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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34117216
· 쪽수 : 328쪽
· 출판일 : 2017-10-05
책 소개
목차
추천사 1 _김재성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 교수) 6
추천사 2 _박창훈 박사(서울신학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8
추천사 3 _피터 버거 박사(보스턴대학교 교수) 11
역자서문 19
도입 _24
제1장
잘못된 고정관념 _______38
1. 왜곡되어져 규격화된 고정관념 _52
2. 고정관념, 시대정신 그리고 현대사회 _55
3. 객체로서의 고정관념 _60
제2장
루터는 악한인가? _______71
1. 고정관념의 근원 _83
제3장
루터-그러면 악한이 아닌가? _______104
1. 질서의 신학적 중요성 _106
2. 두 왕국 _113
3. 루터식의 저항 _127
4. 하나님의 “기적의 사람”과 사탄의 앞잡이 _140
5. 언제 무력적인 저항이 허용되는가? _145
6. 막데부르그 신앙고백 _152
7. 본회퍼가 플라시우스에게 경의를 표하다 _158
제4장
루터에 관한 고정관념의 반론(Ⅰ): 괴르델러의 저항 _______171
1. 독일 군국주의에 관한 고정관념 _202
2. 백악관의 고정관념 _217
3. 시대정신의 희생양 _237
제5장
루터에 관한 고정관념의 반론(Ⅱ): 1989년 라이프치히 운동 _______246
1. 루터의 유산은 유효하다 _250
2. 브뤼제비츠: “신앙고백 선언”(in casu confessionis)의 극한 예 _263
3. 고르바초프는 “기적의 사람”이었는가? _272
에필로그: 두 왕국설의 카이로스 _276
부록 1: 동일한 하나님, 두 왕국: 루터 교리의 역설 _298
부록 2: 우상화된 자아에 대한 루터의 저항(에세이) _302
본문 사진들 _316
책속에서
본서를 통하여 제3제국의 탄생과 몰락 이후의 악영향을 포함하여 무지와 오용 그리고 중상모략으로 묻혀버린 보물을 발굴해내고자 한다. 이 보물은 바로 우리가 이제 차분하게 객관적으로 살펴봐야할 루터의 두 왕국설로, 이 교리는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는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바르고 곧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아픈 역사와 연관이 있다. 루터의 두 왕국설은 쉬러가 주장한 것과 같이 히틀러의 길을 예비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이 두 왕국설은 독일인을 히틀러로부터 비켜가게 했는데, 이는 이미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가 글자 그대로 연기처럼 고이 남아 있던 시점인 1945년 영국 감리교의 위대한 신학자인 고든 럽이 주장한 바 있다.
두 왕국설과 특히 루터의 공권력과 저항에 대한 이론이 바로 필자의 본 주제이므로, 루터가 노년에 외친 반유대주의적인 주장이 6백만 유대인 대학살을 가져왔다는 비난에 관하여서는 2장에서 잠시 다루는 것에 대해 독자들의 이해를 구한다. 루터가 살아있을 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필자 또한 루터의 오류에 대해, 더욱이 개신교 교회가 300년 동안이나 이를 몰래 은폐해 왔다는 것에 놀랐다. 그러나 유대인들에 대한 루터의 생각은 그가 젊었을 때 쓴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셨다』(dass Jesus ein geborener Jude sei, 1523)를 보는 것이 맞다.
하나님이 세속의 통치자에게 권력을 부여하셨다는 성경의 진술은 루터의 두 왕국설과 통치설의 핵심 내용이다. 이 교리는 후에 비참하게도 “독일 기독교인들”(Deutsche Christen)에 의해 변질되어졌으며 루터의 반대자들에 의해 악의적으로 왜곡되어 루터교 신학자들 중에는 이 교리의 오용이 참담하여 이 교리를 부정하는 사람도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루터 자신은 이 교리에 대하여 자부심이 대단했다.
사도 시대 이후 어떤 학자도 말하지 않았는데(성 어거스틴을 제외하고) 내가 세속의 권력은 훌륭하고 유용하다고 썼으며, 나는 선한 양심과 증거로 세상을 칭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평화혁명은 라우의 두 왕국설의 교리 해석을 입증할 수 있는 아주 루터교적인 사건이었다.
아마도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의무는 교회가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기능을 지배적 자세로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과 순종으로 겸손히 행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이것을 세상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두 나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며 우리가 세상에서 섬겨야 할 하나님은 바로 이 한 분이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1989년 10월 9일 구동독 저항운동의 역사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사건, 평화의 기도로 나타났다. 라이프치히 개신교와 가톨릭교회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온유하도록 권면했다.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잠 25:15)에 나오는 성경 구절처럼 바흐 토마스교회의 교구감독자 요하네스 리히터는 설교하였다.
그러고 난 후 교회 성도들은 밖으로 나가서 70,000명의 다른 시위자들과 합류했다. 그들은 40년 독재정권을 온유함으로 몰아내었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종말 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세상을 인간의 힘으로 지금 현세에 이룰 수 있다는 꿈을 꾸는 유토피아로부터 현대사회를 건져내었다.
이로 인하여 400년 동안 타오르던 루터와 뮌처 사이의 충돌은 루터의 승리로 결정되었다. 루터가 두 왕국설을 가지고 독일인들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었으며 결과적으로 히틀러를 탄생시킨 사람이었다는 선입관은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시청자의 눈앞에서 무의미한 고정관념임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