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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바로보기

(감추어진 유대인 2000년 역사를 찾아서)

류모세 (지은이)
  |  
두란노
2010-09-17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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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바로보기

책 정보

· 제목 : 유대인 바로보기 (감추어진 유대인 2000년 역사를 찾아서)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성경의 이해
· ISBN : 9788953113800
· 쪽수 : 272쪽

책 소개

전작 <이슬람 바로보기>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유대인에 대한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일정 부분 ‘중동’이라고 하는 지역을 공통분모로 하는 이슬람에 대한 선이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성경 이후 유대인들이 써 내려간 방랑의 시간들을 역사적 관점에서 추적하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지난 2000년 동안 유대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CHAPTER.1. 유대인들에게는 관용을 보인 로마가 왜 기독교는 잔인하게 핍박했을까?
-유대교와 기독교의 ‘마이웨이’ 선언

CHAPTER.2. 사도 바울은 정말 이방인의 사도였는가?
-로마제국의 디아스포라 유대인

CHAPTER.3.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왜 기독교를 공인했을까?
-나사렛파 유대인이 거대한 로마를 집어삼키다

CHAPTER.4. 중세 암흑시대에서 유대인들은 어떻게 황금기를 누릴 수 있었을까?
-봉건제도의 취약점을 해결해 준 사회적 ‘윤활유’

CHAPTER.5. 십자군 운동이 왜 유대인 공동체를 파멸로 몰아갔을까?
-십자군 운동으로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희비가 교차되다

CHAPTER.6. 루터는 왜 반유대주의자가 되었을까?
-유대인, 종교개혁 시대의 캐스팅보드

CHAPTER.7. 흑사병은 유대인들이 우물에 병균을 타서 퍼진 것일까?
-중세의 반유대주의 악령들

CHAPTER.8. 유대인은 악랄한 고리대금업자였나?
-근대 자본주의 탄생과 유대인

CHAPTER.9. 유대인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스페인에서 유대인의 추방과 신대륙 발견

CHAPTER.10.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탄생은 유대인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네덜란드와 영국의 부상

CHAPTER.11.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대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프랑스 대혁명, 나폴레옹 그리고 유대인

CHAPTER.12. 헤르쩰은 왜 플레이보이에서 시온주의자가 되었나?
-드레퓌스 사건과 현대 시오니즘의 탄생

CHAPTER.13. 소련의 유대인들은 왜 공산주의자가 되었을까?
-로마노프 왕조의 전제정치, 트로츠키, 볼셰비키 혁명

CHAPTER.14. 미국은 왜 전 세계 여론과 달리 이스라엘을 계속 지지할까?
-미국의 유대인

CHAPTER.15. 영국은 왜 1차 대전 중 이스라엘 건국 지지 선언을 했을까?
-최초의 이스라엘 건국 지지 선언, 발포어 선언

CHAPTER.16. 히틀러의 600만 유대인 학살은 기독교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2차 대전과 유대인

에필로그/ 유대 민족이 주께 돌아올 그날을 기다리며
참고문헌

저자소개

류모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오직 ‘선교’ 오직 ‘말씀’을 푯대로 하나님께 붙잡혀 산 그에게 아직 달려가야 할 길, 주께 받은 사명이 남아 있다. 한의사, 이스라엘 선교사를 거쳐 그는 이스라엘 선교와 회복을 알리는 문서사역자이자 성경을 사랑하는 이 시대의 성경교사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남은 사명을 감당하되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고 찾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이스라엘 선교사 된 정체성을 가진 사명자로서 오늘도 묵묵히 그 길을 가고 있다. 저서로 《열린다 성경 난해구절 1》(규장), 《열린다 성경》 전 7권, 《열린다 비유》 전 3권, 《이슬람 바로보기》, 《유대인 바로보기》,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신구약편 전 6권(두란노), 《체질을 알면 사람이 보인다》(고려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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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역사적 예수 = 유대인 예수
2000년 전 이 땅에 오신 역사적 예수는 분명 ‘유대인 예수’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분은 이방 땅에 거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도 아니었고, 헬라 문화에 젖은 헬라파 유대인은 더욱 아니었다. 자기 땅에서 태어나 조상들의 관습을 좇아 살아간 순수 히브리파 유대인이었다.
그분은 나신 지 8일 만에 할례를 했으며 안식일마다 회당에 갔고 명절에는 가족과 함께 어김없이 예루살렘 성전을 올라가는 순례의 길에 동참했다. 그분은 온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육신으로는 유대인으로 나셨고 유대인으로 죽으셨다.
유럽의 교회사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교회가 예수님의 골육친척인 유대 민족을 핍박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지만, 이들이 기록한 공식적인 교회사 책에는 이런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역사는 ‘승자의 주관적인 기록’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유대인 방랑의 역사는 ‘예수’에 대한 철저한 적대감을 그 기저에 깔고 있다. 하지만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이 유대 민족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는가를 반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유대인 예수’의 존재는 유대 민족의 독특한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어 주는 열쇠요 종착점일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반유대 감정을 조장하기 위함이 아닌, 유대인과 온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대속적 죽음이었기 때문이다.p. 14-16


