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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도전

치열한 도전

(교회여 담장 밖으로 흩어져라)

김병삼 (지은이)
  |  
두란노
2018-06-14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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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도전

책 정보

· 제목 : 치열한 도전 (교회여 담장 밖으로 흩어져라)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목회일반
· ISBN : 9788953131651
· 쪽수 : 280쪽

책 소개

오늘날 존재 이유를 상실한 제도화된 교회들 속에서 “선교적이 아니면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를 외치며 교회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을 세울 수 있도록 올바른 교회론을 제시하려 고민하고 노력하는 만나교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목차

프롤로그 a Mega-Missional Church? 다시, 교회를 묻다

PART 1. Church, Regain the Essence: 교회여, 본질을 회복하자
1. 래디컬 체인지, 래디컬 처치
2. 예수가 해답이다
3. 예배의 회복
4. 초대교회의 회복

PART 2. Church, Arise and Shine: 교회여, 빛을 발하라
5. 이유 있는 교회
6. 세상이라는 ‘지체’를 섬기는 교회
7. 교회, 건물을 벗어나자
8. 삶이 예배가 되는 공동체

PART 3. Church, Leap over the Wall: 교회여, 담장을 뛰어넘자
9. ‘진정성’이란 담장 앞에 서다
10. 흩어지기 위해 모이는 교회
11. 헌신의 가지를 뻗다
12. 담장을 넘어간 깍두기

