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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한국 과학소설
· ISBN : 9791188660681
· 쪽수 : 483쪽
· 출판일 : 2025-11-27
책 소개
2057년. 인류는 사람의 뇌를 스캔, 기억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칩을 개발하여 상용화하고 있다. 복제된 신체에 이 칩을 이식하여, 죽지않고 생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 이현은 시냅스칩을 탑재할 수 있는 전투용 의체 개발 업체의 수석 엔지니어다. 탁월한 실력으로 정부 고위 인사의 눈에도 들어 승승장구의 길이 열린 어느 날, 현의 인생은 완전히 뒤집혀 버린다.
우연히 거대 범죄조직 ‘도마뱀’의 의체 범죄 현장을 목격한 것. 그들은 이미 죽은 이들을 의체로 부활시켜 성매매에 활용하고 있다. 사건의 목격자로 연루된 현은 법정에서 양심 증언을 해버리고, 도마뱀의 목표물이 된다. 곧이어 도마뱀은 현과 그의 가족을 모두 납치하고, 현은 눈앞에서 딸과 아내를 잃은 뒤 뒤이어 자신도 살해당한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현은 새로운 신체에서 깨어난다. 누군가가 자신의 의식을 의체 전이시킨 것. 그리고 머릿속에서 은밀하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는다.
“네 가족들의 복수를 도와줄테니 네 몸을 넘겨.”
그것은 바로 현재는 모습을 감췄다고 알려졌던 역사상 최악의 천재 연쇄 살인마 두억시니의 의식이었다.
결국 가족의 복수를 이루고 사회의 악을 쳐부수기 위해 최악의 악마와 손을 잡은 엔지니어 현.
두억시니와 동행할수록 현은 점점 두억시니의 강력함과 악마성에 융화되어간다.
현은 문득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누구인가?
장르에서 출발하여 실존의 질문을 던지다.
‘나’는 선택과 기억에 의한 서사적 환영인가?
죽음이 더 이상 인간의 종착지가 아닌 시대. 기억은 칩으로 저장되고, 의식은 새로운 육체 위에 이식된다. 그렇게 탄생한 또 하나의 생은 정말 ‘나’라고 부를 수 있는가. 마음이 인간의 본질을 이룬다고 할 때 마음조차 옮겨 심길 수 있다면, 인간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데드 헤드 대드>는 한 인간의 불타는 복수심에 기반한 장르에서 출발하여“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까지 추락해 들어가는 문학적 깊이를 보인다. 의식과 의식이 한 신체에 공존하는 설정 속 플롯을 따라가며 우리는 묻게 된다. ‘나’라고 믿어온 존재는 실은 선택과 기억이 만들어낸 서사적 환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고.
아내와 딸을 지키고픈 가장의 마음과 연쇄 살인마의 마음이 뒤섞이는 이야기 위에서 더 이상 선과 악은 명확히 갈라지지 않는다. 정의는 피를 묻히며 완성되고, 악마는 정의의 목소리를 부르짖는다. 이 소설에서 가장 섬뜩한 것은 살인마의 칼날이 아니라, 정의와 복수, 인간성과 생존이 뒤엉키며 흐려지는 경계다.
“죽음을 넘어선 자에게 죄란 무엇인가. 기억을 벗겨낸 인간에게 영혼이란 존재하는가.”
<데드 헤드 대드>는 독자에게 장르적 쾌감만을 내세우지 않는다. 폭력과 복수의 서사를 이용해, 존재의 가장 밑바닥, 타락과 죄책 그리고 실존의 흔들림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인간은 심장이 뛰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기억하기 때문에 인간이다.”
그렇다면 기억마저 칩에 저장되고, 타인의 육체를 빌릴 수 있는 세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인간일 수 있는가? 선한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
목차
1장. 돼지들
2장. 무덤에서 요람으로
3장. 사냥개의 방식
4장. 파도의 틈
5장. 덫과 숲
6장. 최후의 병기
7장. 유령도시
8장. 빌린 혀
9장. 꿈꾸는 세계수
에필로그. Dead Head Dad
책속에서
순간 연희는 몸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에게는 지금 세상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투명한 망막 위로 알 수 없는 잔상들이 계속되었다. 오 경사와 대원들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울렸다. 연희의 눈에도 하늘이 보였다. 지후가 보고 있던 3미터짜리 하늘이었다. 눈은 전보다 더욱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폭설이었다.
