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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윤 교수와 함께 읽는 허생전 / 양반전

최성윤 교수와 함께 읽는 허생전 / 양반전

박지원 (지은이), 최성윤 (엮은이)
서연비람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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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윤 교수와 함께 읽는 허생전 / 양반전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최성윤 교수와 함께 읽는 허생전 / 양반전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우리나라 옛글 > 산문
· ISBN : 9791189171575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3-07-31

책 소개

서연비람 고전 문학 전집 다섯 번째 작품으로 연암 박지원의 한문 단편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아홉 편을 묶어 낸다. 「허생전」, 「호질」, 「양반전」 세 편의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익숙한 작품들과 최근에 여러 선집에 수록되어 읽히고 있는 「광문자전」, 「예덕선생전」, 「민옹전」, 「김신선전」, 「마장전」, 「열녀함양박씨전」 등 나머지 여섯 편의 이야기도 수록했다.

목차

책머리에
『허생전/양반전 』를 읽기 전에

허생전
옥갑야화 하나, 배은망덕한 역관의 최후
옥갑야화 둘, 역관의 은혜에 보답한 여인
옥갑야화 셋, 옛 주인의 손자를 거둔 임씨
옥갑야화 넷, 역관 변승업이 재산을 흩어 버린 이유
옥갑야화 다섯, 허생전
옥갑야화 여섯, 조 감사가 만난 중들
「허생전」을 쓰고 나서

