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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고전 > 우리나라 옛글 > 시가
· ISBN : 9788934934899
· 쪽수 : 432쪽
· 출판일 : 2009-09-08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 가락에 실어낸 국민문학의 정수, 시조
1. 삶의 현장
노래 삼긴 사람_신흠
청산도 절로절로_송시열
풍파에 놀란 사공_장만
새원 원주 되어_정철
굴레 벗은 천리마를_김성기
인간의 하는 말을_김수장
마을 사람들아_정철
말하기 좋다 하고_실명씨 외
묻노라 부나비야_이정보
오늘도 좋은 날이_실명씨 외
곶은 울긋불긋_실명씨
2. 사랑
사랑이 어떻더니_이명한 외
말은 가자 울고_실명씨
웃어라 잇바디를 보자_이정보 외
세상엔 약도 많고_실명씨
약산 동대 너즈러진 바위틈에_실명씨
보고만 있을 것을_실명씨
해 다 져 저문 날에_실명씨
3. 이별
녹양이 천만사ㄴ들_이원익
멧버들 골라 꺾어_홍랑
울며 잡은 소매_이명한
4. 기다림
그립고 아쉬운 마음에_황진이 외
꿈에 다니는 길이_이명한 외
임도 잠도 안 오는 밤_실명씨
5. 그리움
동짓달 기나긴 밤을_황진이
다정도 병인 양하여_이조년
사랑이 거짓말이_김상용
가노라 삼각산아_김상현
이화우 흩날릴제_이매창
어져 내 일이여!_황진이
산은 옛 산이로되_황진이
마음이 어린 휘니_서경덕
화작작 범나비 쌍쌍_정철 외
죽어 잊어야 하랴?_실명씨
오백 년 도읍지를_길재 외
가더니 잊은 양하여_정철 외
쓴 나물 데온 물이_정철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_실명씨
6. 연민·무상·시름
오동에 듣는 빗발_김상용 외
간밤에 불던 바람_정민교
길 위의 두 돌부처_정철
뉘라서 날 늙다턴고_이중집 외
황진이의 무덤에_임제
백발이 제 먼저 알고_우탁 외
앞 못에 든 고기들아_어느 궁녀
임 그린 상사몽이_박효관 외
칠십에 책을 써서_송계연월옹
어와 내 일이여!_박효관
7. 꽃·벌·나비
국화야 너는 어이_이정보 외
나비야 청산 가자_실명씨
강호에 봄이 드니_황희 외
어리고 성긴 가지_안민영 외
해 지고 돋는 달이_안민영
8. 평화·한정
초암이 적료한데_김수장 외
짚방석 내지 마라_한호 외
곡구릉 우는 소리에_오경화
벗을 기다리며_율곡과 퇴계
9. 절개·우국
이 몸이 죽어죽어_정몽주 외
엊그제 버힌 솔이_김인후 외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_김종서 외
한산섬 달 밝은 밤에_이순신
춘산에 불이 나니_김덕령 외
10. 인륜·도덕
어버이 살아신 제_정철 외
도산십이곡 중에서_이황
이고 진 저 늙은이_정철
내 해 좋다 하고_변계량
네 아들 효경 읽더니_정철
청산은 어찌하여_이황 외
인人이 인人이라 한들_안창후 외
아버님 날 낳으시고_정철
형아 아우야!_정철 외
한 몸 둘에 나눠_정철 외
11. 자연 친화
대추 볼 붉은 골에_황희
매암이 맵다 하고_이정신
잔 들고 혼자 앉아_윤선도 외
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_이재 외
헌 삿갓 짧은 되롱_조현명
녹수청산 깊은 골에_이명한 혹은 이의현
청산리 벽계수야_황진이
청산은 내 뜻이요_황진이
동창이 밝았느냐_남구만
말 없는 청산이요_성혼 외
보리밥 풋나물을_윤선도 외
대 심어 울을 삼고_김장생 외
우는 것이 뻐꾸긴가?_윤선도
12. 해학·풍자
북천이 맑다 커늘_임제와 한우
단잠 깨지 말 것을_정철
선웃음 참노라 하니_정철
높으락 낮으락 하며_안민영
섶 실은 천리마_김천택
성내어 바위를 차니_김이익
