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고전 > 우리나라 옛글 > 산문
· ISBN : 9788928403196
· 쪽수 : 164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_ 짧은 글, 긴 여운의 아름다운 소통
제1부 일상 _ 삶에 숨을 불어넣다
처마의 빗물은 똑똑똑 떨어지고 | 허균이 이재영에게
요사이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 이지함이 서기에게
밤비가 아침까지 내렸습니다 | 신정하가 벗에게
창 모서리에 뜬 봄 별을 오이처럼 따다가 | 조희룡이 친구에게
제2부 예술 _ 영혼의 대화를 나누다
앞에는 시내가 흐르는 집 한 채를 그려 주게 | 허균이 이정에게
산중에서 하룻밤 묵고 나니 | 김정희가 초의에게
당분간 달 밝은 저녁이면 | 박지원이 홍대용에게
바람결에 그리워 편지를 씁니다 | 김정희가 이하응에게
제3부 학문 _ 함께 꿈꾸는 세상을 일구다
천년 전의 옛사람도 벗 삼거늘 | 홍대용이 주문조에게
사해는 다 형제입니다 | 홍대용이 손유의에게
어린아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다가 | 박지원이 유한준에게
가난은 선비의 분수이고 | 강지덕이 남편에게
나도 책이 없고 그대도 책이 없지만 | 이덕무가 윤가기에게
이 봄도 다 가고 있습니다 | 이덕무가 백동수에게
제4부 삶 _ 궁핍한 시절을 위로하다
줄곧 날씨가 좋지 않습니다 | 신정하가 김제겸에게
작별한 후로 건강하신지요 | 홍대용이 반정균에게
양주의 학이 어디 있겠습니까 | 박제가가 박지원에게
문 앞의 빚쟁이는 기러기처럼 | 박지원이 서중수에게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기에 | 이덕무가 이서구에게
걱정스럽고 그리운 마음 그지없네 | 허목이 윤휴에게
나의 고심을 저버리지 말아라 |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친필을 담은 척독 일곱 장 | 참고 자료
책속에서
제1부 일상 삶에 숨을 불어 넣다.
처마의 빗물은 똑똑똑 떨어지고
처마의 빗물은 똑똑똑 떨어지고 향로의 향냄새 솔솔 풍기는데 지금 두엇 친구들과 맨발 벗고 보료에 앉아 연한 연근을 쪼개 먹으며 번뇌를 씻어 볼까 하네. 이런 때에 자네가 없어서는 안 되겠네. 자네의 늙은 마누라가 으르렁거리며 자네의 얼굴을 고양이상으로 만들겠지만 위축되지 말게. 문지기가 우산을 받고 갔으니 가랑비쯤이야 족히 피할 수 있을 걸세. 빨리빨리 오시게나. 모이고 흩어짐이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런 모임이 어찌 자주 있겠는가. 헤어지고 나면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을 것이네.
성소부부고, 《허균이 이재영에게 쓴 편지與李汝仁》 무신년 7월
허균의 척독은 친구가 생각나게 하는 힘이 있다. 어떤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얼굴 볼 수 있는 사이가 친구이며 연근 한 조각이라도 나눌 수 있음에 마음 설레게 하는 이가 친구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한다. 벗이라는, 친구라는 그 말만으로도 든든해지고 마음 편해지게 해주는 척독이다. 이 글에서 여름날의 시름과 번뇌를 씻어 줄 매개체는 비와 향, 연근 그리고 친구다.
제2부 예술 영혼의 대화를 나누다
산중에서 하룻밤 묵고 나니
산중에서 하룻밤 묵고 나니 마치 번뇌에서 벗어나 삼매三昧의 경지로 들어선 것 같았네. 다만 잠꼬대 같은 소리로 스님들에게 괴이한 꼴을 보였으니 놀림과 꾸지람을 받기에 충분하네. 그대의 편지를 받고 보니 이승에서 다 맺지 못한 인연을 다시 잇는 듯하여 기쁘고 고맙네. 해붕 스님은 여전히 잘 지내시는가?
한번 맺어진 정을 끊어 버릴 수가 없네. 어김없이 반복되는 속인의 따분한 일뿐이라 그대에게 들려줄 만한 게 없네. 이번에 보내는 염주는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의 수에 맞춰 원래는 마흔두 알이었는데 2개가 깨져 버렸네. 한스럽지만 어쩌겠나.
완당전집阮堂全集, 《김정희가 초의에게 쓴 편지與草衣》 1
김정희는 초의와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자신의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초의의 안부를 묻기도 하면서, 때로는 차를 보내 달라는 요구도 했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이지만 그들의 편지에는 특별한 우정이 배어 있다. 유교 사회에서 유학자와 출가 수행자로 만나 수십 편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그들은 아름다운 만남을 이어 갔다.
제3부 학문 함께 꿈꾸는 세상을 일구다
천년 전의 옛사람도 벗 삼거늘
일찍이 ‘인생의 즐거움이란 벼슬길에 나가서는 군신 간에 뜻이 맞는데 있고, 초야에 묻혀서는 붕우 간에 마음이 맞는 데 있다.’ 생각하였네. 군신 간에 뜻이 맞는 즐거움은 명운이 따라야 얻을 수 있고, 붕우 간에 마음이 맞는 즐거움은 도의를 지녀야 얻을 수 있네.
담헌서, 《홍대용이 주문조에게 쓴 편지》
홍대용은 임금과 신하 간에는 서로 뜻이 맞아 믿고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친구 사이에는 마음을 알아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벗 사이에 벗이 될 수 있는 만큼의 도道가 있으면 천년 전의 옛사람도 벗을 삼는다고 했다. 홍대용은 그런 도를 바탕으로 중국의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었기에 국적이 문제 되지 않았다.
제4부 삶 궁핍한 시절을 위로하다
문 앞의 빚쟁이는 기러기처럼
문 앞의 빚쟁이는 기러기처럼 줄 서 있고
방 안의 취한 놈들 고기 꿰미마냥 잠을 자네.
이 시는 당나라 때 한 호걸이 지은 시입니다. 지금 나는 썰렁한 방에서 외로이 지내는데, 담담한 모양새는 마치 참선에 든 중과 같습니다. 다만 문 앞에 기러기처럼 늘어선 자들의 두 눈깔이 너무도 가증스럽습니다. 늘 비굴하게 핑계를 늘어놓을 때면 도리어 등?·설薛의 대부를 떠올릴 뿐입니다.
연암집, 《박지원이 서중수에게 쓴 편지與成伯》
박지원의 척독에는 유난히 자신의 빈궁한 상태를 드러낸 글이 많다. 그는 대대로 서울에서 살던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났지만 조부 슬하에서 자라다가 조부가 죽고 나서 생활이 곤궁해졌다. 1765년에 처음 과거에 응시하여 낙방했고 이후로는 과거 시험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 전념했다. ……
“등·설의 대부를 떠올릴 뿐”이라는 것은 《논어》《헌문憲問》편에 공자가 “맹공작은 조나라나 위나라의 가로家老가 되기에는 충분하지만 등나라나 설나라의 대부大夫는 될 수 없다.”고 한 말에서 비롯되었다. 맹공작이라는 인물은 청렴하고 욕심이 없지만 나라를 다스릴 재주는 없으니, 약소국인 등나라나 설나라의 대부가 되면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고생이 심할 것이라는 의미다. 박지원은 등과 설에 빗대어 가난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자신의 무능함을 탄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