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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88942103676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서문: 조나단 윌슨-하트그로브
감사의 글
서론
1부 순응주의를 넘어서
1. 노예 상태의 선택
2. 그대 자신에게 진실하라?
3.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4. 경건한 오만
5. 하나님의 어리석음
2부 불순응의 길
6. 미묘한 세속성
7. 존경할 만한 세속성
8. 불순응과 국가
9. 시간과 그리스도인
10. 제자도와 자기주장
11. 너희는 ‘예’ 할 때에는 ‘예’라는 말만 하라
12. 무제한적인 사랑
13. 그리스도인의 의존 선언
14. “더 큰 의”
15.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마음의 평안
16.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17.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라
3부 그리스도께 순응하는 길
18. 십자가의 의미
19. 제자도의 값
20. 평화는 우리가 선포할 메시지다
21. 제자도는 하나의 선교 전략이다
22. 하나님이 나의 의탁을 지키신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르네상스 이래 기독교 사상의 큰 관심사는 기독교 사상 속으로 스토아 관념?나 자신이 되는 것, 나 자신을 존중하는 것, 혹은 나 자신을 실현하는 것?을 몰래 들여오는 일이었다. 이런 밀수입을 하는 자들은 예수께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한 것은 무엇보다 먼저 “네 자신을 사랑하라”는 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이와 반대로, 그 말의 뜻은 이렇다. “너는 분명히 네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네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다.” _2장. 그대 자신에게 진실하라?
그리스도의 시대에 사람들의 충성심을 얻으려고 하나님과 경쟁을 벌인 대표적인 경쟁자는 로마 제국이 숭배하는 시저(가이사)였다.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을지언정 황제 숭배를 거부했다. 그러나 4세기에 이르러 교회가 콘스탄티누스 아래서 관대한 대우를 받고 테오도시우스 아래서 국교로 지정되었을 때, 교회 지도자들은 어쩐 일인지 비판적 판단력을 상실하여 국가의 후견을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에 따른 교회와 국가의 혼동은 당시로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의 사유와 행동과 증언을 오염시켜 왔다. 초기 불순응의 형태는 이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는 사항들을 기독교 진리에 비추어 분석하고 판단하는 역량을 되찾아야 한다. _6장. 미묘한 세속성
상업적인 기부금과 생명 보험의 대안은 그런 것을 금하는 규정이 아니라 그런 것을 대체할 만한 기독교식 나눔이다. 상업적인 보험에 대한 신뢰가 보편화되었다는 사실은 교회가 자신을 돌보듯이 어려운 자를 돌볼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대다수의 경우, 기독교 모임이 과부에게 필요한 것을 너무도 잘 공급해 주기 때문에 교회가 상업적인 보험 가입을 금지할 만한 도덕적 권리를 갖고 있다고 증명하기란 무척 어려울 것이다. _7장. 존경할 만한 세속성
16세기에 아나뱁티스트는 그들의 순종 때문에 세상의 분노를 자초했다. 특정한 이슈들?신약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유아 세례와 맹세를 거부한 것?은 더 깊은 차원의 거부가 겉으로 드러난 증상일 뿐이었다. 더 깊은 차원의 거부는 곧 그들 자신을, 충성 맹세와 유아 세례를 종교적 버팀목으로 삼는 국민과 국가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의 문제점은 그릇된 교리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불충성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순교자들이 “이 세상은 우리에게 너무 작은 곳이 되었다”고 불평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고 원수를 포함해 모든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 중세 유럽의 도시 국가들과 여러 지방의 믿을 만한 시민이 되지 못했다. _8장. 불순응과 국가
만일 예수께서 1973년에 프랑스에 계셨더라면, 그는 콩코드와 라 빌레트에 대해 얘기했을 것이고, 누구나 그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분은 바로 헤롯의 멍청한 프로젝트에 대해 그런 얘기를 했던 것이다. 예수는 공공 영역에서 실례를 끌어와서 믿음의 문제를 극적으로 다루기로 하신 것이다. 그는 악명 높은 정치적 행동을 부각시켰다. 왕이 전쟁을 벌이기로 한 결정에는 공적인 차원이 있고, 그 수치에도 공적인 차원이 있다. 그런즉 당신이 설사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예수를 좇는다고 해도, 그 헌신에는 공적인 차원이 있다. 만일 진심이 아니라서 당신이 주저앉는다면, 그런 수치에도 공적인 측면이 있다. _19장. 제자도의 값
그렇다면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를, 예수의 죽음 이전에 그 단어가 담고 있었던 일반적인 의미에서 도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어떻게 예수를 죽였는가” 하는 것을 의미할 수 없었다. 십자가는 유대 당국이 사람을 죽일 권한이 있을 때 누군가를 죽이는 방식이 아니었다. 십자가는 로마인들이 폭도와 열심당원과 혁명가를 처형할 때 이용하는 특정한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이런 말씀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너희가 만일 나를 따라오려거든, 너희는 사회 구조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사회의 버림을 받는 자들이 당하는 그런 고난을 당해야 할 것이다. 그저 옛날의 어떤 고난과 예전의 어떤 배척이 아니라 반역자가 당하는 특정한 종류의 배척이, 너희가 나를 따르고 싶다면, 너희의 일상적인 운명이 될 것이다.” _19장. 제자도의 값
무저항과 청지기직과 (온갖 세부적인 면에서의) 올바른 삶을 회피하는 복음 전도가 과연 좋은 전도 테크닉인가? 아니면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노력, 즉 성공할 경우 교회가 요구하는 것을 모두 짐으로 여기는 미지근한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할 그런 노력인가? _21장. 제자도는 하나의 선교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