옥에 흙이 묻어_윤두서 외
사랑을 사자 하니_실명씨
일신이 살자 하니_실명씨
대천 바다 한가운데_실명씨
엊그제 임 여읜 마음_실명씨
13. 호기·풍류
술 익단 말 어제 듣고_정철 외
십 년을 경영하여_송순 외
금파에 배를 띄워_임의직
꽃 피자 술 익자_실명씨
일정 백 년 산들_정철 외
지저귀는 저 까마귀_김진태 외
꼭대기 오르다 하고_실명씨
14. 달관·통찰
백송골아 자랑 마라_김영 외
장부의 호연지기_김유기 외
월출산이 높더니마는_윤선도 외
백발이 공명이런들_실명씨 외
벼슬을 저마다 하면_김창업 외
강호에 노는 고기_이정보
꽃 지고 속잎 나니_신흠
검은 것은 까마귀요_이정보 외
15. 시절·한탄
시절이 저러하니_이항복
나무도 병이 드니_정철
16. 청산유수
강산 좋은 경을_김천택
청량산과 고산 구곡_퇴계와 율곡
어부단가_이현보
산수간 바위 아래_윤선도
17. 원한
꺾었거든 버리지 마소_실명씨 외
왔다가 가더라 하소_실명씨 외
벼 베어 쇠게 싣고_김우규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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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다정도 병인 양하여 _ 이조년 외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조년
신위申緯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한역했다.
梨花月白五更天 啼血聲聲怨杜鵑
?覺多情原是病 不關人事不成眠
배꽃에 달이 밝은 이 깊은 아닌 밤에
피로 우는 소리소리 원한의 두견이여!
다정이 병이랴마는, 잠들 수가 없구나!
두견이 곧 두견새[杜鵑-]는, 두우杜宇, 자규子規, 촉조蜀鳥, 촉혼蜀魂, 시조時鳥, 접동새, 소쩍새 등으로 불리는 철새다. 철새라, 봄·여름이 제 철이요, 밤에 우는 새라, 달밤이 제격이다. 한 호흡 간격으로 뇌고 뇌는, 그 단조로운 두 음절의, -밤을 꿰뚫는 듯, 청 높은 소리[高調音]! 미분화음未分化音이라, 듣기에 따라 ‘촉도蜀道…… 촉도……’ 하는가 하면, ‘솟적…… 솟적……’으로, 또 어찌 들으면 ‘접동…… 접동……’, 그런가 하면 원한에 사무친 사람들에게는, (어찌 그리도 야속하냐는 듯) ‘어쩜?…… 어쩜?……’으로, 들리기도 하여, 듣기 나름으로 전설도 갖가지다. 그러나 그 본래의 전설은, ‘촉蜀나라에서 쫓겨난, 망제望帝(이름 杜宇)의 혼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원한에 사무친 울음이라 한다.
울다 울다 가끔 ‘게객’ 하는 엇박자가 섞이는 것은, 그 바로 피를 토하는 소리라 하고, 그 피로 목을 축여, 다시 또 운다는 두견이! 그 피로 물든 꽃이 두견화杜鵑花, 곧 ‘진달래’라고도 한다.
공산이 적막한데 슬피 우는 저 두견아!
촉국蜀國 흥망興亡이 어제오늘 아니거늘,
지금히 피나게 울어 남의 애를 끊나니? (정충신)
옛 촉나라가 망한 지야 이미 수천 년도 전의, 한갓 전설 시대의 일이거늘, 그때 그 한을 이날토록 피나게 울어, 이 밤의 수많은 수인愁人들로 하여금 창자를 끊게 하고 있는 것이랴!
허균許筠은 두견이 소리의 고저高低마저 사음寫音하였으니;
피 흐르는 몸을 뒤쳐 나무 나무 옮다니며
‘촉’은 높고 ‘도’는 낮게 돌아감만 못 하다고
밤 내내 촉´도, 촉´도 애타게도 울어라!
‘앞소리는 높고, 뒷소리는 낮은 소리로 ‘촉´도…… 촉´도……’를 애타게 되뇌는 소리라 했다. 어느 방향인지도 가늠이 잘 안 되는, 어느 먼먼 산에서, 귀를 뚫는 듯, 송곳같이 날카로운 높은 소리에 이어, 끝소리는 귓전에 와 부리는 듯, 낮고도 가까운 그 소리다.
