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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6656960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23-10-30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 4
선택
얼음창고
그리운 독재자
돌아오지 못한 부메랑
나무, 날개를 꿈꾸다
비둘기 가족
유리벽
만년필
그 바다에서 만나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선택
우리 인간 중에는 인위적인 요소가 아닌 신체의 노화가 원인이 되어 자연사에 이르는 경우에 자신이 세상을 떠나게 될 시기를 짐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촌 형님의 말을 상기하면서 고향에서의 장례식을 떠올리고 있었다.
몇 해 전 친구도 사촌 형님과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었다. 친구는 결혼하고 분가했으나 고향 집과 불과 십 킬로미터의 거리여서 이삼일에 한 번씩 홀로 계신 어머니의 안부를 챙겼다고 한다. 어느 날 집에 도착하여 방문을 열었더니 어머니는 옅은 미소까지 머금은 편안한 얼굴로 세상을 떠나셨더란다. 평소보다 안방이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돈을 아끼느라 기름보일러를 대신해서 방바닥에 깔았던 전기장판의 플러그가 뽑혀 있었다. 플러그가 헐거워 저절로 빠진 것도 아니었고 치매는커녕 건망증도 없었던 어머니가 실수로 플러그를 뽑지 않았다는 것은 전기장판에 연결된 전선을 동그랗게 말아 온도조절기 옆에 가지런히 놓아둔 것에서 알 수 있었고 머리맡에는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을 모아놓은 복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때가 뒷산의 진달래가 붉디붉게 피어난 화창한 봄날이었는데 혹시 아들이 바쁜 일 때문에 평소보다 틈이 벌어지면 당신의 작은 체구가 부패할까 염려되어 플러그를 뽑은 어머니의 마음이 전해져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는 친구의 얘기가 사촌 형님과 통화가 끝나면서 떠올랐다.
지금이야 계절의 특성이 많이 희석되었으나 죽음이 가까워진 남자는 땔감을 많이 준비하고 여자는 갖가지 김치를 담그는 일이 많았는데 홀로 남겨질 사람을 위한 본능적인 배려에서 비롯된 준비라고 한다. 큰어머니께서 먼저 돌아가셨기에 큰아버지는 장작을 준비하지는 않았으나 술 항아리를 남겨주었다. 큰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첫 기일을 맞은 저녁에 큰아버지는 뒷산 산소 옆 용트림으로 자란 오래된 소나무 아래에 술독 하나를 묻어뒀다는 얘기를 사촌 형님에게 들려주었다. 무엇 때문에 술독을 묻었냐고 여쭸더니 당신이 생을 마감하면 슬퍼하지 말고 그 술을 마시며 즐겁게 장례를 치르라고 했단다. 자식들이 도시에 살고 있어 손수 끼니를 해결하며 7년을 더 살았던 큰아버지가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고 소나무 아래서 꺼낸 항아리의 술로 장지까지 함께한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큰어머니의 장례를 탈 없이 치렀다. 나도 그 항아리에 담긴 더덕주를 몇 모금 마셨는데 그 깊은 향이 혀끝에 오랫동안 남았다. 일상으로 돌아간 사촌 형님이 전화를 걸어와 장례식 때 여러 가지 도움이 고마웠다고 말했고 나는 조카로서 당연했다는 대답과 위로를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강화유리문이 열리고 오랜 거래처인 김씨가 노란 상자를 들고 주방으로 향한다. 두부와 콩나물 배달이 끝나면 나이가 같아 친구로 지내는 박씨가 채소배달을 올 것이고 새내기 우정 공무원 집배원이 다녀가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노량으로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낯익은 집배원이 노란 고무줄로 묶은 우편물을 전달하고 돌아갔다. 우편물은 보나 마나 실속 없는 광고물 사이에 내 지갑을 털어갈 공과금 고지서가 한두 장쯤 섞여 있을 것이다. 우편물을 분류하는데 어머니가 보내온 편지가 눈에 들어온다. 핸드폰의 단축번호만 누르면 용건을 얘기할 수 있음에도 긴급한 내용이 아니라서 도착까지 사나흘이 걸리는 편지를 보냈으리라 생각하니 안심이지만 난생처음으로 어머니의 편지를 보면서 전화로 얘기하기 곤란한 내용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감정이 복잡해진다.
어머니가 보내온 편지지 색깔처럼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정신이 아득하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112나 119에 신고하고 고향 마을 이장님에게 어머니 집을 방문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그다음은 운영하는 식당의 출입문에 금일 휴업을 부착하고 고향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번뜩번뜩 스쳐 가는 생각들을 즉각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이유가 뱀처럼 대가리를 내민다.