「허생전」 꼼꼼히 읽기

호질
우연히 읽게 된 재미있는 이야기
선비라는 고기
과부의 방을 찾아간 선비
범의 꾸중
뒷이야기

「호질」 꼼꼼히 읽기

양반전
양반 사고팔기
양반이 이런 거라면

「양반전」 꼼꼼히 읽기

이름 없는 사람들을 기리는 이야기
광문자전
예덕선생전
민옹전
김신선전
마장전
열녀함양박씨전

해설 박지원과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하여

저자소개

박지원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후기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실학자다. 박사유(朴師愈)와 함평(咸平) 이씨(李氏)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6세에 처사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에게는 《맹자》를, 처삼촌 이양천(李亮天)에게는 《사기(史記)》를 배워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했다. 처남인 이재성(李在誠)과는 평생의 문우(文友) 관계를 이어 갔다. 청년 시절엔 세상의 염량세태에 실망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며 이러한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라는 이름으로 편찬했다. 영조 47년(1771) 마침내 과거를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에 은거하면서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을 비롯한 많은 젊은 지식인들과 더불어 학문과 우정의 세계를 펼쳐 갔다. 정조 2년(1778) 홍국영이 세도를 잡고 벽파를 박해하자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에 있는 연암협(燕巖峽)으로 피신해 은둔 생활을 했다. 연암이라는 호는 이 골짝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정조 4년(1780)에 삼종형(三從兄)인 박명원(朴明源)의 연행(燕行) 권유를 받고 정사의 반당 자격으로 북경에 가게 되었다. 이때 건륭 황제가 열하에서 고희연을 치르는 바람에 조선 사신 역사상 처음으로 열하에 가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연행을 통해 깨달음을 확대한 연암은 여행의 경험을 수년간 정리해 《열하일기》를 저술했다. 정조 10년(1786) 유언호의 천거로 음사(蔭仕)인 선공감(繕工監) 감역(監役)에 임명되었다. 정조 13년(1789)에는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와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했고, 정조 15년(1791)에는 한성부 판관을 지냈다. 그해 12월 안의현감에 임명되어 다음 해부터 임지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정조 임금이 문체를 타락시킨 장본인으로 《열하일기》를 쓴 연암을 지목하고는 남공철을 통해 순정한 글을 지어 바치라 명령했으나 실제로 응하지는 않았다. 정조 21년(1797) 61세에 면천군수로 임명되었다. 이 시절에 정조 임금에게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지어 바쳐 칭송을 들었다. 1800년 양양부사로 승진했으며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순조 5년(1805) 10월 20일 서울 가회방(嘉會坊)의 재동(齋洞) 자택에서 깨끗하게 목욕시켜 달라는 유언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선영이 있는 장단(長湍)의 대세현(大世峴)에 장사 지냈다. 박지원의 문학 정신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옛것을 본받되 변화를 알고 새롭게 지어내되 법도를 지키라”는 의미다. 그는 문학의 참된 정신은 변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글을 쓰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게 되려는 것은 참이 아니며, ‘닮았다’고 하는 말 속엔 이미 가짜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연암은 억지로 점잖은 척 고상한 글을 써서는 안 되며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대상을 참되게 그려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틀에 박힌 표현이나 관습적인 문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지향했다. 나아가 옛날 저곳이 아닌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중국이 아닌 조선을,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이야기할 때 진정한 문학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연암의 학문적 성취와 사상은 《열하일기》에 집대성되어 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이용후생의 정신을 기반으로 청나라의 선진적 문물을 받아들여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타개하자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북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연암은 《열하일기》 외에도 《방경각외전》, 《과농소초》,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등을 직접 편찬했다. 연암의 유고는 그의 아들 박종채에 의해서 정리되었는데 아들이 쓴 〈과정록추기〉에 의하면 연암의 유고는 문고 16권, 《열하일기》 24권, 《과농소초》 15권 등 총 55권으로 정리되었다. 《열하일기》는 오늘날 완질은 2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암의 작품은 대부분이 문(文)이며 시(詩)는 50여 편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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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윤 (옮긴이)    정보 더보기
고려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 문화일보 추계문예공모 시 부문에 당선되었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 교수 및 상지대학교 교양 대학 조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고려대학교와 군산대학교에서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계몽과 통속의 소설사』가 있으며 공저로는 『김유정의 귀환』, 『한국학 사전의 편찬의 현황』, 『김유정과 동시대 문학 연구』, 『군산의 근대 풍경:역사와 문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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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삼십 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라네요. 빈털터리나 다름없이 북경에 갔던 한 역관이 있었답니다. 그는 조선으로 귀국할 무렵이 되자 단골 가게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작별 인사를 하면서 몹시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지요. 단골 가게 주인은 이상하게 생각하여 왜 그러느냐고 까닭을 물었습니다. 역관은 가슴을 치는 시늉을 해 가며 하소연을 늘어놓았습니다.
“압록강을 건널 적에 남이 부탁한 은을 몰래 숨겨 갖고 오다가 그만 들켰지 뭡니까. 그 바람에 제 몫까지 관청에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제 빈손으로 돌아가면 무얼 먹고살지 막막하기 짝이 없습니다. 차라리 돌아가지 않고 여기서 죽는 게 낫겠습니다.”
역관은 갑자기 품속에서 칼을 뽑아 들고 자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상점 주인은 깜짝 놀라서 급히 그를 끌어안으며 칼을 빼앗고 물었습니다.
“빼앗긴 은이 얼마나 되기에 목숨을 끊으려고 그러오?”
“삼천 냥이랍니다.”
주인은 역관을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대장부가 그래서야 쓰겠소? 몸이 없어질까 걱정이지, 어찌 돈 없어지는 것을 걱정한단 말이오? 만약 그대가 여기서 죽는다면 집에서 눈 빠지게 기다리는 처자식은 어떡하라고 그러시오? 자, 그러지 말고 내가 만 냥을 빌려 줄 테니 잘 늘려 보시오. 다섯 해 동안이면 만 냥은 벌 수 있을 거요. 그러면 그때 가서 본전만 갚으시오.”
역관은 수없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며 주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얻은 돈 만 냥으로 이것저것 물품을 사서 조선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사정을 알 턱이 없지요. 모두들 그의 재주가 신통하여 중국에서 돈을 벌었거니 생각했답니다.
상점 주인의 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과연 역관은 다섯 해 만에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본전만 갚으라는 주인의 말이 있었지만, 이자를 후하게 쳐서 갚아도 남을 만큼 막대한 재물을 모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고 보니 엉큼한 본심이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아니, 그의 생각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처음부터 은혜를 갚을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순진한 중국인을 속여서 제 욕심을 채우겠다는 것이었겠지요.
그는 역관들을 관리하는 관청인 사역원에 찾아가 명부에서 제 이름을 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북경에 가지 않았습니다.
무심한 시간이 여러 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역관은 북경으로 출장 가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역관은 친구에게 넌지시 부탁했습니다.
“북경의 시장에 가면 아무개라는 상점 주인을 만나게 될 걸세. 주인은 틀림없이 내 소식과 안부를 물어볼 거야. 그러면 시치미를 딱 떼고 우리 가족이 모두 염병에 걸려 죽었다고만 말해 주게.”
친구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럼 날더러 거짓말을 하라는 건가?”
친구는 곤란한 기색을 보이며 주저하였습니다. 그러자 역관은 친구의 손을 은근히 잡으며 다시 한번 꾀었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둘러대 주기만 한다면 백 냥을 주겠네.”
친구는 찜찜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북경 가는 길에 올랐습니다.