두견이 우는 밤엔 딴 새들은 감히 나서지를 못하는 듯, 깊으나 깊은 밤, 오직 그 소리만이 한밤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호응하는 소리가 있음 직도 하건마는 그것이 없다. 철저하게도 혼자인 새! 그 속속들이 정한에 사무친 소리! 귀청으로 파고드는 높은 목청의 속 소리! 그 마디마디 단절되면서도 같은 간격으로 이어가는 애끊는 소리! 자고로 그 소리, 얼마나 많은 수인愁人들의 잠을 앗고, 눈물을 앗고, 애를 마르게 하였던고?
‘수인愁人’이란 가슴속에 ‘그리움’을 품고 있는 사람을 이름이다. 인생을 사노라면, 생별生別이든 사별死別이든 이별 겪지 않은 이 뉘 있으리? 이별 겪은 이의 가슴 가슴에 어느덧 자리 잡아 도사리고 있는 그 ‘그리움!’
꿈에나 임을 보려 잠을 청해 누웠으나,
새벽달 지새도록 자규 소리 어이하리?
두어라! 단장춘심斷腸春心(임 그리운 애끊는 마음)은 너나 나나 다르랴? (호석균)
아내 여읜, 또는 남편 여읜, 애틋한 불면의 밤이다.
꿈에나 임을 보려 잠을 청해 누웠은들
두견이 저 소리에 잠이 와야 꿈을 꾸지?
애끊는 그리움이야 너나 나나 다르랴?
그러나 또 보라!
꽃이야 지나 마나, 접동이 우나 마나
전전의 그리는 임 다시 만나 보게 되면
저 지고, 저 우는 것을, 슬퍼할 줄 있으랴? (실명씨)
두견이 소리에 내가 울게 됨은, 두견이 슬픔에 동정해서가 아니라, 내 가슴에 맺혀 있는 ‘이별의 한恨’ 때문이란 것이다. 아니라도 자칫 울먹거리던 나의 서러움이, 두견이 울음에 촉발觸發되었기 때문이란 것을, 예시例示까지 해보이고 있다. 내게 이별의 슬픔이 없거나 해소된 바에서야 ,‘꽃이야 지든 말든, 두견이야 울든 말든’, 내가 덩달아 울 까닭이 있느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 아니랴?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숙종 때 사람 이유는;
자규야! 울지 마라. 울어도 속절없다.
울거든 너만 울지 남은 어이 울리느냐?
아마도 네 소리 들을 제면 가슴 아파하노라.
너로 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잠 이루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 이 밤을 앓고 있음이랴? 세월이 약이어서 이제야 가까스로 잊혀져가려는, 옛 아픈 기억들을, 새삼 샅샅이 들추어내어 가슴 아프게 하고 있는, 너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뇨?
<울며 잡은 소매 떨치고 가지 마소>의 작자인 이명한도;
서산에 해가 지니 천지에 가이없다.
이화에 달 밝으니 임 생각이 새로워라!
두견아 너는 누를 그려 밤새도록 우느니?
고종 때 가객歌客 박효관도;
이화에 우는 접동 너는 어이 우짖느냐?
너도 날과 같이 무슨 이별 하였느냐?
아무리 피 나게 운들 대답이나 하더냐?
그 그리움 여북했으면;
그려(그리워하며) 살지 말고 차라리 죽어져서
월명月明 공산空山에 두견이 넋이 되어
밤중만 ‘사라져 울어’ 임의 귀에 들리리라! (실명씨)
임 그리워 이러구러 애달프게 살아 무엇 하랴? 차라리 죽어져서 두견이 넋이 되어, 배꽃 흐드러진 속가지에 싸여 있다가, 한밤중이면 애타게 울다 울다 기진맥진하여 우는 소리도 ‘사그라지게 우는’, 그런 울음에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슬픔에 젖곤 하는 나와 같이, 임의 귀에도 그렇게 들리게 함으로써, -‘그리움’이란 그 어떤 것인가를, 그에게도 몸소 아파 보게 하고 싶다는 것이니, 그 얼마나 극한의 정한情恨이랴?
영월에 유배되어 있던, 16세의 소년 단종端宗도;
소리(두견이 소리) 멎은 새벽 산에 잔월殘月(지새는 달)은 흰데,
피로 흐르는 봄 골짝의 붉은 낙화여!