로마는 왜 기독교를 박해했는가?
기독교가 유대교의 울타리 안에 있던 초기에는 로마 당국자들도 기독교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로마제국은 유대인의 독특하고 오래된 신앙을 이미 인정하고 있던 터라 그 분파에 불과한 기독교에까지 관심을 보일 만한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로마 당국이 보인 기독교에 대한 소극적인 관용은 사도들을 통한 초기 기독교 전파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인들의 활동은 로마 당국의 레이더 망에 수시로 포착되었고, 결국 국가와 본격적으로 충돌하기에 이르렀다. 유대교와 달리 기독교만 불쑥 튀어 나와 국가와 충돌하게 된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독교인의 급작스런 증가로 인한 존재감의 부각이다. 유대인과 달리 기독교인들은 이방인 선교에 열정이 많았고, 다양한 지역에서 상당한 개종자들을 얻으면서 존재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유대교는 유대 민족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아 민족 종교로서의 특수성을 인정받았지만, 기독교는 이방인 세계로 급속히 전파되면서 ‘국적 불명’의 종교로 인식된 것이다.
둘째, 로마에 대항한 유대인의 봉기로 인한 불똥이 기독교인들에게까지 튄 것이다. 유대 땅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유대인들의 봉기는 진압되었지만 너무 시간을 오래 끈 탓에 세계 최강으로 알려진 로마군의 자존심은 상당히 구겨졌다. 유대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 로마제국 곳곳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었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전하는 기독교인들은 또 다른 반역을 선동하는 무리로 의심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추종하는 예수가 공식적으로는 로마법상 십자가 처형을 당한 반역자였기 때문이다.
셋째, 유대교에서 분리된 독자적인 기독교가 로마인들에게 부도덕하고 경건하지 못한 사교 집단으로 보인 것이다. 이것은 주로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신자들이 서로를 향해 ‘형제, 자매’로 부르는 초대교회 관습은 로마인들에게 기독교인들이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당시 이집트에서 이런 호칭은 성관계 파트너를 부를 때 사용되었다. 예배 후 ‘평안의 키스’를 나눈다는 표현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예수의 몸과 피를 마신다’는 애찬식의 표현은 말 그대로 기독교인들이 식인 풍습이 있는 것으로 와전되었다. p. 44-45


유대인들은 왜 저항하지 않았을까?
나치의 야만적인 조치들 앞에서도 유대인들이 저항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들은 왜 마지막까지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가스실로 들어간 것일까?
첫째, 유대인들은 2000년 가까운 방랑 세월의 경험을 통해 저항이 자신들의 생명을 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생명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했음을 잘 알았다. 유대인들의 역사, 신학, 민간전승, 어휘 등 그 어디에도 적들과 협상하고 값을 지불하며 청원하는 법만을 가르쳤지 싸우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둘째, 유대인들도 다른 세계 시민들처럼 ‘최종 해결’이란 것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1942년 초 두 명의 유대인들이 천신만고 끝에 수용소에서 탈출해 수용소 내부의 실상을 알렸지만, 단지 종교적 체험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것으로 무시되었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소수’ 또는 ‘다수’의 생명이 아닌 ‘전부’를 요구하는 대적자를 결코 대면한 적도, 상상한 적도 없었다. 상상 속에나 나올 법한 악마가 인간의 모습을 취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당시 유럽에 남아 희생된 유대인들의 성향 때문이다. 유대인들 가운데 야망이 있는 자들은 미국으로 이주했고, 가장 정력적이고 진취적이며 호전적인 유대인들은 이미 황무지와 같은 팔레스타인으로 향했다. 유럽 내 유대인들 가운데 최고의 인물과 두뇌의 유출은 이처럼 전쟁 전까지 지속되었다. 유대인 가운데 호전적인 무장 그룹이 있었지만 이들 역시 자신들에게 기회를 줄 유대 국가 팔레스타인에서 싸우길 원했지 소망 없는 유럽에서 싸우기를 원치 않았다. 결국 유럽 대륙에는 힘없고 가난한 유대인들만 남게 된 것이다.
넷째, 독일인들은 이런 유대인들의 사회학과 심리학을 냉혹하게 이용했다. 남은 유대인들의 지도층은 소심하고 고분고분했으며 심지어 아첨하는 경향까지 있었다. 수용소 이주 명령도 이들의 지도 아래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졌다. 아인자츠 부대는 ‘가스실’로 들어가는 동안 수용소 내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연주하도록 했다. 이들은 열차를 타고 오랜 여행 후 수용소에 도착했고 가스실 입구는 ‘샤워실’이란 팻말이 적혀 있었으며 저마다 비누와 수건을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감히 그런 끔찍한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p. 24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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