내리는 눈의 양만큼이나 세상은 고요했다. 비와 눈의 차이점은 바로 그것이다. 눈은 본질적으로 조용하다. 눈은 구름의 죽음이고, 침묵의 비다. 어디 그뿐인가?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을 하얗게 덮어주기까지 한다. 그래서 연희는 눈을 썩 마음에 들어 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그랬다.
―눈 오는 날 태어난 하루살이는, 세상에 눈만 오는 줄 알다 죽을까?
죽은 남편의 목소리가 연희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반복되어 울렸다. 순간 적막이 깨지고 세상의 온갖 소리들이 연희의 귀에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각종 장비의 작동음과 무전 소리가 그 목소리와 겹쳐 기묘한 레이어를 형성했다. 연희는 어지러운 소음의 바다에 잠겨 있었다. 연희의 눈에 빛의 줄기들로 아무렇게나 갈라진 하늘이 보였다. 먹구름에 전부 금이 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연희는 뒤늦게 대답이 될 만한 말을 생각해 냈다. 세상에 눈만 오는 줄 알다 죽는다면, 그건 일종의 축복일 것이라고. 그러니까 그 하루살이는 분명, 괜찮을 거라고.
주완이 현에게 수저를 건네며 말했다.
“좀 먹어. 배고플 텐데.”
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현은 멍한 눈으로 가만히 창밖만 쳐다봤다. 주완은 수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음식 용기의 뚜껑을 닫으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했다. 불현듯 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며칠이야?”
“3월 28일.”
납치를 당했던 날로부터 벌써 2주일이나 지났음을 확인한 현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주완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너, 도로변에서 발견됐었어. 절단된 사체로.”
“…….”
“그러고 나서 아락실 사건 증언하겠다고 나섰던 사람들 전부 증언 취소했고.”
추가 증언을 막기 위한 경고성 시체 유기였다. 그 사실을 빠르게 깨달은 현은 손을 세게 말아 쥐고는 창밖의 도시를 바라봤다. 현의 혼란스러운 마음과는 달리 고요했다. 이윽고 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끝난 거잖아.”
“…….”
“왜 이렇게 된 거야?”
주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유리창에 주완의 굳은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현이 고개를 돌려 주완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나, 왜 살아 있냐고.”
주완은 현의 시선을 피하며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창밖에 내리는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제설용 드론과 워커들이 열심히 도시에 묻은 눈을 지워내고 있었다. 주완이 그 광경을 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널 의체화했어.”
주완의 말에 현이 곧바로 물었다.
“현서랑 주영이는?”
“…….”
“어? 어딨어?”
현이 재촉하듯 물었다. 주완의 시선은 계속 현이 아닌 도시를 향한 상태였다. 주완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눈처럼 짙게 가라앉았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현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실종 상태야.”
방향제와 암모니아 냄새가 뒤섞인, 향기인지 악취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냄새에 현은 눈을 떴다. 현은 쿨럭거리며 마른기침을 토해냈다.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새 몸이 최선을 다해 마취 효소를 전부 분해해 낸 덕이었다. 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화장실 안이었다. 경찰도, 직원도, 워커도, 다른 손님도 없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현은 자신이 어떻게 멀쩡히 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현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게 무슨…….”
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디에고였다. 정확히는 디에고의 시체였다. 더 정확히는, 머리가 열려 있는 시체였다. 현은 일어서서 디에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디에고의 머리가 갈라져 있었다. 목 위쪽으로 붉은 살이 갈래갈래 벌어진 것이 마치 꽃처럼 피어난 모양새였다. 현은 주영이 집에 가져왔던 석산의 모습을 떠올렸다. 비슷한 이미지였다. 그의 목구멍에서 쏟아져 나온 피는 변기 물에 번져 빨간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피비린내가 났다. 현은 헛구역질을 하며 물러섰다. 그때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어디선가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현은 화들짝 놀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사람은 없었다. 화장실 거울에는 오로지 현의 모습만이 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
섬뜩하면서도 부드럽고, 날카로우면서도 지적인 목소리였다. 현은 이게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려고 애썼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현은 다시 디에고의 열린 머리를 응시하며 물었다.
“누구야?”
현의 물음에 목소리가 침묵하다가 말했다.
‘구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