내가 112나 119에 전화를 걸면 경찰차와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마을로 들어서고 동네 사람들이 고향 집으로 모여들 것이다.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으면 경찰관이 담장을 넘어가 대문의 빗장을 풀면 구급대원들이 뛰어들어가 인공호흡을 실시하면서 제세동기의 패드를 부착하고 부모님을 구급차에 옮겨 읍내의 병원, 아니 큰 도시의 종합병원으로 구급차는 최대한 속력을 높일 터이다.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판단되면 구급차는 도착할 때보다 속도를 줄여 장례식장으로 향할지도 모른다. 머릿속은 바닷가에 버려진 그물보다 복잡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유족이 없는 상태에서 장례식장은 누가 결정하는지가 궁금하다. 불필요한 생각이 머릿속을 누비는 것은 지금의 현실을 감당하기 어려워 자꾸만 회피하고픈 불안한 마음의 표출인 것도 인지한다. 어머니의 강단진 성격을 생각하면 결코 허투루 편지를 보낼 분도 아니고 당신의 결정을 행동으로 옮겼을 것이지만 혹여나 어머니가 생각을 바꾸었을지도 모른다는 티끌 같은 가능성을 붙들고 싶은 심리도 작용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더 깊은 마음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이 확인되면 감당해야 할 뒷수습도 막연하고 두려운 게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 대의 구급차로 두 사람을 이송할 수 없어 또 다른 구급차까지 출동해서 두 대가 나란히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고속도로를 질주할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떠올리기도 싫지만 한 분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한 분은 호흡이 있어 병원의 응급실로 모셔야 한다면 절망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아직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으나 최악의 경우만 떠올려진다.
가게 앞 도롯가에 심어진 가로수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는다. 흔한 참새나 비둘기는 아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인데 깃털이 화려하다. 멀지 않은 곳에 제법 울창한 야산이 자리하고 있다지만 도시로 날아든 것이 참으로 기묘하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새로 환생하여 아들을 찾아왔을까. 어머니는 다시 태어난다면 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새가 되고 싶은 이유를 제공한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한 것이 초등학교 4학년 초봄의 어느 날 자정 무렵이었다. 오줌이 마려워 잠에서 깨어났는데 옆에 어머니는 없었고 방문 밖에서 가느다란 노랫소리가 안방으로 흘러들어왔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어머니의 그림자를 만들어 창문에 비추고 있었다.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앞 소절은 듣지 못했으나 한 마리 새 때문에 웃고 우는 사이에 봄이 가버린다는 노랫말이 슬프게 느껴져 오줌이 마려운 것을 잠시 잊었다.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어머니가 다른 노래를 시작했고 그 사이로 소쩍새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어찌나 청명한지 마당의 감나무 가지에 앉아 우는 것처럼 가까이 들렸다. 나는 소쩍새는 알아도 으악새는 모르는 새였으나 사회시간에 금강산을 계절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고 배웠던 것처럼 소쩍새를 가을이면 으악새로 부르는지 알았다. 아직은 봄이지만 가을이 되어 소쩍새가 으악새가 되면 아버지가 돌아오기로 약속되어 가을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인지 알았다. 금방이라도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았지만 방문을 열고 나갈 수 없었다. 어머니의 가냘픈 목소리에 슬픔이 가득 묻어있어 방문을 여는 순간에 어머니의 노래는 통곡으로 바뀔 것만 같았다. 점차 노랫소리가 떨리더니 복받친 울음이 소쩍새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창호에 비친 그림자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소쩍새야, 소쩍새야 배가 고파 우는거냐. 외로워서 우는거냐. 이 웬수는 어느 곳에 있다더냐? 날개라도 있으면은 훨훨 찾아가겠다만.”
어머니는 항상 이웬수라고 아버지를 호칭해서 이름이 이웬수인 줄 알았다가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할 때 이지환인 것을 처음 알았다. 달이 너무 밝아 푸른빛이 감도는 한 밤에 어머니의 넋두리를 들으면서 오줌을 참다가 결국 터져버린 오줌보를 제어하지 못하고 옷과 이불이 흠뻑 젖었지만 꼼짝하지 못하다가 결국 잠이 들었고 아침에 어머니는 지청구 없이 오줌싼 옷가지를 벗기고 씻겨 학교를 보냈다. 이후에도 어머니는 간혹 넋을 놓고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며 부러움을 나타냈고, 날개를 빌리면 좋겠다거나 날개가 돋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나뭇가지에 앉아 우짖는 새를 바라보며 조물주는 무슨 연유로 울음과 노래를 똑같은 소리로 만들었는지 궁금하다며 새로 환생해서 알아보고 싶다며 자주 하늘을 올려보았다.
