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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인문계열 > 역사학
· ISBN : 9788933707654
· 쪽수 : 592쪽
· 출판일 : 2019-12-23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제1장 위진-수당시대 호족군주의 중화제왕으로의 변신 과정과 그 논리 ―‘다민족국가’ 형성의 한 계기에 대한 탐색―
Ⅰ. 머리말
Ⅱ. ‘중화’제왕의 조건
Ⅲ. 오호십육국의 성립과 중화의 다원화
Ⅳ. 북위의 ‘한화’와 그 과제
Ⅴ. 서위-북주시대의 ‘중화화’ 시도
Ⅵ. 중화제왕의 탄생과 신중화주의
제2장 중화의 분열과 인근 각국의 대응 ―‘다중적’ 중화세계의 성립―
Ⅰ. 머리말
Ⅱ. ‘도이(島夷)·삭로(索虜)’에서 ‘피차(彼此)’의 관계로
1. 중화의 ‘도이’·‘삭로’로의 분열과 ‘각제일방(各帝一方)’
2. ‘피차’관계로의 변화와 복수 중화의 성립
Ⅲ. ‘황예(皇芮)’ 유연(柔然)의 ‘광복중화(光復中華)’와 ‘오막(吳漠)’ 양 세계의 선언
Ⅳ. ‘새표(塞表)’의 강부국 토욕혼(吐谷渾)의 ‘가한’ 자칭과 양조견사(兩朝遣使)
Ⅴ. 동방 각국의 ‘중화’ 자칭과 ‘다중적’ 세계관
제3장 이적에서 중화로 ―‘황제천가한’의 출현 과정과 그 의미―
Ⅰ. 머리말
Ⅱ. ‘황제’와 ‘황제천가한’
1. 황제의 ‘관대지실(冠帶之室)’과 선우의 ‘인궁지국(引弓之國)’
2. ‘황제천가한’과 소릉(昭陵)·건릉(乾陵)의 번신상
Ⅲ. ‘화이분별’에서 ‘화이대동’으로
1. ‘사융론(徙戎論)’에서 ‘실위오민론(悉爲吾民論)’으로
2. ‘혼일육합(混一六合)’에서 ‘호월일가(胡越一家)’로
3. 중화의 다중화와 가한권역(可汗圈域)의 서남진(西南進)
Ⅳ. 이적에서 중화로의 변신
1. ‘융적이류(戎狄異類)’ 탈피 과정 2. ‘오비오호(吾非五胡)’의 언설과 그 논리
3. 탁발왕조에서 중화제국으로
제4장 동위-북제시대 호한체제의 전개 ―호한갈등과 이중구조―
Ⅰ. 머리말
Ⅱ. 호한갈등의 소재
1. ‘한화’와 ‘반한화’ 세력의 대립
2. 문·무 세력의 분화
Ⅲ. 양도제와 이중구조
1. 선비인의 제2의 ‘향리’: 진양
2. 제2의 낙양: 업도
Ⅳ. 유목형 군주하의 호한세력의 추이
1. 황위 계승 형식의 미정립과 군사 편제의 이중성
2. 황제권의 독재화와 한인문관의 은행화
Ⅴ. 부패의 만연과 서역상호(西域商胡)의 대두
1. 부패의 만연
2. 서역상호의 활동과 그 영향
제5장 서위-북주시대 호한체제의 전개 ―호성재행(胡姓再行)의 경과와 그 의미―
Ⅰ. 머리말
Ⅱ. 호한 양족의 성씨관념
1. 한족과 성씨
2. 호족의 계보에 대한 기억상실증
Ⅲ. 우문정권의 정치적 과제와 호성재행의 의미
1. 서위-북주의 정치적 상황과 호성의 복성(復姓)과 사성(賜姓)
2. ‘삼십육국(三十六國) 구십구성(九十九姓)’ 성씨체제로의 회귀 논리와 실제
3. 계보 조작을 통한 무천진 군벌의 확장과 결속
4. 향병집단의 부병화와 사성
<西魏·北周時代 賜姓表>
제6장 서위-북주시대 『주례』 관제 채용의 경과와 그 의미
Ⅰ. 머리말
Ⅱ. 서위-북주체제와 『주례』 육관제
1. 『주례』 채용의 과정
2. 『주례』 관제의 특징
Ⅲ. 『주례』 체제의 의미
1. 북주의 정통성 확립과 호한융합
2. 문벌체제의 타파와 육주국 원훈
3. 왕도와 패부 이원체제의 정당화
Ⅳ. 『주례』 체제의 효능과 한계
제7장 7세기 수당 양 왕조의 한반도 침략 경위에 대한 하나의 검토 ―수와 당 초 황제의 정통성 확보 문제와 관련하여―
Ⅰ. 머리말
Ⅱ. 수조 황제의 정통성 문제와 대외전쟁
1. 수 문제의 ‘사취천하(詐取天下)’와 ‘평일사해(平一四海)’전의 전개
2. 수 양제의 ‘탈종(奪宗)’과 대고구려전의 전개
Ⅲ. 당 초기 황위 계승 문제와 대외전쟁