밤 내내 울다 지친 듯, 두견이 소리도 끊어지고, 핏기 없는 지새는 달빛만이 해사하게 비쳐 있는 새벽, 두견이 핏자국으로 붉게 물들었다는 진달래·철쭉의 낙화가, 한 골짝 가득 개울물에 실려 붉게 흐르고 있는 정경에 눈물짓곤 하던 그도, 어느 달밤 자규루子規樓에 올라서는, 두견이 소리에 마디마디 끊어지는 단장斷腸의 슬픔을 세인에 하소연했다.
자규 우는 달 밝은 밤, 시름겨워 누樓에 서니, 네 울음 아니런들 이다지도 애 끊일까?
여보소! 이 세상 한 많은 이들이여!
춘삼월 두견이 우는, 달 밝은 다락엘랑, 오르지를 마시라! (사설시조)
정도 많고 한도 많은, 이 땅에 살다 간, 무수한 그 옛사람들! 저 두견이 울음으로 하여, 그 얼마나 많은 밤을 잠 이루지 못하고, 안으로 안으로 인생을 고뇌하여, 여위디여윈 몸이, 진정 정情으로 -순정으로 살다 간 고인들! 그 뇌고 뇌는 슬픈 가락에 세뇌洗腦된 듯, 그로 하여 눈뜨게 된 순정미純情美, 수척미瘦瘠美, 애련미哀憐美, 비애미悲哀美에 흐뭇이 젖고, 또한 그로 하여 인생의 본향本鄕, ‘정의 옛 뜰’을 그리게 됨으로써, 불여의不如意한 세상, 거칠어지려 사나워지려는 심성을, 다독거려 순화해주고 정화해준 공덕! 그 공덕 적지 않았으니, 두견이는 진실로 이 땅의 ‘고운 마음 지킴이’기도 해왔음을 어찌 몰라주랴?
한때 농촌을 떠나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어, 그 가청권可聽圈(들을 수 있는 범위)에서 벗어난, 판자촌 사람들! 그 곱던 마음! (불여의한 도시 생활로 해서) 차츰 거칠어져갈 때, 누구에게서 순화되며 정화되랴? 이젠 도로 그리워지는, 아아, 너 두견이여! 두견이여!
_본문 중에서
이화우 흩날릴 제 _ 이매창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는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노매.
이별의 한恨을 품고 사는 사람에게야, 어느 계절인들 그러하지 않으랴마는, 그중에도 가을은 더욱 애타게 하고, 한결 못 견디게 하는, 그리움의 계절이다. 매창의 작품도 그 한 예다.
이매창李梅窓(1573~1610)은 선조 때 부안의 명기이자, 빼어난 여류 시인이다. 이름은 계생癸生이요, 자는 천향天香, 매창梅窓은 그의 호요, 계랑桂娘으로 애칭되기도 했다.
그녀는 당대의 대문사였던 허균과의 교분도 있었으나, 학자요 시인인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1545~1636)과의 정을 오매에 잊지 못해했다.
그녀는 촌은이 서울로 돌아간 후에도, 내내 그를 사모하여 수절하다, 38세로 요절한 정한情恨의 여인이다.
이외에도 촌은을 그리워한 여러 수의 시가 있다. 그녀는 한시에도 능하여 주옥같은 57수의 한시가 ≪매창집≫에 전해온다. 위의 시조는 1974년 부안에 세운 ‘이매창 시비詩碑’에 새겨진 그녀의 대표작이다.
