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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스페인/중남미소설
· ISBN : 9788932916279
· 쪽수 : 192쪽
· 출판일 : 2013-11-3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4월 6일 수요일, 해가 질 무렵 막 집을 나서려는데, 레노 부인이 그날 오후 리볼리 거리에 있는 카페 보르도에 급히 와줄 것을 요청하는 전보를 받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닌 데다가 아직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조금 서두르기만 하면 제시간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희한한 사건에 연루되었을 거라는 첫 번째 조짐이 바로 나타났다. 계단을 내려가다 3층에선가 두 사람과 마주쳤다. 두 사람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인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어두운 바바리코트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들이 나보다는 낮은 쪽에 있었기 때문에 챙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계단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어두운 데다 내가 조심스럽게 소리 없이 움직였기 때문에, 세 계단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나와 정면으로 마주칠 때까지 그들은 나의 존재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한 것 같았다.
밖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눈치챌 수도 없을 정도로 가는 비였다. 그러나 밤의 고독감을 증폭시키기엔 충분했다. 역시 레노 부인은 우산을 가져왔다. 사람들 모두 언제까지라도 각자의 집에 처박혀 있기로 한 것처럼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금세 몇 가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모든 빛은 광고 조명으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정전 때문에 집에 머무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팔짱을 끼고 보도를 걸어갔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갑자기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레노 부인의 옆모습, 우산에 어지럽게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 비록 작은 부분이긴 했지만 뭔가를 공유하며 함께 모험을 하는 듯한 기분.
「우리는 선생님께서 바예호 씨를 치료할 생각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둘 중 더 깡마른 사내가 조금은 슬픈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포도주 잔을 사이에 두고 그를 꼼꼼히 뜯어보았다. 붉은 뱀장어 같은 혀를 천천히 움직여 이를 훑더니, 가식적으로 와인을 홀짝이는 척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나를 쫓아왔던 것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