어른이 되어서 으악새가 허공을 날으는 새가 아니고 억새풀의 사투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에게 으악새는 구슬프고 외로운 소쩍새의 다른 이름이었다. 으악새가 왜가리의 사투리인 왁새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지만 나에게 으악새는 끝이 정해지지 않은 기다림으로 각인되었다.
고향 집에 내려가 간장을 담그는 날이면 어머니는 더욱 부지런한 어미 새가 되었다.
어머니는 매년 추석이면 달력을 보고 손 없는 날을 찾아 메주를 띄울 날을 정하고 설날이면 간장을 담글 날을 지정해서 알려주며 잊지 말라고 몇 번이고 강조하셨다.
어머니가 택한 날짜에 맞춰 고향 집에 가면 당신이 손수 농사를 지은 콩을 씻어 가마솥에 삶았다. 알맞게 삶아진 콩을 읍내의 떡방앗간에서 분쇄기에 갈아버리면 금방 끝날 일을 어머니는 된장 맛이 덜하다고 절구질을 고집했다. 늙은 어머니를 대신한 절구질로 며칠간 어깨통증에 시달렸다. 어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도 수시로 안방으로 들어가 누워있는 아버지의 안색을 살피고 기저귀를 갈고 음식을 떠먹이며 평소보다 바쁜 하루를 보냈다. 메주를 쑨 날은 고소한 콩 냄새가 마당까지 점령했다가 밤이면 어머니의 손목과 무릎과 허리에 붙인 파스 냄새가 안방에 진동했다.
“늬 아부지가 둥지의 새 같지 않냐? 새 새끼도 에미가 주는 벌레를 묵고 살아가디끼 늬 아부지도 내가 맥여주는 밥을 묵고 살아간 게, 늬 아부지도 새하고 영락없어야.”
“젊어서 새처럼 날아다니느라 둥지에 머물지 않던 아버지가 밉지도 않소?”
어머니는 물에 말은 밥을 수저로 떠넣으며 표정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 나에게 시선을 옮겨왔다. 수저를 놓은 어머니가 침대의 손잡이 돌려 침상을 세우고 아버지의 야윈 가슴을 당신의 가슴으로 안고 손을 돌려 아버지의 등을 문질러 트림을 유도했다. 어머니의 능수능란한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늬 아부지가 저렇게 누워만 있어도 힘이 된단말다. 늬 아부지가 없다고 생각하믄 막막하고 적적해서 어뜨케 살것냐?”
어머니는 벽시계를 슬쩍 쳐다보고 기저귀를 갈았다.
“새 새끼들이 똥을 싸믄 어미가 물어다가 버리데끼 늬 아부지 똥도 내가 치워줄 때마다 새하고 닮았다는 생각이 든단말다.”
방 안에 아버지의 대변 냄새가 진동해도 어머니는 거리낌 없이 아버지의 엉덩이를 물휴지로 닦았다.
“하루 두어 번 일으키고 수시로 몸을 뒤집어준 게 욕창이 안 생겼어야.”
어머니의 목소리는 요양보호사보다 더 세심하게 아버지를 보살피고 있다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콩을 삶느라 장작을 지핀 안방이 너무나 뜨거웠는데 어머니는 아랫목에 등을 눕히며 날개가 없는 화식조처럼 새가 되어 아버지를 보살피고 있었다. 그 화식조는 정월 대보름 무렵이면 소금을 풀어 간장과 된장을 담그고 지난해에 담가둔 간장과 된장을 항아리에서 퍼내 내 승용차에 실었다. 사실 어머니가 담가 주는 된장과 고추장과 간장이 내가 운영하는 식당의 기초양념이라서 어머니의 노동은 오로지 아들을 위함이다. 부모님을 봉양하지는 못하더라도 불혹이 지난 나이에도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의지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어머니의 둥지에서 어머니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아버지는 살아가고 나는 둥지만 다른 곳에 틀었을 뿐 덩치만 커다란 뻐꾸기 새끼처럼 여전히 왜소한 어머니의 먹이를 먹으며 살아가는 미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방바닥에 누운 어머니는 비상할 수 없는 날개를 가진 화식조가 분명하다고 여겨졌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날갯짓이 가능해져서 화식조가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면 이제는 날갯짓을 못 하는 아버지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간혹 눈을 껌벅이며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는 아버지의 머릿속은 어떤 생각이 들어있을까. 아버지는 당신의 의중과 관계없이 어머니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세상과 결별을 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어머니는 비록 거동도 못 한 채 누워있는 남편이지만 말년을 함께 지내면서 젊은 날의 부재를 모두 보상받았다고 판단되어 아버지의 머리맡에 앉아 어머니의 생각과 결정을 조곤조곤 들려주었고 아버지는 눈을 껌뻑이며 동의했을지 모른다. 그 과정을 정확하게 짐작할 수 없으나 어찌 생각하면 어머니가 이해된다. 자식들에게 내색하지 않았어도 고삭부리로 지내온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온 지 벌써 삼 년이 넘었으니 정녕 지쳤을 법하다. 어머니는 당신의 계획대로 생을 마감했다면 정말 새가 되었을까. 아버지도 함께 새가 되었을까.
