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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한국 과학소설
· ISBN : 9791188660681
· 쪽수 : 483쪽
· 출판일 : 2025-11-27
책 소개
목차
1장. 돼지들
2장. 무덤에서 요람으로
3장. 사냥개의 방식
4장. 파도의 틈
5장. 덫과 숲
6장. 최후의 병기
7장. 유령도시
8장. 빌린 혀
9장. 꿈꾸는 세계수
에필로그. Dead Head Dad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순간 연희는 몸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에게는 지금 세상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투명한 망막 위로 알 수 없는 잔상들이 계속되었다. 오 경사와 대원들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울렸다. 연희의 눈에도 하늘이 보였다. 지후가 보고 있던 3미터짜리 하늘이었다. 눈은 전보다 더욱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폭설이었다.
내리는 눈의 양만큼이나 세상은 고요했다. 비와 눈의 차이점은 바로 그것이다. 눈은 본질적으로 조용하다. 눈은 구름의 죽음이고, 침묵의 비다. 어디 그뿐인가?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을 하얗게 덮어주기까지 한다. 그래서 연희는 눈을 썩 마음에 들어 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그랬다.
―눈 오는 날 태어난 하루살이는, 세상에 눈만 오는 줄 알다 죽을까?
죽은 남편의 목소리가 연희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반복되어 울렸다. 순간 적막이 깨지고 세상의 온갖 소리들이 연희의 귀에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각종 장비의 작동음과 무전 소리가 그 목소리와 겹쳐 기묘한 레이어를 형성했다. 연희는 어지러운 소음의 바다에 잠겨 있었다. 연희의 눈에 빛의 줄기들로 아무렇게나 갈라진 하늘이 보였다. 먹구름에 전부 금이 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연희는 뒤늦게 대답이 될 만한 말을 생각해 냈다. 세상에 눈만 오는 줄 알다 죽는다면, 그건 일종의 축복일 것이라고. 그러니까 그 하루살이는 분명, 괜찮을 거라고.
주완이 현에게 수저를 건네며 말했다.
“좀 먹어. 배고플 텐데.”
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현은 멍한 눈으로 가만히 창밖만 쳐다봤다. 주완은 수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음식 용기의 뚜껑을 닫으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했다. 불현듯 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며칠이야?”
“3월 28일.”
납치를 당했던 날로부터 벌써 2주일이나 지났음을 확인한 현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주완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너, 도로변에서 발견됐었어. 절단된 사체로.”
“…….”
“그러고 나서 아락실 사건 증언하겠다고 나섰던 사람들 전부 증언 취소했고.”
추가 증언을 막기 위한 경고성 시체 유기였다. 그 사실을 빠르게 깨달은 현은 손을 세게 말아 쥐고는 창밖의 도시를 바라봤다. 현의 혼란스러운 마음과는 달리 고요했다. 이윽고 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끝난 거잖아.”
“…….”
“왜 이렇게 된 거야?”
주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유리창에 주완의 굳은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현이 고개를 돌려 주완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나, 왜 살아 있냐고.”
주완은 현의 시선을 피하며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창밖에 내리는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제설용 드론과 워커들이 열심히 도시에 묻은 눈을 지워내고 있었다. 주완이 그 광경을 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널 의체화했어.”
주완의 말에 현이 곧바로 물었다.
“현서랑 주영이는?”
“…….”
“어? 어딨어?”
현이 재촉하듯 물었다. 주완의 시선은 계속 현이 아닌 도시를 향한 상태였다. 주완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눈처럼 짙게 가라앉았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현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실종 상태야.”
방향제와 암모니아 냄새가 뒤섞인, 향기인지 악취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냄새에 현은 눈을 떴다. 현은 쿨럭거리며 마른기침을 토해냈다.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새 몸이 최선을 다해 마취 효소를 전부 분해해 낸 덕이었다. 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화장실 안이었다. 경찰도, 직원도, 워커도, 다른 손님도 없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현은 자신이 어떻게 멀쩡히 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현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게 무슨…….”
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디에고였다. 정확히는 디에고의 시체였다. 더 정확히는, 머리가 열려 있는 시체였다. 현은 일어서서 디에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디에고의 머리가 갈라져 있었다. 목 위쪽으로 붉은 살이 갈래갈래 벌어진 것이 마치 꽃처럼 피어난 모양새였다. 현은 주영이 집에 가져왔던 석산의 모습을 떠올렸다. 비슷한 이미지였다. 그의 목구멍에서 쏟아져 나온 피는 변기 물에 번져 빨간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피비린내가 났다. 현은 헛구역질을 하며 물러섰다. 그때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어디선가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현은 화들짝 놀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사람은 없었다. 화장실 거울에는 오로지 현의 모습만이 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
섬뜩하면서도 부드럽고, 날카로우면서도 지적인 목소리였다. 현은 이게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려고 애썼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현은 다시 디에고의 열린 머리를 응시하며 물었다.
“누구야?”
현의 물음에 목소리가 침묵하다가 말했다.
‘구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