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 (목소리)
정보 더보기
영화배우이자 감독, 각본가, 제작자, 무술가. 액션영화의 살아 있는 전설. 1954년 4월 7일 영국령 홍콩 빅토리아피크에서 태어났다. 정식으로 호적에 올린 이름은 ‘진항생(陳港生)’이었으나, 2차 국공 내전 당시 도피 생활을 하던 그의 아버지가 방도룡에서 진지평으로 이름을 바꾼 사실이 알려진 뒤 ‘방사룡(房仕龍)’이라는 이름을 본명으로 사용한다. 전 세계인이 부르는 영어 이름은 ‘재키 찬(Jackie Chan)’이다.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얌전한 아이가 아니었던 그는 툭 하면 발길질을 해댔고, 무려 12개월 만에 5.5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몸무게로 태어나 의사와 가족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때 그의 어머니의 나이가 마흔이었다. 이 ‘우량아’의 탄생 소식은 지역 신문에도 실렸다. 프랑스 영사관에서 주방장과 하녀로 일하던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소학교에 입학했지만 1학년도 채 마치지 못하고 장난을 많이 친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7살 무렵 그의 부모님은 우점원 사부가 가르치는 중국희극연구학원(희극학원)에 그를 맡겨놓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호주 주재 미국 영사관으로 떠났다. 희극학원에서는 경극배우가 되는 것을 목표로 수면 시간 6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무술과 연기 수련을 반복했다. 이때 만난 선후배들이 나중에 홍콩 영화계를 휘어잡은 홍금보, 원표, 원태 등이다. 그들은 경극공연 외에도 영화판을 전전하면서 일당을 받고 촬영장의 허드렛일이나 단역 무술배우로 일했다.
17살에 10년간의 희극학원 생활을 마치고 세상으로 나온 그는 영화판에서 밥벌이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새벽 버스에 올라 쇼브라더스의 촬영장으로 가서 차이고 넘어지고 찔리는 엑스트라는 물론 시체 역할까지 닥치는 대로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이후 무술배우로, 무술감독으로 차츰 영역을 넓혀가며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모두 흥행에 참패한 뒤 부모님이 있는 호주로 돌아가 낮에는 공사장에서, 밤에는 식당에서 일하며 다시 찾아올 기회를 기다렸다. 얼마 후 <신정무문>(1976)에 캐스팅되어 다시 홍콩으로 돌아왔고, 이때부터 예명을 ‘진원룡(陳元龍)’에서 ‘성룡’으로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원화평이 감독한 <사형도수>(1978), <취권>(1978)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그가 직접 감독한 <소권괴초>(1979)까지 연달아 성공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골든하베스트로 옮겨 감독하고 출연한 첫 작품 <사제출마>(1980)는 홍콩의 영화 흥행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배틀 크리크>(1980)로 할리우드에 처음 진출했고 <홍번구>(1995)로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대역 없는 고난도의 스턴트신을 직접 찍기로 유명한 그는 영화 촬영 도중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지만 예순이 넘은 지금도 관객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면 부상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다고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영화에 관한 한 완벽을 추구하는 그는 마음에 드는 한 장면을 얻기 위해 찍고 찍고 또 찍기로 유명한데, <용소야>(1982)는 한 장면을 무려 2900번 반복 촬영해서 ‘최다 반복 촬영 장면’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또한 2012년에는 ‘가장 많은 스턴트를 하고도 생존한 배우’, ‘한 영화에 가장 많은 이름을 올린 사람’(<차이니즈 조디악>)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을 가장 존경하며, 아내 임봉교, 아들 방조명이 있다.
펼치기
루시 리우 (출연)
정보 더보기
루시 리우는 1967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이민자의 자녀로 인종적 차별을 받으며 자랐다. 1986년 스튜브샌트 고등학교를 졸업한 루시는 뉴욕대학에 다니다가 1987년 대학을 미시간대학으로 옮기면서 중국언어와 문화를 전공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녀는 로스엔젤레스에서 날품을 하면서도 오디션을 보면서 연기자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던 중 <비버리필즈>에서 웨이트리스 역으로 배우로서의 길을 시작하게 된다.
