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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37492174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24-06-28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망해 가는 세상에서
1부 지옥의 교정공
피와 해골 신도
무명용사
나를 좆되게 하려는 모든 사람들과 사람 아닌 것들
로써와 로서의 구분
지옥에서 밭 갈기
울어라!
2018년 9월 12일
교정기관차
이차원의 교정공들
최악의 저자
든과 던의 구분
핵 광야의 피케팅과 라디오 방랑
2019년 9월 21일
나의 교정 노하우들
교정의 요정
번제물
띄어쓰기
교정의 골짜기
엉덩이: 두 개인가?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 上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 下
2부 문학과 일기
독서, 모임
아버지의 해방일지(2022)
우리의 사람들(2021)
인간만세(2021)
모든 것은 영원했다(2020)
연년세세(2020)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
황금 물고기(1997)
먼 별(1996)
토성의 고리(1995)
다섯째 아이(1988)
리옴빠(1927~1949)
드리나 강의 다리(1945)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1941)
2019년 12월 1일
미쳐 가는 교정공
오늘일기 챌린지
2022년 5월 2일
연자매
2022년 6월 7일
늪괴물
3부 교정공기
개꿈
2023년 1월 18일
신발을 끄는 녀석들이 있다
2023년 3월 24일
2023년 4월 25일
불타는 들판
2023년 9월 25일
2023년 11월 13일
<h2>교정공이 되어</h2>
문필공화국(멸망편)
2024년 1월 3일
2024년 3월 26일
심청이–정신, 反심청이–정신
2024년 4월 2일
2024년 4월 9일
시를 위한 옹호
2024년 4월 11일
일기의 끝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가 도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이제는 희미해졌습니다. 교정공이라는 직업도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바늘방석의 바늘들처럼 꽂힌 채 일터로 집으로 실려 가는 출퇴근길 나는 생각합니다. 바로 지금이 인류 역사상 상대적으로든 절대적으로든 최대의 읽고 씀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 아닐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또는 바로 그래서일지, 나 교정공의 일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뭔가로 곧 교정공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쓴 사람 자신의 조심성으로, 아니면 무슨 검사기로, 발달한 AI로.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사실을 교정공들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굳이 대체할 필요도 없이 어차피 헐값이고…… 해 본 적도 없는 녀석들이 멋대로 말합니다. ‘교정이라는 일은 필요하지 않다’고 하지나 않으면 다행인 판국입니다. 실제로 교정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러 이유를 대면서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꼭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욕을 들은 것처럼 흠칫 놀랍니다. 나는 청소당하는 걸까요? 그러나 내가 놀라는 진짜 이유는, 견디기 어려운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실은 마음 한편에서는, 그에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굳이 외치지 않아도 이 세계가 내 귀에 대고 그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필요하지 않다고요. 맞습니다. 나는 비밀스럽게 공공연하게 분명하게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딴 거, 나 같은 거, 교정공 따위는 필요가 없다! 너희 맘대로들 해! 그겁니다. 그냥 맘대로들 해…….
— 「들어가며: 망해 가는 세상에서」
내가 입사하기 전, 어떤 교수 녀석이 □□□이라고 틀리게 쓰려는 걸 끝까지 □○□으로 고치려다 대판 싸우고 퇴사한 교정공이 한 명 있었다고 들었다. 그는 단 하나의 자음을 옳게 고치기 위해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을, 우리 같은 노동자들에게는 거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노동 그 자체를 걸었다.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은 그의 불굴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 로써와 로서 따위에서 물러날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그의 얼굴은 물론이요 이름도 모르지만 그는 오늘 무명용사 되어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잘못된 교정을 다시 옳게 되돌리며, 나는 그 무명용사가 왜 교수와 대판 싸웠는지 이해한다. 내가 겪은 일인 것처럼 이해한다. 그것은 글자의 옳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전혀 아니다.
— 「무명용사」
교정교열자의 업무는 지옥에서의 밭 갈기와 같은 것이다.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일을, 전혀 가능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 감히 가능하게 하려고, 무한한 책임 영원한 책임으로 홀로 떠맡는 것이다. (……)
이 세상이 다 틀려도 내가 교정공으로서 딱 하나를 교정할 수 있다고 하면 ‘든과 던’이다. 든과 던을 모두 고치고 난 뒤, 욕심 많은 내가 눈물로 엎드려 제발 하나만 더…… 하나만 더…… 빌고 울고불고 손을 깨물고 발을 깨물고…… 그렇게 해서 하나 더 고칠 수 있다면 단연 ‘로써와 로서’다. 둘은 아주 다른 단어인데 또 많이 혼동된다. 끼새수교들 원고에서도 보면 백중팔십이 반드시 틀리고 넘어가는 오류 맛집으로서, 내 생각에는, 자기 노동에 있어 언어를 주요하게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구분할 줄 알아야만 한다. 나는 뭐 어려운 얘기까지 안 한다. 우린 야만스러운 저 교수 녀석들과 달라야 한다. 우리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
— 「로써와 로서의 구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