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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사회과학계열 > 지리학
· ISBN : 9788952113450
· 쪽수 : 184쪽
· 출판일 : 2013-01-07
책 소개
목차
머리말|v
제1장 서론 1
1. 연구 방법|3
2. 녹둔도 가는 길|5
3. 두만강과 녹둔도의 위치|7
제2장 녹둔도의 역사적 배경 11
1. 기록 속의 녹둔도|11
2. 동아시아 정세변화와 녹둔도|37
3. 녹둔도의 육지화와 러시아 영속|43
제3장 두만강 하류지역과 녹둔도의 자연 55
1. 두만강 하류지역의 기후 특성|55
2. 지질 형성기반|57
3. 두만강 하류의 하계망 형성과 해안선 변화|59
4. 녹둔도 자연환경의 의미|82
제4장 녹둔도의 국경도시 하산(Khasan) 87
1. 국경도시 하산의 출현|87
2. 군사·교통요지로서의 하산|94
3. 하산의 취락|105
제5장 녹둔도의 토지이용 111
1. 현장에서 본 토지이용|111
2. 위성영상 분석을 통한 토지이용과 특색|120
3. 토지이용 잠재력|127
제6장 녹둔도의 지리적 위상 133
1. 초기 토성지의 추정과 거주지 흔적|133
2. 녹둔도 위치 비정과 범위|142
3. 녹둔도의 지리적 인식|148
참고문헌|153
찾아보기|159
Abstract|167
책속에서
<머리말>
1990년대 초 두만강 개발계획이 널리 알려지고 중국 훈춘을 거처 방천까지 답사가 가능해지면서 두만강이 동해로 흘러드는 하구에 위치한 녹둔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우리에게 녹둔도는 조선시대 변방주민 삶의 근거지로 수시로 약탈하는 여진족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승전지로 알려져 있다. 실제 역사적으로 수많은 고서와 고지도에서 녹둔도는 우리의 고유한 영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녹둔도에 거주하던 조선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후 하산(Khasan)을 제외하고는 녹둔도 일대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아 지금은 늪과 사구,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마른 갈대와 수많은 사구로 덮인 이 거친 땅에 지난 600여 년 간 삶의 터전을 가꾸어 왔던 우리 선조의 자취가 지금도 생생히 남아 있다. 본 답사연구는 우리 역사 속에 삶의 터전이었던 녹둔도의 실체를 지리적으로 밝혀내는 작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이 책은 ‘두만강 하류 토지이용’에 대한 연구과제의 수행 결과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1990년대 중반에 기획된 본 연구는 러시아 측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였다. 특히 연구의 핵심지역인 녹둔도 일대는 군사 통제구역이라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어, 녹둔도 답사를 위해 1995년 모스크바대학을 방문하여 도움을 청하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기점으로 답사계획을 구체화하였다. 1996년 가을 첫 번째 답사를 가진 이후 10여 년에 걸쳐 여섯 차례 현장 조사를 실시하였다. 2006년 답사 결과를 기초로 일부 내용을 보완하여 일차적으로 연구를 마무리하였으나, 국경지역의 민감성과 그 외 여러 사정으로 이제야 출간하게 되었다.
이 지역에 관한 선행 연구가 많지 않아 현장 답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연구대상 지역이 러시아 국경 수비대가 관할하고 있어 체류시간과 답사범위 및 사진촬영이 제한되었으며 GPS 등의 장비도 사용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제약으로 본 연구는 두만강 하구에 있는 녹둔도 전 지역 중 접근이 가능한 지역에 지표자료 조사에 치중하였다. 앞으로는 녹둔도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발굴 분석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 연구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참가 연구진의 전문성을 고려하여 분담 집필하였음을 밝혀 둔다. 녹둔도의 역사지리 부분은 이옥희, 자연분야는 최한성, 취락 부분은 안재섭, 그리고 토지이용 부분과 기타 부분은 남영과 이기석이 나누어 집필하였다. 본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전 학술진흥재단),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등 여러 기관의 연구비와 지원이 뒷받침되었다. 지리교육과 대학원 과정에 있던 윤옥경, 한지은, 그리고 장은영 연구생의 도움이 있었고 특히 장은영 조교는 두 차례 답사에 참가하여 어려움을 함께했다. 그 밖에 문화일보 박선호, 김충남 기자가 각각 한 차례씩 현장 답사에 참여했고, 2002년 답사 시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동해명칭 국제세미나에 참가한 학자들이 함께 현장을 방문하였다. 2006년 마지막 답사는 교육방송(EBS) 특집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이효종 피디와 함께 답사에 동행하였다.
