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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서광선의 정치신학 여정)

서광선 (지은이)
  |  
한울(한울아카데미)
2018-04-16
  |  
2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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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책 정보

· 제목 :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서광선의 정치신학 여정)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인물
· ISBN : 9788946064782
· 쪽수 : 408쪽

책 소개

민주화운동과 기독교 사회운동의 산 증인 서광선 목사의 삶과 신학. 신학자이자 교수, 목회자로서 한평생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기독교 사회운동에 헌신해온 서광선 목사가 아흔의 고개를 앞두고 자신의 삶과 신학을 돌아보는 자서전을 펴냈다.

목차

책을 열며

I. 1905년에서 1979년까지

제1장_일제 강점기의 가족사와 한국교회의 항일 투쟁
제2장_공산 치하의 북한교회해방과 분단과 전쟁 사이
제3장_남한의 해방 정국과 전쟁, 그리고 4.19
제4장_4.19 학생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 그리고 한국교회
제5장_군부 독재에 대항하는 한국교회
제6장_유신시대의 폭압정치와 궁정동의 총소리

II. 1980년에서 2017년까지

제7장_신군부에 대한 저항과 19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
제8장_1980년대 신군부 독재와 해직교수 시절
제9장_에큐메니컬 평화통일 운동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제10장_“우리의 소원은 통일”88선언
제11장_1990년대 기독교의 한반도 통일운동
제12장_“햇볕정책”, 북핵, 그리고 봉쇄
제13장_박근혜 정부의 침몰 그리고 촛불혁명

책을 덮으며

저자소개

서광선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1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났으며 대한민국 해군에서 복무했다(1951~1956년). 미국에서 철학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고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M.Div)를 수료했으며 밴더빌트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1964~1996년) 동 대학교 문리대학장, 교목실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정치적 이유로 해직당했다가(1980~1984년) 그 기간 중에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수학해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목사로 안수를 받고 압구정동 현대교회를 담임했다. 세계 YMCA 회장을 역임했고(1994~1998년) 미국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 미국 드류 대학교 신학대학원, 홍콩 중문대학교 초빙교수로 활동했으며, 홍콩 주재 아시아 기독교고등교육 연합재단(United Board for Christian Higher Education in Asia)의 이사 및 부회장을 역임했다(2001~2006년). 저서로는 ??종교와 인간??,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반성??, The Korean Minjung in Christ 등 다수가 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신학과 교회≫ 편집위원장 일을 했다(2014~2016년).
펼치기

책속에서

아버지는 당국의 집요한 간섭을 받으면서도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려움이 커지면 커질수록 아버지의 생각은 굳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불안하면서도 자랑스러웠다. “공산주의 독재는 우리가 원하던 독립된 나라가 아니다. 남과 북이 갈라져서 살 수 없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하시던 해방자 모세의 이야기,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단 이야기, 예수님이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이야기 등으로 평화와 통일 그리고 남과 북의 화합을 강조하면서 듣는 이들에게 해방과 통일의 희망을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듣는 이들은 공산당 정권의 독주와 강권 통제정치 그리고 기독교 탄압 때문에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는 고민이 더해갔다. 남한으로 월남하기로 하고 평양까지 와서 그 기회를 살피고는 있었지만, 그 기회가 쉽게 오는 것 같지 않았다. 38선의 경계가 점점 더 강화되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에 더하여 아버지는 교인들이 주일마다 교회에 모여서 위로를 받으며 예배에 열중하고 목사의 설교에 실낱같은 희망을 키우고 있는 것을 보면서 “도저히 양떼를 버리고 우리 혼자 살겠다고 도망갈 수 없다”면서 한숨을 내쉬는 날이 많았다. (제2장 “공산 치하의 북한 교회” 中)


누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피난민은 서울에 있는 영락교회에 가면 된다고 해서, 나도 피난민들을 따라 걸어서 영락교회로 갔다. 그때는 서울역에서 고개만 넘으면 영락교회였다. 허물어진 건물들, 아직도 불타고 있는 집들 사이를 걸어서 영락교회 뜰에 도착했을 때 나는 놀랐다. 영락교회 뜰과 건물 안은 피난민들로 가득차 있었다. 나처럼 헤어진 가족들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면 반가움에 눈물로 부둥켜안고 우는 아우성으로 교회 뜰은 아수라장이었다. 게시판에 붙어 있는 피난민 소식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우리 식구들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선 나는 그 게시판에 내 이름을 올리고 우리 가족 이름을 큰 글씨로 써 붙였다. 내가 부산으로 피난 갈 것이고, 멀쩡하게 살아서 서울까지 왔다는 글도 덧붙였다. 그리고 돌아서는데 “서 선생 아니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3장 “남한의 해방 정국과 전쟁, 그리고 4.19” 中)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주위에 가득히 타고 있던 승객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 혼자만 그 넓은 기차 칸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서 일어나 옆의 기차 칸에 건너가 보았다. 그 칸에는 흑인 승객들만 가득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내 자리로 돌아오니 백인 몇 사람이 내 칸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지나가는 차장에게 영문을 물었더니 아주 간단한 대답이었다. 이 칸은 백인들만 타는 칸이고 옆 칸은 흑인들만 타는 흑인 전용 칸이라는 것이다. 1953년 그 당시만 해도 미국의 흑백 인종차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메이슨?딕슨선(Mason Dickson Line)이라고 해서 미 대륙의 북부와 남부를 갈라놓는 선이 있는데, 그 선의 북쪽에서는 흑백 차별 없이 기차도 같이 타고 버스도 같이 타고 화장실이나 식당도 같이 사용할 수 있지만, 남부에 내려가면 흑인들이 타는 기차 칸도 따로이고, 버스 좌석도 흑인들의 것은 뒤쪽에 있었으며 식당은 물론 화장실까지도 흑인용과 백인용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제3장 “남한의 해방 정국과 전쟁, 그리고 4.19”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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