1. ‘현무문(玄武門)의 변’과 당 태종의 돌궐정책
2. 정관 말 태자 폐립 문제와 고구려 침략
Ⅳ. 수와 당 초 황제의 통치형태와 전쟁방식
제8장 동진·남조사와 교민 ―‘교구체제(僑舊體制)’의 형성과 그 전개―
Ⅰ. 머리말
Ⅱ. 유민의 남방 이동과 인민 구성의 재편
Ⅲ. 교·구의 갈등구조와 ‘교구체제’의 성립
Ⅳ. 남도의 방향과 조만(早晩)에 따른 교민 간 갈등
Ⅴ. 지방 편제의 다중화와 교민
Ⅵ. 호적 편제의 이중화와 교민
결론
중문 적요 /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호족 출신 중화제왕의 종족을 초월한 정책에 의해 형성된 것이 바로 수당 세계제국이었다. 이제 ‘중화’는 편협한 종족주의를 초월한, 이른바 ‘신중화주의’로 변한 것이었다. 중화사상에 내재한 배타적인 화이사상이 쇠퇴하고 보다 보편주의적인 중화사상이 전면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수와 당의 장안성은 세계 각처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기술과 학문을 가지고 경쟁하는 활기찬 세계제국의 수도로써 그 모습을 갖추었다. 당 황제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만국 사람들이 조정 안으로 찾아오고[萬國來庭]’ 혹은 ‘화이가 대동세계를 이루는[華夷大同]’ 형국이 되었던 것이다.
― ‘제1장 위진-수당시대 호족군주의 중화제왕으로의 변신 과정과 그 논리’ 중에서
‘호월일가’라는 말은 북조-수당시대에 처음 나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그것이 어디를 지칭하는지 구체성을 띠지 않았던 데 비해 북조-수당대에는 그 구체성이 확실하다. 당 태종이 ‘호월일가’의 형국을 완성시켰다면 그것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제왕은 전진의 부 견이었고, 그 다음이 북위의 효문제였다. 특히 효문제는 “호월의 사람들은 또한 형제와 같이 친해질 수 있다[胡越之人亦可親如兄弟]”라는 인식으로 이른바 용인에 있어서 ‘포용(包容: 兼容幷包)’정책을 폈던 것이다. ―‘제3장 이적에서 중화로’ 중에서
북제에서의 호한융합의 실패 원인을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북제 경내에 반한화의 역량을 가진 진양과 한화를 지향점으로 하는 업도의 첨예한 대립과 분열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북제라는 하나의 배 안에 개성이 강한 호와 한 양측이 함께 있어 사회 각 부문에서 호와 한이 양분되어 대립하는 현상을 노정하게 된 것이다. 호와 한을 조정해야 할 입장에 있던 황제 측에서 볼 때, 호쪽이 훨씬 통제하기 힘든 존재였다. 진양을 근거지로 하는 종실과 훈귀 세력은 황제의 통제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북위의 전장제도를 그대로 계승했다고 하지만, 북진에서 새로운 야성으로 단련된 이들을 통제할 만큼, 전장 제도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북제의 이중적 구조는 중앙집권화의 실패인 것이고, 그 결과 사회 전반에서 ‘기강의 부재’ 혹은 ‘법제의 이완’ 현상을 가져왔다. 북제가 “문·무관이 그 지위에 있으면서 청렴결백함이 드물었다[文武在位 罕有廉潔]”라는 부패국가로 낙인 찍힌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제4장 동위-북제시대 호한체제의 전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