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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 문학
· ISBN : 9788934960324
· 쪽수 : 288쪽
책 소개
목차
출가 인연|굴산사에서 다진 비구의 길|무신정변과 승려들|문자인가, 마음인가|범처럼 날카롭게, 소처럼 우직하게|대각국사 의천과 선교 통합|불교의 근본으로 돌아가라|승과 급제|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육조단경》에서 찾아온 첫 깨달음|하가산 보문사, 선교 통합의 첫걸음|공산 거조사에서 시작된 정혜결사|상무주암에서 얻은 완전한 깨달음|정혜결사의 근본도량을 닦으며|뒤늦게 얻은 수제사 혜심|120일 동안 이뤄진 수선사 법회|침묵의 가르침, 열반
책속에서
“참선 수행을 하려는 자는 먼저 마음가짐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수행자는 다섯 가지를 갖춰야 하나니 그것은 계를 지켜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며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정도의 옷과 음식을 갖춰야 한다. 또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머물러야 하며 식제연무(息諸緣務)라 해서 주변을 잘 정리하고 생활을 단조롭게 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선지식을 가까이 모셔야 할 것이니 여기서 선지식이란 사찰 살림을 잘 꾸려서 수행인을 보호하는 분, 서로 경책할 수 있는 도반 그리고 진리를 일깨워주는 스승 모두를 일컫는다. 한편 수행자는 탐욕과 분노, 게으름, 유희를 버려야 하며 자신과 스승, 불법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 몸과 마음, 호흡과 수면, 식사를 잘 조절하고 선정과 지혜를 얻기 위한 서원을 세울 것이며 한마음으로 정진에 몰두해야 하느니라.”
지눌은 원효의 깊고 명석한 저술, 불법을 왕과 귀족만의 전유물이 아닌 이름 없는 대중의 정신적 귀의처로 삼게 한 노력에 주목했다. 그것은 20대인 지눌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보살행이었으며 그렇기에 원효성사라는 뫼는 더욱 까마득했다. 하지만 자신이 그 뫼를 넘지 못하면 잔뜩 타락하고 쇠잔해진 고려의 승가를 더 이상 바로 세울 수 없다는 위기의식도 더욱 깊어졌다.
대중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이번 승과에서 장원급제했다는 지눌에게 이목을 집중했다. 미간이 넓고 눈매가 길고 날카로우며, 귀가 큰 지눌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나는 듯했다. 잠시 숨 막힐 듯한 침묵이 좌중을 사로잡은 뒤 지눌의 사자후가 이어졌다.
“소승이 들으니 ‘땅으로 인하여 넘어진 사람은 땅으로 인하여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땅을 떠나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한 마음이 미혹하여 가없는 번뇌를 일으킨다면 그 사람은 중생이요, 마음을 깨달아 가없는 묘한 작용을 일으킨다면 그 사람이 바로 부처입니다. 미혹함과 깨달음은 다르지만 요는 모두 한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떠나 부처가 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