루시 리우는 <제리 맥과이어>에서 탐 크루즈의 예전 여자친구로 나오는 등 단역에 머물렀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동양배우들이 헐리우드로 진출하면서 그녀는 기회를 얻게 된다.성룡의 <샹하이 눈>으로 그녀는 메이저 영화의 첫 주연을 맡게 된다. 그 후 <미녀 삼총사> 시리즈에 출연하여 세계적인 배우 대열에 들어선다.
세계적인 배우로 인정받고 있기는 하지만 동양적인 액션 이미지는 그녀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녀는 많은 액션 영화에 출연하면서 동양적인 액션 이미지를 빌리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사납고 폭력적인 여성을 연기할 경우가 많지만 그녀의 실제 모습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녀는 <미녀 삼총사>로 2000년 에미상 코미디 부문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었고 폭스 TV의 인기 시리즈물 <엘리 맥빌>과 <펄>등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멜 깁슨 주연의 <페이백>,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의 <플레이 잇 투더 본>에서 주목받는 연기를 선보였다. 에서 만난 조지 클루니와 한때 열애를 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녀는 동양적인 액션 이미지를 탈피하려 노력하고 있고 성공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미녀 삼총사 : 맥시멈 스피드> 이후 <킬빌>에서는 '더 브라이드'역의 우마 서먼과 대적하는 '오렌 이시' 역으로 나오며, 그녀의 액션 이미지는 <킬빌>에서 빛을 발한다.
펼치기
안젤리나 졸리 (지은이)
정보 더보기
본명은 안젤리나 졸리 보이트(Angelina Jolie Voight).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존 보이트의 딸이다. 어머니는 한때 배우로 활동했던 마셀리니 베르뜨랑. 2살 때 부모가 이혼하자 오빠와 함께 어머니를 따라 뉴욕에서 힘든 생활을 했다.
그녀는 아버지 존 보이트 덕분에 어린시절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12살 때 명문 리 스트라스버그 연기학원에서 연기수업을 시작, 몇편의 연극무대에도 선 경험이 있다. 그녀는 모델로 활동할 당시 롤링 스톤즈, 미트 로프 등 여러 유명 뮤지션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여 이름을 알리게 된다. 1993년 소규모 독립영화 <사이보그 2>로 영화계에 데뷔했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는 못했고, 10대 해커들의 천방지축 해프닝을 그린 <해커스>를 통해 정식 장편영화에 데뷔하고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 함께 공연한 자니 리 밀러가 첫 남편이다. 20살 때 조니 리 밀러와 갑작스럽게 동거를 하다가 몇달 뒤 조그만 교회에서 졸리의 어머니와 몇몇 친구만 불러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1년 뒤 별거에 들어갔으며 다시 2년 후 이혼했다.
1997년 졸리는 <조오지 월리악>에서 조지 윌리스의 아내로 출연하여 나이답지 않은 무게감 있는 연기로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라스트 타임>에서 숀 코너리를 비롯하여 질리안 앤더슨, 나스타샤 킨스키, 라이언 필립, 데니스 퀘이드 등과 호흡을 맞추었고 <에어 컨트롤>에서는 성격파 배우 존 쿠삭과 대등한 연기를 펼쳐 보인다. 특히 안젤리나 졸리는 이 영화에서 부부로 함께 출연했던 22년 연상의 빌리 밥 손튼과 결혼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키도 했지만 결혼생활 3년여만에 파경을 맞았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 정신병 환자로 출연해 신들린 연기로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본 콜렉터>에서는 여수사관 아멜리아역을 맡아 함께 출연한 덴젤 워싱턴에 비해 부족함이 없는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01년, 동명의 인기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 <툼 레이더>에서 여전사 라라 크로프트를 역할을 맡으며, 여전사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킨다.
