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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32818337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21-06-07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_이어령
들어가는 글
하나님은 유일자다
01 일자란 무엇인가
플라톤의 일자│플로티노스의 일자│삼위일체란 무엇인가│테르툴리아누스의 용어들│오른발은 신학에 왼발은 철학에│오리게네스의 삼위일체론│삼위일체 논쟁│카파도키아의 위대한 세 교부│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 청소│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삼위일체가 진정 의미하는 것│상호내주적·상호침투적 공동체로서의 삼위일체
02 유일신은 배타적인가
‘구약의 하나님’이냐, ‘신약의 하나님’이냐│유일신이 왜 질투하나│아브라함은 구원받았는가│유신론은 극복되어야 하나│하나님의 유일성이 연대와 협력의 근거│천지창조에서 최후의 심판으로
03 유일신만이 할 수 있는 일
안개 같은 위험, 유령 같은 공포 / 재난은 닥쳐왔고, 미래는 결정되었다 / 우리가 홍수이고, 우리가 방주다 / 아침 식사로 지구를 구한다고? / 자본주의가 왜 거기서 나와? / 벽을 쓰러트려 다리를 놓아야 / 하나님의 일 / 그리스도인의 일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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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령을 사랑, 선물, 친교로 파악했고, 우리도 성령에 의해 서로 간의 친교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삼위일체의 하나님과도 친교를 이룰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보배로운 사유인가요! 우리는 이 같은 사유의 가치를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는 진리가 단지 교훈으로 선포된 종교가 아니고,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을 통해 행위로서 실천된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2부 “하나님은 존재다”에서 지적했듯이, 말로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도 말만으로는 구원을 이루려 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위를 통해 구현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기독교를 통해 서양문명 안에 잠재되어 부단히 내려오는 바로 이 고귀한 사유를 감안할 때, 우리가 삼위일체의 내용을 단순히 사변적으로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실천적 지침이 되느냐 하는 것이지요.
-‘1장 일자란 무엇인가’ 중에서
삼위일체론과 연관해서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갖고 있는 물음 가운데 하나가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나왔다고 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아들이 있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고 주장하는가?” 하는 것이지요. 아마 당신도 이미 그런 생각을 머리에 떠올렸을 것입니다우리는 앞에서 심지어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만든 장본인인 테르툴리아누스 역시 성부에게서 성자가 나온 만큼 당연히 “아들이 있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라고 주장한 것도 보았습니다. 그렇지요? 이후에도 그런 사람들이 부단히 나왔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살았던 4세기 당시에는 동방정교 아리우스파의 에우노미우스Eunomius가 바로 이 물음을 던진 다음, 스스로 다음과 같이 단순 명료하게 답했습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존재는 또다시 낳을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아들을 낳았다고 할 바로 그때까지는 아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옳다.” 간단하지만 논리적이고 타당한 답변 아닌가요? 그래선지 이에 맞서 대응을 해야 했던 당대 최고의 동방정교 신학자 대大바실리우스마저 그것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출생”이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 “이 출생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는 나에게 묻지 말라”라면서 정면 대결을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아우구스티누스라면 분명 다르게 대응했을 것입니다. 당신도 짐작하겠지만, 그의 대답은 마땅히 “아버지와 아들은 태초부터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중 하나를 아버지라고 할 때 다른 하나가 아들이 된다. 따라서 아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는 건 옳지 않다”라는 것이었겠지요.
-‘1장 일자란 무엇인가’ 중에서
한마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일신은 ‘동일한 하나’가 아니라 ‘통일적인 하나’라는 말인데요. 이 같은 내용이 우리가 나누는 이 이야기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우리가 이 책의 서두에서 ‘하나님의 유일성이 곧 배타성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 이후 지금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무엇인가요?
바로 이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갖는 유일성은 포괄성이지 배타성이 아니라는 것, 또한 그것은 통일성이지 단일성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당신이 들어가는 글에서 잠시 언급한 샐러드 볼Salad Bowl이라는 은유를 떠올린다면 매우 유익합니다. 샐러드 볼이란 말뜻대로 풀이한다면 각종 야채들을 버무려 담아 놓은 그릇을 뜻하지요. 그래서 보통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문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조화로운 통합을 이루어 나가게 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유일성이 바로 이러한 포용성과 통일성을 가졌다는 거지요.
단일성이 배타성의 전제이자 결과이듯, 다양성은 통일성의 전제이자 결과입니다. 따라서 누구든 “하나님은 유일하다”라고 외치려면, 그는 그 말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타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망언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 말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으로’ 상호내주적이고 상호침투적인 포용과 사랑을 베풀어 “나란히 그리고 더불어” 실존하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엄중한 선언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만 하지요. 한마디로 하나님이 유일하다는 말에는 그분이 세상의 모든 배타와 차별을 녹여 본질공동체적이고 영원동등적인 연대와 협력을 이루는 광대무변한 용광로鎔鑛爐이자 거대한 샐러드 볼이라는 뜻이 들어 있음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장 일자란 무엇인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