울며 부여잡고 차마 놓지 못하는 소맷자락! 그예 뿌리치고 떠나가는 임! 눈보라치듯 배꽃 꽃보라(꽃잎들이 ‘눈보라’처럼, ‘물보라’처럼, 어지럽게 휘날리는 모양) 어지럽게 휘날리는 속을, 백마에 채찍을 갈겨, 꽃잎들이랑 얼기설기 가마아득히 사라져가던 임의 뒷그림자……! 이 가을 들면서 ‘저’도 나를 그리워하고 있음인가? 밤마다 그가 와 보이는 꿈, 내가 가 보이는 꿈들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중장 끝 구에 ‘저도 나를 생각는지’라 했다. ‘임도’, 또는 ‘그도’라 할 자리를, 하필이면 홀대하듯 ‘저도 나를 생각는지’로 한 ‘저’를 음미해보라. ‘저’는 삼인칭으로서는 하대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떠날 때의 야속하게 느껴졌던 꽁한 감정이 아직도 덜 가셨기 때문인가? 아니다. 오히려, 그에 대한 더 친압해진 말투! -오히려 스물여덟 나이 차를 무시해버린, ‘이불 속의 맞수’ 그대로 불러보고픈 충동! 또는 어리광이라도 부려보고, 투정이라도 부려보고 싶은, 몽상적인 현장감 분위기에서 무심중 튀어나온 그 한마디! ‘그도’도 ‘임도’도 아닌, ‘저도’의, 이 고혹적인 한마디가, 이 작품의 중앙에 위치하여 전편을 압도하고 있다. 참으로 신묘하지 않은가? 말의 쓰임새란!
촌은도 그녀를 못 잊어 애가 끊이곤 하였으니;
그대 집은 부안이요, 내 집은 서울이라,
그리워도 볼 수 없고 소식마저 감감하니,
오동에 비 뿌릴 제면 애간장만 끊이어라!
매창도 그를 그리는 여러 수의 한시가 있는 중, 몇 수를 들어보면;
봄바람에 꽃잎들은 어디 없이 휘날리고,
거문고 상사곡 굽이굽이 애끊일 뿐,
그리운 그 님은 여태 어이 이리 못 오시나?
꽃이 지는 봄날이면 더욱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그 심사 풀 길이 없어, 거문고로 ‘상사곡’ 한 가락 미친 듯 뜯고 나도, 그 님은 여전히 없고, 서울 새 사랑에 볼모로 잡혔는가? 슬그머니 샘도 나는, 이 아쉬움! 아쉬움……!
얼룩진 화장으로 주렴도 안 걷은 채,
새소리 요란한 속 ‘상사곡’ 뜯고 나니,
꽃 지는 봄바람 타고 제비 한 쌍 비꼈어라!
봄 아침이다. 대밭집이라 새소리가 요란하다. 주렴도 안 걷은 채, 눈물 질금거려 얼룩진 화장 그대로 상사곡 한 가락 거문고로 뜯고 나서 문을 열치니; 봄바람에 제비 한 쌍 낙화랑 함께 둥실 하늘을 비껴 날고 있다. 그리워 애만 태우던 이 봄도 이제 덧없이 가는 가운데, 그 이별 없는 쌍제비의 다정함이 부럽기만 하다.
비 온 뒤의 서늘바람 처마엔 달 밝은데,
귀뚜라미 울어 새는 한밤 내내 골방에선
답답한 가슴을 치듯 다듬이질 끝이 없다.
답답한 하고한 심사 풀 길이 없어, 주먹으로 제 가슴을 치고 치듯, 방망이로 치고 치는 다듬이질! 밤을 새우고 있는, 가엾은 여심女心이다.
‘그리움!’ 그것은 그 자체 ‘달착지근한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심해의 진주조개 달빛이 하 그리워, 그 ‘그리움’이 가슴속 못[病核]이 되어, ‘보름’만큼 자라 자라 진주로 굵어간다듯이-.
그러나 우리 현대인들은 이미 ‘그리움’이 아름다움으로 숙성熟成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진 있어, 녹음 있어, 동영상 있어, 전화 있어, 휴대폰 있어 영상전화도 할 수 있고, 인터넷에 의한 사이버 공간에서의 만남도 쉽게 할 수 있는 세상! 정 못 견디면 각종 차 있어, 비행기 있어, 숙성도 되기 전에 해소해버리게 되니, 어느 겨를에 깊숙한 ‘그리움’의 참맛으로 익어갈 수 있겠는가?
그리도 애타게 그리다가, 그 정한情恨 품은 채로 요절夭折한 매창의 그 ‘애달픔’이야, 요새 잣대로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다만 그녀의 사리舍利처럼 남아 있는 시편들! 그 수수首首 편편片片이야말로 글자마다 알알이 영롱한 진주가 아니던가?
_ 본문 중에서
나비야 청산 가자 _ 실명씨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감당할 수 없는 춘심春心의 발동이요, 솟구쳐 오르는 여정旅情의 낭만이다.
