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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어린이 > 동화/명작/고전 > 국내창작동화
· ISBN : 9788950927783
· 쪽수 : 126쪽
· 출판일 : 2010-12-20
책 소개
목차
1. 난 약속한 적이 없다
2. 공주 선생님과 공갈 선생님
3. 우리 가족은 모두 서먹하다
4. <터널 속으로> 향하는 이유
5. 갓파는 나와의 약속을 지킨다
6. 내가 붙잡히다니, 하늘도 무심하다
7. 나에게 약속을 정하란다
8. 또 약속을 정하란다
9. 어른들은 약속을 좋아한다
10. 지키려 해도 지킬 수가 없었다
11. 미우나 고우나 공주 선생님
12. 기다려라. 기다려야 한다
13. 약속은 돌아오는 게 있다
책속에서

잽싸게 로그아웃을 했다. 게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가는 건 예의가 아닌데, 아쉽다. 사실 난 조급해하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공주 선생님의 잔소리를 생각하면 얼른 가는 게 상책이다. 신발을 구겨 신은 채, 공부방으로 달려갔다.
오늘도 공주 선생님의 말에 난 아이들 앞에서 미꾸라지가 되어야 했다.
"안성하. 너 자꾸 미꾸라지처럼 쏙쏙 빠져나갈래? 꼬리가 길면 언젠가는 밟히는 법이야. 요즘 자꾸 늦게 오는 이유가 뭐야?"
난 고개만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도 잔소리 백 마디를 들어야 하나보다. 옆에서 예진이와 규일이가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웃는다. 모두 3학년 아이들이다.
"성하 오빠는 매일 늦어?"
"성하 형 미꾸라지인가 봐."
이번엔 공갈 선생님이 나에게 슬쩍 눈치를 주며 말씀하셨다.
"원장 선생님 화 많이 났어. 조심해."
다시 공주 선생님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오늘은 영어 특기적성도 하지 않는 날이잖아. 청소했어? 아니면 남아서 벌 받은 거야?"
내 스케줄을 더 잘 알고 있는 공주 선생님. 수업이 끝나고, 영어를 하는 화요일, 목요일만 빼고,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은 곧장 공부방으로 와야 하는데, 한 달 가까이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거다. 선생님은 아직 내가 어딜 가는지 모른다.
하필이면 피시방에서 나오는 걸 딱 걸릴 게 뭐람? 잽싸게 도망치긴 했지만 끈질긴 추격 끝에,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 공갈 선생님이 내 귀를 잡아당긴 건 처음이다. 평소에 친절하고 상냥했던 공갈 선생님도 화나면 무섭다는 걸 처음 알았다.
"너, 딱 걸렸어. 너 요즘 늦는다고 원장 선생님이 걱정하던데. 어쩜 네가 이럴 수가 있어?"
"아아, 좀 놓으라고요."
내 귀를 꽉 잡고 놓지 않는 공갈 선생님, 하필이면 이 시간에 피시방 앞을 지나갈 게 뭐람? 피시방은 공부방 근처에 있는 곳도 아니다. 내가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는다. 공부방에서 좀 떨어진 곳인데, 정말 꼬리가 길면 밟힌다더니, 요즘 내 꼬리는 너무 길었다.
"선생님은 왜 거길 지나가신 거예요?"
난 질문을 툭 던졌다.
"신의 운명인가 보네. 하늘에서 딱 너 잡으라고 우리 둘을 만나도록 만드셨네."
누가 국어 선생님 아니랄까봐, 말 한 번 거창하게 하신다. 아무튼 오늘 나는 끝장인 날이다. 공갈 선생님에게 이끌려 횡단보도 앞에 선 채 난 신호등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나는 잠깐 다른 생각에 빠졌다.
여기서 그냥 도망치면 나는 어떻게 될까? 공주 선생님한테 끌려가면 나는 어떻게 될까? 도망치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공주 선생님에게 끌려갔다가는 죽도록 맞을 게 틀림없다. 두려웠다. 진짜 두려운 것을 어쩌랴.
신호등이 빨간 불인데도 그냥 길을 건너고 말았다. 난 차에 치일 뻔했다.
"으악!"
하얀 차를 운전하던 젊은 아저씨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심하게 욕을 했다.
"어딜 뛰어들어?
순식간에 무식한 행동을 한 내 자신이 한심할 정도였다. 이렇게 무사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하늘에 대고 감사했다. 하늘에서 날 잡히도록 하더니, 하늘에서 또 날 무사하게 했다? 어째 앞뒤가 맞지는 않지만 이게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너 지금 제정신이야? 네가 잘못한 걸 알긴 아나보지?"
공갈 선생님이 다시 내 귀를 잡아당겼다. 내 귀가 토끼 귀처럼 늘어나지 않아서 다행일 정도였다. 난 도살장에 끌려온 토끼, 아니 소 마냥, 공주 선생님 앞으로 끌려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