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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한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88951030024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10-05-15
책 소개
목차
1권
서장
제1장 내 이름은 크랙이다
제2장 마리아 크로포드 소장
제3장 531년, 337 노역소의 겨울
제4장 크로포드 검법, 대자연의 호흡
제5장 성년식
제6장 임산부 관리소
2권
제7장 레이덤 성
제8장 케런 평원의 투기장
제9장 테레카인
제10장 이별 그리고 만남
제11장 오크 군단
제12장 제브라와 춤을
3권
제13장 쌍둥이 성채 공방전
제14장 난공불락의 요새, 이젤란
제15장 님을 위한 행진곡
에필로그
작가 후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의식이 돌아온다는 느낌과 함께 찾아온 것은 짙은 고통이었다. 무언가를 생각하기도 힘든, 마치 해머로 두들겨 맞은 듯한 기분. 그리고 어느 순간 ‘아, 사고가 났지’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럼 여긴 병원이겠구나.
천근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자 깊은 어둠이 시야를 반겼다. 눈을 다친 것일까? 그건 아닌 듯싶다. 반대편에 흐릿한 빛이 잠깐 스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눈을 다친 것도 눈이 가려진 것도 아니겠지.
손에 힘을 주려 했지만 고통만이 느껴졌다. 낮은 신음과 함께 그저 누워 있는 것이 최선임을 깨달았다. 그 정도로 부상이 심했던 걸까. 하긴, 의식이 끊기는 순간 마치 두개골이 깨지는 듯한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물론 정말 그런 건 아니겠지. 그랬다면 병원 침대가 아닌 관에 누워 있어야 정상이니까.
묵직한 숨소리가 귓가를 자극한다. 내 숨소리가…… 이랬던가? 혹시 폐를 다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언뜻 불안감이 커졌다. 아니 무엇보다 어째서 아무도 없는 거지? 밤 또는 새벽? 그래서 이렇게 어둡고 아무도 없는 걸까?
잠이 온다. 다행이다. 잠깐 의식이 돌아왔을 뿐인 모양이다. 시간은 모르겠지만 밤새 끙끙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잠드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눈꺼풀이 시야를 가리며 천천히 내려올 때, 잠으로 빠져드는 의식 속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 정도 사고라면 분명 중환자실일 텐데…… 아무런 불빛이 없다는 건…… 대체 왜……?
- 1권 본문 중에서
‘반대하지 않았던 것이…… 결국 동의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건가.’
그렇기에 나는 누가 봐도 동부의 로드 킹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로드 킹이라면 제브라의 말처럼 고작 자치 구역 따위에 자신의 형제이자 가족들을 희생시켜선 안 된다.
로드 킹이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가족이 아닌 부하라 여겼고, 더 심각한 것은 여전히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다르니까 거리낌 없이 전쟁에 동원한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 자치 구역이란 걸 얻어냈어. 이제 너희들 차례야. 그것을 얻든 얻지 못하든 그건 모두 너희들의 몫인 거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제 끝났으니까…….
그런 건 로드 킹이 아니다. 로드도 아니다. 그건 그냥…… 이기적일 뿐인 거다.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틀렸다는 걸 알았다면 이제라도 고치면 되는 거 아닌가. 잘못된 것은 바로잡으면 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지금부터라도 나 하나가 아닌 우리 모두가 잘 살아 나가는 방법을 찾아 나가면 되는 것이다.
막 그렇게 생각을 정리할 무렵, 뒤에서 소리가 났다.
“그 누구도 오로크의 긍지를 팔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쌓인 한을 풀러 가는 것일 뿐입니다.”
거너였다. 반면에 제브라의 낯빛이 붉게 물들었다.
“건방지게……! 감히 로드 킹끼리 대화하는 데 끼어드는 거냐?!”
동시에 십패라 불렸던 오크들이 주먹을 움켜쥐는 게 보인다. 잘하면 패싸움이라도 일어날 판이다. 11명 대 5명이니 우리가 크게 불리하지만, 어차피 저들은 테레카인을 복용해서 실제 전력은 우리가 앞설 것이다. ……제브라를 뺀다면.