‘꽃’이란 무엇인가? ‘봄앓이’를 하는 ‘사랑의 열병熱病’이, 홍진紅疹에 열꽃이 내돋듯이, 겉으로 내뿜은 발진發疹이요, 춘정春情의 나상裸像이며, ‘에로스’의 극치極致이다.
삼천리엔 청산마다 사랑의 봄 축제가 한창인데, 나도 장자마냥 나비로 화신化身하여, 노랑나비 흰나비들 문관文官으로 거느리고, 호반虎班 출신 범나비 떼, 호위병護衛兵으로 거느린, ‘왕나비’ 되어, 봄바람에 너울너울 팔도강산 청산마다 상춘행각賞春行脚이나 나서 볼까나!
가다가다 날 저물면 꽃 속에 들어 향기 속 일박하면 그 아니 황홀하랴? 축제 기간 중엔 숙박은 물론, 향기로운 꿀 식사며, 매혹적인 잠자리며, 감미로운 갖은 시중! 다 모두 무료라니, 일 년에 단 한 번의 이런 기회를 어이 차마 놓칠손가? 그런 일 없겠지만 어쩌다 꽃에서 괄시라도 할 양이면, 잎에선들 어떠하리? 초록 이불 싱그러운 향기 속의 그 한 밤도 또한 아름답지 아니하랴?
내킨 김에 훨훨 날아 북쪽까지 다녀오자. 영변의 약산 동대 진달래도 흐드러지게 피었으리? 반세기 애마르던 정! 남남북녀 그리웁다!
?초암이 적료한데 _ 김수장 외
초암草庵이 적료寂廖한데 벗 없이 혼자 앉아
평조平調 한 잎에 백운白雲이 절로 존다.
어느 뉘 이 좋은 뜻을 알 이 있다 하리요? (김수장)
‘평조’란 시조를 창昌할 때의 곡태曲態를 이름이다. 곡태에는 평조, 우조羽調(날래고 씩씩한 가락), 계면조界面調(슬프고 처절한 가락)의 세 가지가 있는데, 평조란 ‘웅숭깊은 저음低音’ 곧, 도량이 크고 넓고 깊숙하여; 되바라지지 않고, 야하지 않고, 거죽에 드러나지 않게, 으늑하고 느직하게 불리어지는 평화로운 가락으로, 온 세상에 봄기운이 가득 떠도는 듯, 백성들의 시름도 다 풀리어 함께 즐김 직한 태평스러운 가락이다. 시로서는, 저 유명한 소강절邵康節(소옹邵雍의 시호)의;
월도 천심처月到天心處 풍래 수면시風來水面時
일반 청의미一般淸意味 요득 소인지料得少人知
가 대표적으로 불리곤 한다. 이를 시조 가락으로 옮겨보면;
달은 천심天心에 두렷이 밝아 있고
바람은 솔솔 수면水面을 스쳐 올 제,
맑고도 시원한 이 맛! 참 아는 이 드물레라!
과연 평화로운 내용이 아닌가? 옛 가객歌客들은 이 한시에다 토만 달아서 평조로 읊곤 했으니;
월도 천심처요, 풍래 수면시라.
일반 청의미를 요득 소인지라.
어즈버 청풍명월이야 어느 그지 있으리?
한술 더 떠, 금주琴酒까지 등장시키기도 했으나, 그 때문에 오히려 ‘청의미’는 축나지나 않았던지?
월도천심처月到天心處에 오현금五弦琴 빗기 안고
풍래수면시風來水面時에 일준주一樽酒 자작自酌하니
세상의 일반청의미一般淸意味는 나뿐인가 하노라! 실명씨
초당이 하 고요하고 다사로운 한낮! 명경지수明鏡止水로 가라앉은 맑은 심경! 저절로 평조 한 가락이 흘러나온다. 나직하나 웅숭깊은 목소리, 그 맑고 평화로운 정대正大한 기상의 목소리가 천지에 가득 번지는 듯, 하늘을 건너던 흰 구름도 걸음을 멈추고, 그 평화로운 가락에 귀 기울여 듣다가 잠이 들어버린 듯, 만물이 한결같이 옴짝하지 못하는 가운데, 평조의 평화로운 가락만이,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메워 흐르고 있는 한낮의 정황이다.
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