이후, <테이킹 라이브즈>, <툼레이더2>,<어느날 그녀에게 생긴 일>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간다. 국제 구호운동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안젤리나 졸리는 <머나먼 사랑> 출연 이후 UN산하의 국제난민고등판무관기구(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의 명예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5년 <미스터&미세스 스미스>에 함께 출연한 브래드 피트와 사랑에 빠지며 브란젤리나 커플이란 이름으로 세기의 커플이 된다. 3명의 자녀를 낳고 3명의 자녀를 입양하며 브래드 피트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펼치기
잭 블랙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92년 팀 로빈스 감독의 <밥 로버트>로 데뷔한 잭 블랙은 이후 <데드 맨 워킹> <케이블 가이> <더 팬> 등 수많은 작품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경력을 쌓아나갔다. 2000년 그는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 존 쿠삭 주연의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 레코드점 점원 ’베리’ 역을 맡아 본인 특유의 매력이 듬뿍 담긴 코믹 내공을 십분 발휘하며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국내에선 기네스 팰트로와 호흡을 맞춘 로맨틱 코미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를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후 잭 블랙은 학생들에게 록음악을 가르치는 음악 선생님 ‘듀이 핀’으로 열연한 <스쿨 오브 락>으로 2004 MTV영화제 코미디 연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연기뿐 아니라 음악에도 천부적인 소질을 지닌 잭 블랙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배우인 카일 가스와 함께 ‘터네이셔스 D’라는 밴드를 결성, 동명의 TV시리즈와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지속적인 활약을 하고 있다. 또한, 애니메이션 <아이스 에이지> <샤크>에서 더빙 연기를 맡으며 개성 강한 목소리로 인정받은 그는 2008년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애니메이션 <쿵푸팬더>의 주인공 식신 팬더 ‘포’의 목소리를 연기하며 전세계 영화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자신만의 특별한 매력과 끼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펼치기
더스틴 호프먼 (출연)
정보 더보기
살아있는 전설! 금세기 최고의 배우.
더스틴 호프만은 샌터 모니카 시립 대학교를 다니다 패사디나 플레이 하우스를 거쳐 뉴욕에서 연극무대에서 배우로 연기를 시작한다. 연극무대에서의 그의 연기를 눈여겨 보았던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그를 <졸업>의 주인공역에 캐스팅하고, 이 영화로 더스틴 호프먼은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졸업>에서 그는 기성 사회에 처음 들어선 신선한 소박한 연기와 함께 기성사회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존 슐레진저의 <미드나잇 카우보이>로 두 번째로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더스틴 호프먼의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작은 메릴 스트립과 공연한 로버트 벤튼 감독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자식을 빼앗길 것 같은 아빠의 초조함과 불안함을 보여준다.
그의 두 번째 아카데미 수상작은 배리 레빈슨 감독의 <레인맨>으로 이후 총 두 번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일곱 번 노미네이트 되었다. 그외에 그의 대표작으로는 <작은 거인>,<빠삐용>,<대통령의 음모>,<후크>,<리틀 빅 히어로>,<딕 트레이시>,<슬리퍼스> 등이 있다. 또한, 존 트라볼타와 공연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매드 시티>와 로버트 드 니로와 공연한 배리 레빈슨의 <왝 더 독>이 있다.
영화 뿐 아니라 연극에서도 탁월한 연기력을 선보인 그는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에 출연해 Drama Desk상, 최고 배우상과 에미상을 수상했다.
더스틴 호프먼은 2004년 한국에서 개봉한 <런어웨이>에서는 진 해크만과 처음으로 연기 대결을 펼친다. 그들은 학창시절을 같이 보내고 같은 방에서 생활한 적도 있는 친구 사이이기도 하다.
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