어머니는 죽음을 시간에 맡기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선택한 것이라고 편지에 적었다. 그 선택을 위하여 충분한 시간을 갖고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맞이하니 미련이나 아쉬움보다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며 슬프지 않다는 말씀은 사실일까. 자식을 위로하기 위한 거짓말일까. 어쩌면 구들더께가 되어버린 아버지 때문에 당신의 삶까지 함께 마감하기 위하여 달력을 수없이 바라보았을지 모른다. 메주를 쑤고 간장을 담그는 일은 손 없는 날을 선택했지만 당신과 아버지의 삶을 마감하는 일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았을까.
어머니처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친구가 있었다.
서로의 마음도 읽을 수 있는 고향 친구인 용철이가 어느 날 가게를 찾아왔다.
회사에서 상무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알린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사업을 하려고 사표를 냈다는 핸드폰의 목소리는 힘이 넘쳤고 이제 자주 연락 못 해도 서운해 말라고 당부를 했었다. 실제로 가끔 전화를 걸어도 바쁘다는 소리만 뱉으며 서둘러 전화를 끊던 친구가 두 달여 만에 기별도 없이 찾아왔다.
“바쁘신 분이 누추한 식당까지 왕림해주시니 황송하다야, 사업 준비는 잘되냐?”
“나, 스위스 간다.”
“무슨 일인데 국제적인 행보냐?”
“나, 스위스 가면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을 거다.”
“뭐, 사업 포기하고 이민이라도 가는 거냐?”
“아니. 나, 회사 그만둔 거 사실 간암 진단을 받고 그만뒀다.”
“뭐라고? 그러면 치료를 스위스로 가는 거냐?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말이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고 나라에서 받으라는 건강검진도 무시하고 휴일까지 반납하며 노력해서 상무로 승진했을 때부터 윗배에 통증이 느껴지고 극심한 피곤함과 계속되는 소화불량에 병원에 갔다가 간암을 진단받았다. 세상의 지배자인 인간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암이라는 세균에 죽음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절망에 빠졌고 나중에는 억울했다. 얼만큼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람들도 암에 걸리는데 본인만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암에 걸린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의사는 수술을 받아도 별 의미가 없을 거라며 남은 생존 기간을 일 년 정도로 진단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날까. 살아온 날들을 정리하는 글을 써볼까. 생각나는 사람, 그리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이별을 준비할까.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치유에 의지하며 기적을 기대해볼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생각 끝에 가족에게 가장 짧은 고통과 슬픔을 남기고 경제적 부담을 덜어 주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단란했던 가정을 이끌었던 가장의 죽음도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도 치유될 것이고 희망 없는 투병으로 가족을 지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난 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누구나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간단한 진리를 잊고 살았다는 것을 자각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죽음은 스스로 선택하고 싶었다. 용철은 건강했을 때는 두려웠던 죽음을 받아들이며 세상의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죽음과 연관된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호주의 데이비드 구달이라는 학자가 조력자살을 돕는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라는 단체의 도움을 받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을 들으며 정맥주사기에 연결된 밸브를 직접 돌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동영상을 찾았다. 죽음은 슬픔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며 숭고하고 아름다운 맺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데 그것이 조금 빨리 찾아온 것이고 죽음도 인생사의 한 부분이라 인정하니 깊은 바닷속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나라의 의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죽음의 질은 낮아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을 피하기만 할 뿐 건강을 잃게 되는 날이 오고 죽음을 맞이할 순간이 온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한 움큼씩 약을 먹으면서도 기껏 상조회에 가입하거나 묫자리를 정해놓거나 영정사진을 찍어놓고 윤년에 수의를 마련하는 정도일 뿐 체계적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현실과 마주했다. 돌이켜보면 친인척들도 어느 날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중풍으로 팔다리가 자유롭지 못하고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중환자실에서 온갖 의료장치를 주렁주렁 달고서야 가족들이 죽음을 고민하는 상황을 자주 경험했다. 용철은 지인들처럼 고통 속에서 한 마디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는 죽음을 맞기 싫어서 삶에 대하여 최후의 권리를 선택할 수 있는 나라, 스위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웰빙’(well-being)을 넘어 ‘웰다잉’(well-dying)을 추구하는 것이 삶을 아름답게 마감하는 책임 있는 행동으로 여겨졌다.