하지만 우리는 패싸움을 하자고 모인 것이 아니다.
“나는 제브라 님의 생각이 틀렸다고…….”
순간 나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동시에 막 몸을 일으키던 십패들을 향해 제브라도 손을 들었다. 그러면서 나를 향해 비웃음을 담아 이죽거렸다.
“막 가자 이거냐? 애송아?”
“그런 건 아니오만……. 거너의 말도 틀린 건 아닌 것 같소만.”
“뭐라고? 내가 틀렸다 이거냐?”
대답 대신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뭐, 보기에 따라선 비웃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 나는 틀렸다. 제브라의 말처럼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브라가 온전하게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틀렸고 옳지 않은 부분도 있다. 이제는 내가 그의 잘못을 깨우쳐줘야 할 시간이다.
- 2권 본문 중에서
의식이 돌아온다는 느낌과 함께 의아함과 불안감이 찾아들었다. 의식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니 그 점이 나를 의아케 했고, 또다시 새로운 세계는 아닐까 하는 점이 나를 불안케 했다.
천천히 눈을 떴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머리 위로 길게 드리워진 나뭇가지,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절벽의 모습, 아니 계곡……인가. 층층이 탑을 쌓듯 높게 솟은 바위 절벽이 보였고, 그 밑의 나무 그늘에 몸을 누이고 있음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은 크랙인 건가?’
잠시 쓴웃음을 지었다.
2년 전 크랙으로 깨어날 때에 비해 고통도 없고, 이렇다 할 징후도 없기에 그리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놀라운 것은 마리아의 검에 뱃속 깊이 찔리고, 눈앞에 보이는 저 절벽에서 떨어졌음이 분명하건만 별다른 고통이 없다는 점이다.
천천히 손을 들어 옆구리를 지그시 눌렀다. 역시 아프지 않다. 아니, 손에 잡혀지는 촉감을 미루어 짐작건대 상처가 아물고 그 위에 말라붙어 있었을 딱지도 거의 떨어져 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몸에 이상이 없음을 알았으니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굳이 기감을 일으킬 필요도 없이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그런 중상에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아무런 도움 없이 산다는 자체가 기적이 아니고서야 힘든 일이다. 다만 혼자 힘으로 거구의 오크를 받아 들고 또 치료를 해낸 존재가 궁금하기는 했다.
감사 인사도 할 겸 고개를 돌려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놀랐다.
‘오크?’
상대가 오크라는 사실에 놀란 것은 아니다. 뜻밖의 장소에 오크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 것도 아니다. 정작 나를 놀라게 한 점은 눈앞의 오크가 지금껏 내가 봐왔던 그 어떤 오크와도 달랐다는 점이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인장.”
“별로 한 일도 없는데 감사할 것까진 없네.”
장파열만 해도 쉽게 움직이지 못할 중상인데, 내가 당한 것은 아예 검이 뱃속을 휘젓고 다닌 것이다. 게다가 마리아의 검이 어디 보통이겠는가. 가문에 걸맞은 명검에 포스까지 실려 있었다. 한데 검은 딱지를 더덕더덕 붙이고 살아남았으니 눈앞의 오크가 상당한 치유술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보통 상처는 아니었을 텐데…….”
말을 하던 나는 미처 끝말을 잇지 못한 채 찔끔했다. 상처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희번득 눈을 빛내며 노인이 주시한 까닭이다. 마치 해괴한 물건을 보듯 하는 그 시선에 불현듯 옛 생각이 났다.
“서, 설마……?”
“자네 혹시 트롤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겐가?”
짐작대로다. 몇 가지 가설을 세우긴 했지만 설마 진짜 그런 힘이 있었을 줄이야…….
처음 크랙으로 깨어났을 때 디지의 반응도 여기 노인과 흡사했다. 확실히 크랙의 기억엔 없었던 능력, 어쩌면 영혼이 차원을 넘어오며 생겨난 능력이 아닐까 추측했지만 시험해 보진 않았다. 세상에 어느 바보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제 몸을 희생하겠느냔 말이다.
- 4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