그리고 연구 초기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으나 책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류충걸 교수, 장삼환 교수와 간지(S. Ganzey) 박사님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은 애도를 드린다. 끝으로 이 책의 출간을 가능케 해 주신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여러 분에게 특별히 감사드린다.
2012. 11
저자 일동
지도상에서 녹둔도까지의 실제 거리는 멀지 않지만 현재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치지 않고 가는 길이 없기 때문에 서울에서 일주일에 두 번 운행되는 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 현재는 속초~자루비노 간 페리가 개통되어 통행길은 열려 있으나 자루비노에서 직접 러시아로의 입국이 제한되어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해서 가야 한다.5쪽
‘녹둔도’라는 공식적인 표기는 <세종실록> 30년(1448) 기록에 처음 등장하였다. 의정부에서 병조(兵曹)의 첩정(牒呈)에 따라 병선(兵船)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소나무를 관리하기 위해, 연해(沿海)지방 각 주현(州縣)의 섬과 곶(串) 중에서 소나무가 잘 되는 땅을 방문하여 장부에 기록하였는데, 경흥부에서 소나무가 잘 자라는 장소로서 두이산(豆伊山)과 녹둔도 두 곳이 기재되어 있다. 이는 녹둔도가 조선 초기에 이미 조선의 영역으로서 관리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대목이다.12-13쪽
따라서 연륙화(連陸化)되기 이전의 녹둔도는 일부 고지도에서 표현된 것 같은 해도가 아니라 하구 퇴적지형인 삼각주였을 가능성이 크다. 녹둔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녹둔도의 지형특색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고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사실은 녹둔도의 형태와 크기가 두만강의 활발한 퇴적작용으로 계속 확대 변화하여 마침내 두만강 좌안에 연륙되었다는 점이다.21쪽
원래 녹둔도는 여진어로 사차마라 불리다가 조선 초기 북변의 지명이 정리될 때 어미(語尾)에 도(島)를 붙여 사차마도 또는 녹둔도가 되었다. 이처럼 어미에 ‘도’를 붙인 이유가 녹둔도가 섬이기 때문이 아니라, 청과 조선 사이 지역을 간도(間島)라 불렀듯이 이곳이 조선과 여진의 중간지대 또는 완충지대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은 아닌지 또 다른 의문을 갖게 한다.30쪽
… 이 기록들은 녹둔도 지역이 비록 북경조약 이후 공식적으로는 러시아 영역에 속하게 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조선인의 생활터전이었음을 밝히고 있다.50쪽
녹둔도의 섬이라는 명칭과 관련하여 추측하여 볼 수 있는 것은 두만강 삼각주가 어느 특정한 시기에 물길의 갈라짐에 의하여 당시에는 섬으로 존재하였으나 그 후 두만강이 유량변화, 침식과 퇴적 상태변화와 같은 여러 원인에 의하여 현재의 단일 유로로 통합되면서 섬의 특성을 잃게 되었지만 지명은 계속 녹둔도, 녹도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와는 다른 설명으로 강우가 많은 여름철 홍수나 범람에 의하여 삼각주 평야 일부 지역이 주기적인 침수나 낮은 곳이 배수로가 되면서 고립되어 섬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도 있다.85쪽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녹둔도 지역을 비롯한 국경지대 일대의 한인 촌락들이 모두 소개되었다. 그 후 최소한 75년간은 이 넓은 범람원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방치하였다.127쪽
현재 녹둔도로 추정되는 하산 이하의 대부분 지역에 나타나는 촌락 지명들은 한인들의 거주지였음이 확인되고 있어 녹둔도의 범위가 상당히 넓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1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