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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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대만 핑둥현의 차오저우에서 태어났다. 예술과는 거리가 먼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1973년 대만국립예술원에 입학했고 1978년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언어 문제로 연기에 어려움을 겪고 영화 연출로 진로를 바꿔 뉴욕대학교 필름 스쿨에 들어갔다. 졸업 후 6년간 장편영화 연출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대만 시나리오 공모전에 직접 쓴 <쿵후 선생>이 당선되어 1992년에 데뷔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문화적 아웃사이더로 살았던 경험, 영화 공부를 반대했던 아버지가 상징하는 전통문화와의 갈등은 데뷔작을 포함해 이후 연출작들이 다루는 주제에서 잘 드러난다.
성공적으로 데뷔한 후 ‘장르를 불문한’ ‘다재다능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장르와 시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다. 1990년대에 대만 가족드라마 삼부작과 제인 오스틴 원작의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연출하고 2001년 중국 무협 영화 <와호장룡>을 발표했다. 이후 코믹 북으로 눈을 돌려 <헐크>(2003)에 도전했고 미국 서부 카우보이 로맨스 <브로크백 마운틴>(2006)을 세상에 내놓았다.
장르뿐 아니라 영화 기술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아 <라이프 오브 파이>(2012)를 통해 3D 영화의 신기원을 열었다. <빌리 린의 롱 하프타임 워크>(2016), <제미니 맨>(2019)에서는 초당 120프레임을 통해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관객에게 선사하려 노력하고 있다. 영화를 향한 이런 열정을 인정받아 <브로크백 마운틴>과 <라이프 오브 파이>로 아시아인이자 비(非)백인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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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경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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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경은 1962년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중국인인 그녀는 말레이시아 화교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스포츠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양자경은 4살 때 토슈즈를 신기 시작해 15살 때 영국으로 건너가 무용을 공부한다. 그러나 그녀의 발레 인생은 우연한 사고로 인해 막을 내리게 되고, 이 사고가 그녀의 전공을 바꾼 계기가 된다.
이후 양자경은 창조 예술분야에서 예술학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 영국에서 공부를 계속한다. 20살 때는 말레이시아로 돌아와 미스 말레이시아 1위에 입상한다. 연예계 데뷔는 미스 말레이시아로 뽑힌 후 <데브록곤의 쾌도신사>(1984)에 캐스팅되면서 이루어진다.
두번째 작품이 바로 여성 액션물 <예스마담>인데 양자경은 <예스 마담>시리즈를 통해 큰 인기를 얻게 된다. 모두 3편까지 나온 이 시리즈는 홍콩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선풍을 일으켰다. 온몸을 던져 남성을 능가하는 박력있는 액션 연기를 펼친 그녀는 이 시리즈의 인기 이후 결혼과 함께 은퇴한다.
그러나 4년 후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3>로 컴백했고, 이후 할리우드에까지 진출해 <007 네버다이>에서 최초의 동양인 본드걸로 출연하게 된다. 이전까지의 예쁘기만 한 본드걸이 아니라 007과 대등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여전사의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해 세계적 스타로 도약하고 있다.
이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와호장룡>에서 평생 드러낼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무림인으로 관객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와호장룡>으로 영국 아카데미 주연여우상, 새턴 어워드와 BAFTA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아시아를 뛰어넘어 글로벌 스타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데뷔 이후 액션과 연기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대배우로 거듭난 그녀가 있기에 <게이샤의 추억>의 캐스팅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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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발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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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화, 장국영과 함께 홍콩 느와르 영화의 붐을 이끈 주역.
홍콩 라마섬의 한 어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가 10살 때 도시로 이주했다. 고교를 졸업 후 가정이 빈곤하여 가전제품 공장의 공원으로 일하다가, 73년 친구들과 함께 TV 방송국 탤런트 양성소에 들어가 연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양성소를 졸업한 후 1년만인 74년 TV 드라마 주연을 맡게 되어 상하이의 암흑가를 묘사한 TV시리즈 <상해탄> 등으로 인기를 얻게 되고 영화로 진출. 한동한 평범한 작품에 진출하다 여류감독 허안화의 <호월적고사>에서 연기한 베트남 출신의 살인 청부업자역으로 절찬을 받고 84년 <등대여명>으로 아시아영화제와 대만 금마장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86년 <영웅본색>으로 일약 대스타에 올랐고, 그해 주연급 배우로서는 최초로 한 해에 12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기록을 세웠다. <영웅본색>과 90년 <아랑>으로 홍콩 금상장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아시아 인기 절정이었을 94년 5월 19일 내한했다. 1993년 그는 홍콩 영화계와 맺은 장기 계약을 해지하고 미국으로 진출, <커럽터>과 <리플레이스먼트 킬러>에 출연했다.
2000년 오스카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던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헐리우드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 피플지의 '50명의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에 선정되는가 하면, 2007년 개봉 예정인 <캐리비안의 해적3>에 캐스팅 되는 등 글로벌 스타로써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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