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 잡지 > 크릿터
· ISBN : 9788937469039
· 쪽수 : 244쪽
· 출판일 : 2020-02-07
책 소개
목차
특집 : 재현/리얼리즘
오은교_ ‘혐한’과 ‘노재팬’ 운동 속 일본 여성을 읽는 일
김건형_ ‘퀴어 신파’는 왜 안 돼? -퀴어서사 미학을 위하여
박혜진_ 자기중심주의 시대의 공동체 재현
조대한_ 남성 캐릭터 재현 양상과 서사적 재배치에 관한 소고
이지은_ 여성 재현의 ‘몫’을 묻다 -최은영, 조해진, 김숨의 근작을 돌아보며
리뷰 : 소설
최선영_ 좀처럼 가만할 수 없는 -『가만한 나날』
한 설_ GLaDOS -『골든 에이지』
소유정_ 사랑_최종_이게진짜_진짜최종.txt -『대도시의 사랑법』
송민우_ 애도와 건축 -『레몬』
이철주_ 감히 설명되어선 안 될 -『산 자들』
인아영_ 너무 아름다운 꿈 -『어제는 봄』
김 녕_ 오직 붙들 것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박다솜_ 과학으로도 사랑은 만들 수 없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강보원_ 모든 것들의 평면 -『인터내셔널의 밤』
김복희_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제자리 -『줄리아나 도쿄』
김주선_ 정소현과 현대의 비극 -『품위 있는 삶』
장예원_ 질문이 소용없는 세계에 대응하는 방식 -『호재』
리뷰 : 시
정재훈_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것들이 다시 시작되기를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양순모_ 다정함의 건축술 -『무구함과 소보로』
안서현_ 사랑의 플레로마 -『반과거』
이병국_ 겨우, 사람이라는 말 -『밤이 계속될 거야』
민경환_ 덜 죽은 시체를 안 사랑하기 시작하는 거짓말 속에서 -『배틀그라운드』
김영삼_ 빈집에서 들리는 소리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전영규_ 나는 죽을 줄 모르는 반(半)인간입니다 -『사랑과 교육』
김지윤_ 두렵고 황홀하고 미친, 삶과 인간과 시에 대해여 -『아네모네』
허희_ 반복하는 사도 -『아무는 밤』
신수진_ 제목 없음의 방을 발간하다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이진경_ 빛이 사라진 이후 -『주적인 안녕』
김영임_ ‘어린 귀신’과 시적인 것 -『이런 얘기는 조금 어지러운가』
리뷰 : 인문사회
김준섭_ 길어져라 길어져라 길어져라 내 머리카락아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노지승_ 역사의 변화는 누구의 몫인가 -『3월 1일의 밤』
김해원_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김혼비_ 말들로 세상을 터트리기 -『할매의 탄생』
김초엽_ 극복의 서사에서 연대의 서사로 -『희망 대신 욕망』
작가론
양윤의_ 삼중은유(Triphor) - 은희경론
김요섭_ 극장 바깥의 배역들 - 조해진론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기성의 ‘리얼리즘’이 보편적 언어로 번역된 타자의 고통을 ‘진정’하게 인식하는 주체의 자족감에서 미학적인 가치를 찾는 반면, 퀴어 신파는 규범에 의해 제한된 언어로 주관적 감정을 발화하면서 자기 세계를 변혁하는 데서 미학적인 가치를 찾는다. 이성애 신파는 이성애/젠더규범이라는 ‘진정한’ 세계원칙에 의거하기에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조차 없고 그 대상만을 문제 삼으면 된다. 하지만 퀴어 되기는 자신의 신체와 욕망을 응시하고, 규범과 다른 자신을 되물으면서 촉발되는 사태이며, 주변의 물질적 관계와 자신을 조율해 가는 지속적인 수행 과정에 가깝다. 규범의 언어와 자기(의 감정과 인식) 사이의 거리를 부단히 읽어 내는 문해력이 퀴어 되기의 방법이다. 그런 점에서 퀴어 신파는 자신을 끊임없이 되묻는 (과잉) 독해를 통해서 자기의 (과잉) 인식에 이르는 연속적 수행이다.
- 김건형, 「‘퀴어 신파’는 왜 안 돼?」에서.
고정된 공동체는 앞서서 합의한 모종의 기준으로 개인을 탈각시킨다. 확고한 기준과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개인을 솎아 내는 공동체는 항상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에 두고 변하지 않기 위해 변수를 통제한다. 그러나 변수들이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시대, 톰 울푸의 표현대로라면 ‘나의 시대’이고 가쿠타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실이 멸종된 시대에 자랑스러운 변수로서의 ‘나’를 통제할 권리가 공동체에는 없다. 공동체는 움직여야 하고 움직이는 공동체만이 지속 가능한 공동체일 수 있다. 공동체(共同體)의 개념을 형성하는 ‘단일성’에 변화를 가하는 것이 공동체의 본질을 변형시키는 것은 아니다. 「1945」에서 확인한 것처럼 애초에 단일성이라는 개념이 허위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공동체(共同體)에서 공동체(公動體)로, 의미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 박혜진, 「자기중심주의 시대의 공동체 재현」에서.
‘냉소’는 거리 두기의 결과다. 어떤 경우에도 함께할 수 없는, 거리를 없앨 수 없는 이들만이 냉소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1977년 기숙사 322호와 417호에서 는 그럴 수가 없다. 이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냉소가 아니라 ‘공감’이다. 이들의 소소한 취미, 사소한 습관, 자잘한 버릇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거나 웃음을 짓게 만든다. 1995년에 출간된 새의 선물(문학동네)에서부터 지금까지 은희경 소설의 인물들에게 부여된 냉소라는 평가에 대해 전면적인 검토가 이뤄져야 하는 시점은 아닐까. (……) 인물들이 냉소의 전략으로 발언해야 했던 시대가 있었으나, 그 엄혹한 시대에도 저 인물들은 서로를 냉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이 서로의 삶을 사소하거나 비루하거나, 무가치하거나 무의미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 바깥에 현실의 가치가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그 시선이야말로 가부장적인 이념의 시선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저 기숙사의 방을 규방(閨房)이라고 믿는 그런 시선 말이다.
- 양윤의, 「삼중은유: 은희경론」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