1995년이었다. 그는 마치 유고의 자전적 이야기인 듯한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전쟁의 허상과 몽환, 초현실주의적 결말을 내렸다. 그러나 에밀 쿠스투리차는 이 작품으로 한바탕 격전에 처한다.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철학이 부재한 채 화려한 수사학만이 존재하는 서커스라는 비평 외에도 베르나르 앙리 레비 감독이 세르비아의 선전물이라고 정면공격하여 극단의 상황에까지 다다르다가 결국 에밀 쿠스투리차의 은퇴 선언까지 유발시켰다. 세계적인 대감독의 은퇴선언은 영화계에서 가히 충격적이었다. 세계 영화계에서는 한명의 영화 거장을 손실했다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에밀 쿠스투리차는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를 발표하면서 그간의 은퇴선언을 불식 시키며 화려하게 현장으로 돌아왔다.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은 영화감독으로서 만큼이나 정치적인 운동가로서도 유명한데, 세르비아인들의 권리와 민족주의 운동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여오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세르비아의 강력한 민족주의 운동 지도자에게 벨그라드 한복판에서 정오에 상대방이 원하는 무기로 결투를 하자는 도전장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예술가를 죽인 살인범이 되고 싶지 않다는 민족주의 운동 지도자의 거절로 이 결투는 성사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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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뎁 (출연)    정보 더보기
메이저 작품보단 실력있고 뛰어난 감독들의 작품을 선택해 개성있는 외모와 연기로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연기파 배우. 팀 버튼, 에밀 쿠스트리차, 짐 자무쉬 등 세계적인 거장 감독들이 아끼고 욕심을 내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1997년 깐느 공식 경쟁 부문에 오른 <브레이브>로 감독으로서 재능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P'라는 록밴드를 결성해 음반을 발매한 실력있는 기타리스트이기도 한 재주꾼. 켄터키의 오웬스보로에서 태어났으며 플로리다에서 성장했다. 15세에 학교를 그만 두고 록 음악 뮤지션을 지망하여 밴드 활동을 했다. 1984년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나이트메어>에서 주인공의 친구 역을 맡으며 데뷔했다. TV 시리즈 <21 점프 스트리트>를 통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1990년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에서 에드워드 역을 맡으며 전 세계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크라이 베이비><베니와 준><길버트 그레이프><에드 우드> <데드 맨><도니 브래스코><슬리피 할로우><프롬 헬><캐리비안의 해적>시리즈 등 수많은 작품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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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 더너웨이 (출연)    정보 더보기
1960-70년대 가장 섹시하면서도 지적인 느낌의 여배우. 1941년생으로, 본명은 도로시 페이 더너웨이(Dorothy Faye Dunaway). 군인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여러 기지들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플로리다 대학에 들어갔다가 보스턴 대학에서 예술 대학을 마쳤다. 그리고 62년에 링컨 센터의 레퍼터리 극단에 들어갔다. 그녀는 장기간의 연극무대 경험을 쌓았고 영화로도 유명한 '4계의 사나이(A Man For All Seasons)'와 아서 밀러의 '타락 이후(After The Fall)' 등의 무대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67년에 영화 데뷔를 한 그녀는, 여배우치고는 늦은 데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67)의 명연으로 첫 주연작에서 일약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보다 몇개월 앞서 발표된 실질적인 데뷰작 의 참담한 실패를 보기좋게 만회한 것이다. 그후로 꾸준한 활약을 보이고 있는 그녀는, 1974년 <차이나타운(Chinatown)>으로 일생 일대의 명연을 보였으나 아카데미상에서는 후보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2년만인 1976년에 마침내 <네트워크(Network)>에서 냉정하기 그지없는 방송국 간부로 아카데미상을 차지했다. 1976년의 <존경하는 어머니>에서는 과거의 명우들 중 그녀의 이미지와 가장 가까운 원로 여배우 존 크로포드(Joan Crawford)의 역으로 격찬을 받았고, 1987년에 믹키 루크와 공연한 알콜 중독을 다룬 드라마 <선술집/술고래(Barfly)>는 그녀의 80년대를 대표할 만한 명연을 보여주었다. 우리에게는 송대관의 "해뜰날"을 표절했다는 화제꺼리를 제공하기도 했던 대히트곡 "Centerfold"로 유명한 록 그룹 제이 가일스 밴드(J.Geils Band)의 리드 싱어였던 피터 울프(Peter Wolf)와 결혼을 하기도 했었으나 짧게 끝나고 말았다. 그전에는 유명한 프로듀서 루 애들러(Lou Adler)와 동거를 하기도 했으니, 팝 뮤직계의 남자들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 비교적 많은 작품이 소개된 배우라고 하겠는데, 그녀가 주로 개성이 강한 연기파였음을 생각해본다면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만큼 그녀의 연기나 개성이 우리나라 관객들의 정서에도 제법 들어맞을 만큼 동양적인 면모도 갖추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준다. 때로는 차가울 정도로 이지적이고 냉정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고, 운명에 흔들리는 가녀린 여인 역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뜨거움과 차거움이 섞인 개성이 그녀의 매력이며, 여기에 뛰어난 연기력이 그녀를 정상으로 올려놓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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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테일러 (출연)    정보 더보기
‘릴리 테일러’는 1988년 ‘줄리아 로버츠’와 함께 출연한 <미스틱 피자>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는다. 데뷔 후 매력적이고 개성 있는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은 ‘릴리 테일러’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7월 4일생>,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숏 컷> 등에 출연해 자신의 매력을 맘껏 뽐낸다. 이후 1996년 <나는 앤디 워홀을 쐈다>에서 실제로 ‘앤디 워홀’을 저격한 ‘발레리 솔라나스’ 역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시애틀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비롯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주목 받으며 헐리우드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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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루이스 (출연)    정보 더보기
일찍부터 코미디언을 지망했던 제리 루이스는 1946년 딘 마틴을 만나 함께 콤비로 클럽 무대에 서게 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해 1951년 <군대와의 전쟁>으로 영화에서도 스타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루이스-마틴 콤비는 1956년 <할리우드로 갑시다>까지 모두 13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등장해 절대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마틴과의 콤비가 깨어진 후에 제리 루이스는 <청소년 범죄>에서 혼자 주연을 맡아서도 역시 인기를 끌게 된다. 코미디 영화의 대가인 프랭크 타슐린의 작품에 다수 출연하면서 직접 연출을 할 생각을 가진 그는 1960년 <벨보이>로 감독 데뷔를 하게 된다. 거의 플롯이라할 것이 없는 이 영화에서 그는 거의 시청각적인 실험이라 할만한 연출을 선보임으로써 그의 작가로서의 야심이 만만치않은 것임을 보여준다. 그 이후에도 <너티 프로페서>, <패치>, <가족의 보물>등의 걸작을 발표함으로써 그의 지위는 부동의 것이 된다. 제작, 각본, 감독, 주연을 한꺼번에 해냈던 제리 루이스는 그의 자서전 제목대로 진정 ‘총체적 영화 작가 total filmmaker’였을 뿐만 아니라 영화만들기에 대한 나름의 성찰에 있어서도 당대의 할리우드에서 비견할만한 인물이 없었다고 할만 하다. 전성기에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제리 루이스는 2009년 81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며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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