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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26762134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13-11-1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 열여덟, 반짝이는
#2. 아버지의 바다
#3. 개어귀
#4. 연풍
#5. 메밀꽃
#6. 해미
#7. 풍랑
#8. 은애의 바다
#에필로그
작가 후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한낮의 뜨거운 태양열로도 완전하게 건조하지 못했던 비린내와 특유의 짠 소금 냄새가 어두운 밤을 지나 새벽이 다가오자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서부터 느껴지는 어촌 특유의 공기와 냄새는 어선들이 입출항을 하는 포구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더욱 진하고 강했다. 외지인들에게는 자칫 미간이 찌푸려질 수도 있는 냄새지만 바다를 생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치열한 삶의 냄새였다.
저마다 노란색 플라스틱 상자들을 전리품처럼 늘어놓은 어선들이 부두로 몰리기 시작하면, 어선들 머리 위에는 너무 작아서 팔 수 없는 생선들이 바다로 던져지기를 기다리는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며 공중을 선회하는 장관이 펼쳐진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한창 포구가 붐비고 북새통을 이룰 때의 일이었다.
“어떠냐? 마을이 소담하고 정답지?”
아들과 처음 하는 낚시 여행이 다정하지만 근엄하기도 한 아버지의 기분을 즐겁게 만든 듯했다. 아버지는 이른 시각, 아직은 서늘한 공기 속에서도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다음에 배 한창 들어올 때 같이 와 보자. 지금은 조업 철이 아니어서 조용하지만 그때 되면 북적북적하고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찾아온 작은 어촌은 아직 어스름한 새벽안개에 젖어서인지 아버지가 말한 북적북적한 북새질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제가 들게요.”
자가용 트렁크에서 낚시 가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 어선이 정박되어 있다는 포구로 향했다.
“벌써 나와 있었네. 일찍 나왔는가?”
물기가 덜 마른 콘크리트 바닥을 밟으며 아버지의 뒤를 따르다 보니 열을 맞추어 늘어선 어선들이 눈앞에 보였다. 그리고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 연배로 보이는 남자는 오늘 우리를 바다낚시에 데려다 줄 배의 선장인 것 같았다.
“나가기 전에 점검 좀 해야 해서 미리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누굽니까?”
“우리 아들. 내가 말했던 내 장남이야. 너도 인사드려라. 오늘 우리 태워 주실 선장님이고, 아버지 친구다.”
선장에게 먼저 나서서 인사를 건넸다. 거친 바닷바람과 강렬한 태양 빛에 단련된 남자는 선해 보였고 자상한 인상이었다.
“이사장님도, 친구라니요?”
선장은 아버지의 소개에 민망해하는 것 같았다.
“내가 자네보다는 몇 살 많지만 이 나이 되면 다 그렇게 친구 하는 거지, 뭐. 친구 하기로 한 지가 언제인데 그러나?”
아버지는 진심으로 선장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오랜 왕래로 맺은 인연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질 만큼 격의 없이 대하고 있었다.
“아버님이 자네 자랑할 만하구만.”
의외의 이야기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어디 가서 드러내 놓고 자식 자랑할 만한 분이 아니다.
“말씀은 많이 안 하셨어도 아들 얘기 하면 든든하게 여기시는 게 보였지.”
아버지가 이번 바다낚시를 기뻐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남자들의 꿈 중 하나가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와 함께 낚시를 하러 다니는 것 또한 아버지에게는 은근한 꿈인 듯했다. 처음으로 하는 부자간의 낚시 여행에 기대가 컸는지 평소 낚시 모임을 하던 지우들도, 늘 대동하는 운전기사도 물리치고 두 사람만 내려왔다. 그래서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아들 없는 곳에서 여느 평범한 아버지들처럼 자식을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다.
먼저 배에 오르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그 뒤를 따라 올랐다. 배의 조타실을 돌아 반대편으로 가서 낚시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새 새벽빛이 물러가고 이른 아침빛이 들어차고 있었다.
“아버지!”
고요한 바다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아침 하늘빛처럼 싱그럽고 맑은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조타실에 가려서 소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나가신 줄 알았어요.”
맑은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옮겨 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할 뻔했다.
“왜 나왔어? 들어가서 더 자.”
소녀는 선장의 딸인 듯했다.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 생각이 안 나서요.”
“했어, 잠결에.”
“그래요?”
“응. 소라도 잡아 오고, 펭귄도 잡고, 돌고래도 잡아 오라고 네가 했어.”
“이익! 아버지!”
선장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렸고 이어서 소녀의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누가 들어도 사이좋은 부녀지간이었다. 아버지와 딸의 대화에 자연히 귀 기울여지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저씨가 네 아버지 대신 펭귄이랑 돌고래 꼭 잡아다 주마.”
어느새 아버지가 뱃머리를 돌아서 선장이 있는 쪽으로 갔다. 아버지의 농담에 소녀가 뭐라고 작게 대꾸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장의 딸까지 알고 있는 것을 보니 아버지는 이들과 생각보다 더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았다.
잠시 후, 인사 소리가 나고 소녀가 돌아가는 듯했다. 곧이어 선장도 갑판 위로 올라왔고 배는 곧 바다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