동리자의 아들들은 북곽 선생과 동리자의 위선적인 모습을 목격했으면서도 그 상황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들의 어머니가 과연 열녀인지 의심할 줄도 모르고 눈앞의 북곽 선생을 천 년 묵은 여우일 것이라고 믿는 등 허상에 빠져 있다.
어찌 보면 순진한 모습일 수도 있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어리석은 모습이기도 하다. 이들의 순진한 모습에 주목하여 이 부분을 읽는다면 다섯 아들은 북곽 선생을 곤경에 빠뜨리고 결과적으로 그의 허위를 폭로하는 역할을 하는 주변 인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어리석은 모습에 주목한다면 이는 양반들의 이중성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현실 사회의 모순에 대해 의문을 갖지 못하는 우매한 백성들을 풍자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북곽 선생은 옷을 털고 일어나 얼른 자리를 떠나려 하였습니다. 자신의 꼴을 누구에겐가 들킬까 걱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좋죠? 마침 이른 새벽 밭 갈러 나온 농부가 북곽 선생이 엎드려 있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고 말았습니다. 농부는 의아하여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 꼭두새벽에 벌판에 대고 웬 절을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북곽 선생은 시치미를 뚝 떼며 말했답니다.
“옛 성인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이 높다 해도 머리를 아니 숙일 수 없고, 땅이 두텁다 해도 조심스럽게 딛지 않을 수 없다’ 하셨느니라.”

양반 사회의 본질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이야기 후반부에 등장하는 농부도 마찬가지이다. 똥을 뒤집어쓰고 비굴한 자세로 엎드려 있는 북곽 선생을 발견하고도 그에 대한 고정 관념 때문에 눈앞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달리 보면 불륜이 들통나서 도망치다가 범에게 봉변을 당한 선비와 누구보다 먼저 밭을 갈러 나온 부지런한 농부의 새벽을 겹쳐 놓음으로써 모두가 잠든 시간을 활용하는 두 사람의 방법을 절묘하게 대조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어느 춥고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날이었습니다. 거지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 구걸을 하러 거리로 나가고 광문은 병을 앓고 있는 아이와 단둘이 남게 되었습니다. 아픈 아이를 돌보고 있던 광문은 아이가 점점 병이 심해져서 오들오들 떨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게 여간 딱하지 않았습니다.
환자의 머리맡에 앉아 있던 광문은 보다 못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아이에게 밥이라도 한 그릇 얻어다 먹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아이가 힘을 차리고 일어나 앉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거지 소굴 밖의 찬바람이 할퀴듯 광문의 몸을 파고들었습니다. 광문은 걸음을 재촉하여 가까운 곳의 인심 좋은 집 쪽으로 내달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밥을 얻어 돌아온 광문은 그만 맥이 쭉 빠져 버렸습니다. 앓던 아이가 이미 죽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광문은 아이를 붙잡고 넋이 나간 듯 구슬프게 흐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구걸을 나갔던 아이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이들은 광문이 앓던 아이를 죽인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우르르 달려들어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광문은 그만 기가 막혔습니다. 억울한 것은 둘째 치고 계속 맞다 보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바깥으로 광문은 쫓겨나듯 달려 나와 정처 없이 도망쳤습니다.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광문은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어느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낯선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본 개가 사납게 짖기 시작했습니다. 개 짖는 소리에 밖으로 나온 집주인은 도둑이라고 생각하고 광문을 잡아서 꽁꽁 묶었습니다.
광문은 울면서 소리쳤습니다.
“저는 도둑이 아닙니다. 저를 죽이려는 아이들을 피해서 도망 온 것이에요. 정 믿지 못하시겠다면 날이 밝는 대로 거리에 나가서 무슨 사정인지 한번 알아보십시오.”
집주인은 광문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습니다. 표정이나 목소리가 퍽 순진하고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광문을 묶은 줄을 다시 풀어 주었습니다.
몸이 자유로워진 광문은 꾸벅,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가려다가 다시 돌아서서 집주인에게 말했습니다.
“나리, 저에게 필요한 데가 있어 그러니 거적 한 장만 주시면 안 될까요?”
주인은 광문의 부탁을 선선히 들어 주었습니다. 광문은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서 걸어갔습니다.
광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집주인은 문득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몰래 광문의 뒤를 밟아 보았습니다. 광문은 거적을 들고 터덜터덜 한참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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