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간증/영적성장
· ISBN : 9788953133907
· 쪽수 : 300쪽
· 출판일 : 2019-08-14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
서문
들어가며. 아랍의 상황 속에서 예수를 읽다
1부. 아랍의 혈연 문화와 예수의 복음
개관 ― 가족과 부족의 중요성, 수치와 명예
낙타 ― 땅의 기준, 하늘의 기준
마즐리스 ― 내 자리는 어디일까
결혼식 ― 차별 없는 복음, 값없는 은혜
2부. 아랍의 종교관과 예수의 복음
개관 ― 법의 기초이자 삶의 전반에 얽혀 있는 이슬람
금식 ― 성령으로 배부를수록 이웃의 배고픔이 보이다
진주 ― 하나님 나라의 참된 값어치
발 ― 권력과 영향력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종교인들
3부. 아랍의 여성관과 예수의 복음
개관 ― 아랍 여성에게 규정된 역할과 공동체 안에서의 위치
향유 ― 누가 은혜받은 예배자인가
물 ― 목마른 인생길, 인격적인 만남
환대 ― 영원히 남는 선택
4부. 아랍의 언어 세계와 예수의 복음
개관 ― 중동의 정체성인 아랍어, 그리고 시와 서사의 세계
목자 ― 깊은 신뢰에서 나오는 순종
빵 ― 예수를 먹고 마시는 삶
달리기 ― 수치를 잊은 사랑
나오며. 방 안의 코끼리
부록 1. 성경 훼손 문제
부록 2. 십자가 처형에 대한 이슬람의 견해
부록 3. 그리스도의 정체성
부록 4. 아랍인과 아라비아에 관한 성경 구절
감사의 말
주
참고문헌
리뷰
책속에서
세리 삭개오는 자기 민족을 강점한 로마 군대의 협력자였다. 민족의 비열한 배신자로 통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이런 부패한 세리와 시간을 보내실 만큼 자신을 낮추셨다는 것이 일반적인 서구 기독교 신자들이 생각하는 삭개오 이야기의 핵심이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서구 교회의 신학자들은 매우 친숙한 이 이야기의 주제가 '예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다'라고 가르쳐 왔다.
그렇다면 이 속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다른 교훈은 과연 없을까? 서구와는 다른 문화권에 있는 오만(Oman)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처음 듣자마자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괴상한 행동'이라며 아주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그중 한 사람은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예수는 무례하게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집에 초대하라고 먼저 요구할 수 있나요? 우리 문화에서는 집주인이 초대 의사를 명백히 밝히기 전에 이웃집을 찾는 것은 꿈도 꾸지 않습니다. 가장 비천한 시민의 집이라 해도 초대받지 않으면 오만의 술탄(군주)조차도 그곳에 들어갈 권리가 없지요. 누구든 초대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초대받지 않고도 방문할 특권을 가진 유일한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서 무언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듯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이 대화를 직접 지켜본 미국의 한 기독교 신학자는 그동안 이루어진 어떤 학문적 연구에서도 이런 식의 해석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만 사람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그는 익히 알려진 이 복음서 이야기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인류학자 스티븐 캐이튼(Steven Caton)은 Yemen Chronicle(예멘 연대기)이라는 책에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집으로 초대하라고 자청하는 것에 대한 아랍인들의 반감을 기록했다. 초대받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에입(aib)' 즉 '수치'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서구 교회는 수 세기 동안 이 이야기의 진정한 요점을 놓쳐 왔던 것은 아닐까? 예수님의 문화가 서구 문화보다 아라비아의 문화와 비슷하다면 서구 사람들보다 아랍인들이 그분의 메시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영국에서 양치기 즉 목자는 안전함이나 달콤한 사랑의 감정과는 멀다. 양치기는 양들에게 사나운 개를 풀어놓는 장본인이다. 영국의 양치기는 양이 원치 않아도 사납게 짖고 으르렁대고 이빨을 드러내는 온갖 형태의 위협과 공포를 사용해 그곳으로 가게 만든다. 내가 그보다 몇 년 전에 중동에서 목격했던 목자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요르단에 있을 때 나는 길르앗 산지의 굽이치는 언덕에 있는 유목민 천막 옆 흙길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 앞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는데 자세히 보니 어린 목동이었다. 목동은 길을 따라 느긋하게 걷고 있었는데 그의 뒤로 양무리가 느슨하게 따르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빈둥거리며 풀을 뜯어 먹는 양 한 마리가 금세 목동의 주의를 끌었다. 목동이 그 양의 이름을 부르자 깜짝 놀란 양은 바로 목동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따라 움직였다.
중동의 목자를 볼 때 가장 익숙한 광경은 그가 양 떼 앞에서 걷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이기도 한데 바로 목자와 양 떼의 친밀함이다. 양 떼는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 양 떼는 이미 목자가 경험했고 앞서 지나간 장소를 따라간다. 목자는 양 떼를 불러 자신을 따르고 신뢰하게 만든다. 이 친숙함이 안전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 목가적 이미지는 중동의 청중에게 명백한 의미를 전달한다. 하지만 서구의 청중에게는 목자의 이미지를 일일이 다시 가르칠 필요가 있다. 당신이 인생에서 어디로 가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당신에게 어떤 위기가 닥치든, 목자는 이미 당신보다 먼저 그곳에 계셨다. 당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걷는다 해도 그분은 당신보다 앞서 가시며 길을 인도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