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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느낌

제주 느낌

(jeju olle 17 story)

이주원 (지은이)
북노마드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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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느낌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제주 느낌 (jeju olle 17 story)
· 분류 : 국내도서 > 여행 > 국내 여행에세이
· ISBN : 9788954610711
· 쪽수 : 251쪽
· 출판일 : 2010-04-07

책 소개

<2009 네이버 손글씨 공모전>에서 ‘누리꾼 인기상’을 수상한 디자이너 이주원이 제주 올레를 다녀온 여정과 느낌을 아기자기한 손글씨로 직접 기록한 여행기를 소개한다.

목차

설레임
시작
우도 한 바퀴
새들처럼
짙은

거꾸로 걷기
목마름
길 햇볕내음
물고기 카페
고등어
바다
바람
느낌
아날로그
어느덧
작가의 글

저자소개

이주원 (지은이)    정보 더보기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2009년 네이버 '손글씨 공모전'에서 동상과 누리꾼 인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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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마을을 벗어나 쉬엄쉬엄 걷다보니 야트막한 오름이 눈앞에 나타난다. 오전 중에 너덧 개의 산을 넘던 카미노 시절에 비하면 ‘언덕’ 수준이지만, 부슬부슬 내리는 비 앞에선 적잖이 힘겨운 길이다. 잠시 한숨을 돌릴 겸 발걸음을 멈춘다. 아… 신발 아래 조심스레 깔려 있는 검정 빛깔 흙길이 유난히 생경하다. 매일같이 아스팔트 바닥을 지르밟고 시멘트벽을 벗 삼아 살아가는 도시인에겐 간만에 접하는 흙바닥이 반갑기만 하다. 어쩜 저리도 까말까. 이대로 한 사발 퍼다가 네모난 틀에 넣어 굳히면 바로 다크 초콜릿이 될 것 같은 진득한 색감이 두 눈에 그윽하게 퍼진다.

포구 주변에 다다랐다. ‘시흥 해녀의 집’이라는 제법 익숙한 이름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여행이 좋은 건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딴 마을에서 마주치게 된 막걸리 한 사발에서 풍기는 향기일수도 있고, 뜨거운 물이 펑펑 나오는 샤워기일 수도 있고, 힘겹게 오른 산꼭대기에서 나를 기다려준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일 수도 있다. 소소하기 그지없는 것들. 그것들이 눈에서 사라지기 전까지는 고마움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들에 고마움을 느끼는 시간, 그것이 바로 여행이다. 내가 오늘 만난 건 소박한 죽 한 그릇이었다. 그 따스함에 깊이깊이 고마워할 수밖에 없던 죽 한 그릇.

그러고 보면 ‘먹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인간의 욕구를 채워주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는 것 같다. 카미노에서도 그랬다. 여행 중간, 어쩌다가 함께 풀숲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한 독일인 아줌마 한 분이 살짝 건네주던 호두 여남은 알, 결코 넉넉해 보이지 않은 선남선녀 프랑스 커플이 식탁 한 귀퉁이에서 수줍게 나눠주던 초콜릿맛 비스킷 몇 조각… 어떤 것을 함께 나누어 먹는 행동, 그것을 공유하는 그 시간은 단순한 물리적 효과 이상의 에너지를 형성하는 듯하다. 그래서 ‘식구’ ‘한솥밥’이라는 단어도 있는 거겠지. 그것이 커다란 샐러드 보울에서 비롯되었든, 가마솥 노릇한 누룽지에서 비롯되었든 음식을 나누어 함께한다는 건 분명 감정의 교류를 의미한다. 지금보다 더욱 돈독해지는 친밀함의 시작점이다. 소리 없이 보내는 텔레파시다. 지금 이 순간, 나랑 같은 이 감정을 공유해볼래요? 라는.

이윽고 신풍 바다목장 구간에 다다랐다. 굳이 지도를 꺼내 구간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이곳에 도착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장소다. 그야말로 눈앞에 화악~ 하고 펼쳐지는 너른 바다, 그 앞에서 윤기가 좔좔 흐르는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바다목장’이라는 단어로부터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반짝반짝한 이미지를 현실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장면이다. 하늘 끝과 바다 끝이 같은 색으로 맞닿아 어디까지가 진짜 바다인지 분간이 되지 않고 있다. 물결 한 점 없이 잔잔한 바다… 게다가 이 향기는? 대기 전체가 새콤한 귤 향기로 충만해 있다! 사무실에 칙칙 분사되는 오렌지향 방향제 냄새가 아니다. 그보다 백 배는 더 은은하고 미묘하며 싱그럽다. 코끝에서 맴도는 듯 사라지는 듯. 한껏 들이마신 공기 입자가 너무나 맛있다! 땅바닥에 이 황금색 잔디 같은 건 또 뭐람. 눈에 익은 초콜릿색 바닥이 보이지 않고 야트막한 언덕 전체가 황금노란색 천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세상에나, 귤껍질이다. 그것도 도처에 가득. 아니, 언덕배기 전체를 노오오오랗게 뒤덮고 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이런 장관은 또… 처음이다. 어떻게, 무슨 말로 이 광경을 표현해야 하나. 후각, 촉각, 시각적 요소가 폭발적으로 황홀하게 어우러진다. 감각의 교향악이다.

바다를 마주하며 시작해 바다에서 끝나는 길… 수평선으로 스르르르 슬로우 모션처럼 넘어가는 저녁 해를 바라본다. 불과 몇 시간 전, 저 해가 바닷속에서 솟아오르는 장면을 목격했음을 어슴푸레 떠올려본다. 길 위에 있으니, 시간이라는 개념이 그리 무의미할 수가 없다. 땀방울이 조금씩 솟으며 재우친 발걸음이 한 템포 느려지기 시작하면 점심식사 겸 요깃거리로 싸 온 빵과 떡, 마실 것 등을 주섬주섬 꺼내어든다. 나무 그늘을 찾아 혼자만의 피크닉을 즐기는 거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쉬었다가… 또 한참을… 걷다가… 조금씩조금씩 싸아~해지는 기분이 들면, 주위의 밝음이 사그라지기 시작하면, 서둘러 숙소로 향하는 버스 노선표를 분주하게 눈으로 훑는다. 돌아가야 할 시간인 것이다. 조그만 금속판의 열두 숫자가 이 길 위에서는 그리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산티아고에 비하면 이곳, 제주의 화살표는 친절하기 그지없다. 짧은 거리마다 꾸준히 이어지는 화살표는 물론 각 구간의 올레길 담당자들이 꽁꽁 묶어놓은 파랗고 노란 리본들이 이곳저곳에 나부낀다. 순간 우리 삶에도 올레길처럼 중간중간 화살표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곧장 가시오, 여기에서 돌아가시오 등 화살표가 있다면 이처럼 인생이 팍팍하지는 않을 텐데. 적어도 목적성을 상실한 채 엉뚱한 곳에서 무작정 헤매지는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동안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며 무수한 길을 걸었지만 이렇게 목적지가 분명하고, 안정된 상태로 길을 걷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정신없이 구불구불 이어진 좁은 길을 통과해야 했던 인도 바라나시의 뒷골목, 끊임없는 호객 행위가 이어지는 상하이의 짝퉁시장, 세상의 화려함을 모두 한자리에 그러모은 것 같은 라스베가스… 그 어디에서도 여행자인 나를 인도해주는 화살표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여행이란 내가 물어물어 찾아야 하는 것, 때론 잘못된 정보에 분을 삭이며 목적지를 찾는 것이 여행인 줄 알았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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