에필로그 ‘거의 교회’(Almost Church)에서 ‘온전한 교회’(Altogether Church)로

저자소개

김병삼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저자는 탁월한 예배 지도자, 흡입력 있는 설교가,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을 창조하는 리더다. 그는 성경을 묵상하고 책을 가까이하여 얻은 지혜를 후히 나누며,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올바른 신앙의 길을 안내하는 목회자다. 저자는 “교회가 이 땅의 소망입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교회가 담장을 넘어 세상 속에서 소망이 되기를 꿈꾼다. 무엇보다 성도가 행복한 교회, 세상이 인정하는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비신자도 불편해하지 않는 교회 카페’, ‘교회 내 흡연실’, ‘트로트 특송’ 등 새로운 것을 도입함으로써 이웃과 성도의 마음을 복음을 향해 열어 가고 있다. 만나교회의 담임목사인 저자는 (사)월드휴먼브리지 대표, 하늘다리호스피스 이사장 등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받고 있다. 저자는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역사신학으로 신학석사(Th. M), 미국 개렛 신학대학원(Garrett-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 신학석사(M. DIV), UTS(Unit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박사(D. MISS)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치열한 도전》, 《치열한 순종》, 《치열한 복음》, 《PRAY ON》, 《텅 빈 경건》, 《살아내는 약속》, 《올라인 교회》, 《하나님의 숨결》, 《다시, 교회》(이상 두란노), 《그래야 행복합니다》(샘솟는 기쁨), 《사랑이 먼저다》(규장), 《주님은 나의 최고봉 묵상집》(토기장이)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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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박제된 그리스도인'이란 표현이 있다. 영적인 안전 금고, 즉 예배당 건물과 선하게 살라는 윤리적 가르침 속에 완전히 고립된 사람을 가리킨다. 그들은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건물을 짓고 그것을 성공으로 여기며, 주일에 두어 시간만 최대한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예배를 드리고 착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하게 된 사람이므로 세상에 뛰어들어서도, 관심을 가져서도 안 된다고 믿으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 보지도 못한 수십억 인구의 울부짖음을 듣지도 못한다. 그들도 말씀을 읽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복음이 요구하는 바른 길을 알지만 그럼에도 말씀 속에서 억지로 다른 대안을 찾는다. 복음의 요구와 삶의 부조화에 대해 갈등은 하지만 제3의 대안을 받아들이며 교회 건물 안으로 계속 숨어든다. 기껏 비전이라고 생각하는 기도 제목은 거의 미사어구처럼 붙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말에 기댄 나와 내 가족에 국한된 안정된 생활이다. 박제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렇다. 이들은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 확장에는 참여할 수 없다.
래디컬한 신앙을 회복함으로써 이렇게 박제된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박제되었다는 것은 모양새는 갖추고 있되 움직이지 않고 변화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래디컬한 신앙은 변화와 역동성을 수반한다. 그래서 세상과 장벽을 치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살아간다. 예배당 안에 몇 명이 모여서 예배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래디컬한 교회는 세상 속에 흩어져 들어간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되는지에 관심을 쏟는다.
오늘날 박제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래디컬한 교회로 변화하려면 먼저 가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먼저 행위와 믿음 사이에 존재해 온 이분법을 없애야 한다. 신앙고백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날 교회가 신앙고
백 때문에 비판을 받는가? 아니다. 더군다나 교회 밖은 신앙고백 자체의 의미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권위도 없다. 그렇다면 왜 세상이 교회를 공격하는가? 교회가 고백하는 신앙에 걸맞은 행위를 보여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2천 년 동안 교회는 끊임없이 원수를 사랑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가? 분명 선포와 행위 사이의 괴리가 존재하고 있다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세우신 목적, 우리 교회만이 할 수 있는 복음 사역을 고민할 때 먼저 어떤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찾아오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30~40대 비중이 75%나 되었다. 그것은 곧 젊은 세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을 배려하며 그들과 소통하는 목회에 중점을 두어야 함을 의미했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만든 게 '흡연실'이었다. 지금도 '만나교회'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흡연실'이 나온다. 물론 처음엔 교회 내 반발이 만만찮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이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흡연실을 만들게 된 동기는 이렇다. 한 젊은 부부를 심방했는데, 아내가 말하기를, 남편이 아이와 자신을 교회에 데려다주기만 하고 자신은 예배를 드리지 않는데, 그 이유가 예배 시간 동안 담배를 참기도 힘들거니와 자신에게 담배 냄새가 날까 봐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었다. 그때 이 남편과 같은 사람들을 위한 예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질문하니 문제가 단순해졌다.
"기도하고 예배하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면 될까? 안 된다. 그러면 담배 피우는 사람이 교회 와서 기도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니 이것은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면 간단한 문제였다. 그래서 그 남편에게 우리 교회에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들, 담배를 못 끊은 사람도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했더니, 그 남편이 대뜸 이러는 것이다.
"목사님, 그게 바로 제가 꿈꾸던 교회입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그 남편의 헌금으로 교회 내 흡연실을 만들었다.
흡연실 설치를 두고 어떻게 교회가 대놓고 담배를 피우라고 하느냐고 분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공간의 의미는 담배를 피우면서도 교회에 올 수 있다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선언에 있다. 흡연실에는 예배 실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모니터가 있다. 예배드리는 시간 동안 주차장이나 교회 근처를 맴돌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방치하는 것이 예수님 마음일까, 아니면 그곳에 와서 과연 교회가 어떤 곳인지, 기독교가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경험하는 기회를 주는 게 예수님 마음일까? 우리 교회가 건강하다면 예배당에 있는 사람들이 흡연실을 통해 세상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흡연실을 통해 예배당으로 나아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흡연실은 분명 선교적인 공간이다.


지체라는 표현은 교회 안에서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를 원하신다. 성경이 보여 주는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땅의 모든 지체가 한 몸을 이루는 교회가 완
전한 참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기 원하셨다. 그때에야 끝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기 교회 지체만을 서로 섬기는 데 열중하는 교회들이 많다. 우리는 이 말을 기억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당신을 교회로 부르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당신을 선교지로 부르셨다."
사실 교회 혹은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때 성립한다. 이런 재미있는 영어 문장이 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죄는 commission(하지 말아야 하는 어떤 일을 하는 것)도 아니요, omission(해야만 하는 어떤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No mission(선교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말 역시 선교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교회 공동체가 지체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갖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너무 교회 중심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교회의 목적이 모이는 것인가 흩어지는 것인가? 분명 교회는
모여야 성립한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모이느냐가 교회를 교회답게 한다. 교회는 모이기는 하지만 흩어지기 위해, 즉 복음을 전하러 흩어지기 위해 모이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교회를 찾는다. 그리고 그들은 교회에서 무언가 받을 것을 기대한다. 항상 기대만큼 충족되지 않기에 불만도 있다. 오죽하면 많은 이들이 쇼핑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온다는 비판이 있다. 쇼핑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
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다른 곳으로 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서비스를 받는 입장이라 뭔가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불평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들에겐 보상심리가 있어서 자신이 지불한 것만큼의 보상이 뒤따라야 만족한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게 없으면 섬길 마음이 없다. 그런데 교회는 이런 소비자 심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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