- 하략 -
그 바다에서 만나다
1
어디로 사라졌을까? 여자는.
불과 한 시간 전까지 함께했던 여자가 사라졌다. 온전하지 않은 발로 혼자서 산으로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여자는 산을 오르지 않고 내려갔을 가능성이 크기에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면 충분히 다시 만날 수 있겠지만 딱히 여자를 다시 만나야 할 이유가 없다. 다만 추운 산속에서 밤을 함께 지새운 인연으로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은 작별 인사는 나눠야 한다는 보편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까닭에 여자의 행방이 궁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침 햇살이 눈에 부시다. 그래, 여자가 떠났으니 나도 홀가분하게 산에서 내려가면 그만이다. 오히려 부담스럽던 찰거머리가 스스로 사라졌으니 고맙다고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다.
어제는 어스름을 짊어지고 올랐던 산을 오늘은 눈부신 아침 햇살을 안고 내려가려는 참이다. 풀어진 실타래 같이 펼쳐진 오솔길이 어제는 참으로 길고도 아득했다.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아련하다. 아련하다는 것은 보통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았을 때 그 기억이 어렴풋한 것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의 아련함은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 기억들이 정리되지 않아 발생한 아련함이다. 세상의 많은 일이 우연히 일어나는 경우가 수두룩한데 어제의 일이 그 상황에 해당한다.
나는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생각한 일을 실행하려고 집을 나섰다.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만일 나중에 흔적이 발견되더라도 그 흔적에서 나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름대로 완벽하게 준비했다. 즉흥적인 행동이 아니어서 준비가 완벽하다고 확신했다. 뜬금없이 그 여자를 만나게 되면서 모든 일이 뒤 틀리고 말았지만.
내가 집을 떠날 때는 입고 있는 옷과 발에 꿴 운동화가 전부였다. 아니다, 입은 옷의 주머니에는 기백 만 원의 돈이 넣어진 지갑과 핸드폰이 들어있었다. 그 흔한 여행 가방 하나 없이 집을 나서는 마음이 바람처럼 가벼웠다.
2
발걸음이 향한 곳은 고향이었다. 고향이라지만 이제는 친척들도 모두 세상을 떠나서 나를 알아봐 줄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수구초심의 심정도 아니었고 갈 곳이 딱히 없었기에 이십여 년 만에 선택한 고향길이었다. 나는 추위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기상청은 금요일, 그러니까 사흘 뒤에 시베리아에 형성된 기압골의 영향으로 한반도에 찬 공기가 유입되어 꽃샘추위가 찾아오겠으며 지역에 따라서는 비나 눈이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일기예보를 내놓고 있었다. 나는 집주인에게 월말까지는 이사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아직 이십 여일의 여유가 있었지만 서둘러 이삿날을 확정하고 집주인에게 날짜를 알려주었다. 추위가 찾아오면 사람들의 외출이 줄어들어 나의 계획을 실천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 그 사흘을 허비하기 위해 고향으로 향했다. 물론 오십이 가깝게 세상을 살아왔으니 친구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었지만 친구들에게 연락하거나 지도를 펼쳐놓고 시간을 보낼 장소를 물색하는 번거로움이 싫었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이 제주도와 고향이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제주도가 머릿속을 스쳐 간 것은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 여하튼 제주도는 너무 멀었다. 계획을 실천할 날짜를 생각하면 남은 시간이 넉넉하지 못했다. 사흘이라는 말미는 계획한 당일을 제외하면 결국 주어진 시간은 이틀에 불과한데 가는 날, 오는 날을 빼고 나면 단 하루가 주어질 뿐이었다. 하루를 위해서 제주도로 향하는 것은 너무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더구나 내가 사는 도시에서 공항이나 항구는 너무 멀었다. 어쩌면 단체관광객 속에 끼어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이 더 어색하고 불편할 것 같아 제주도를 포기하게 된 이유로 더 적절한 건지 모르겠다. 고향길은 집 앞에서 택시만 타면 곧장 도착할 수 있었다. 택시 기사는 장거리 손님을 태워 기분이 좋은지 혼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따스한 햇볕이 택시에 들어와 졸음이 쏟아졌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약속한 금액보다 몇만 원을 더 주었다.
대학을 진학한 이후로 처음 찾은 고향은 낯설었다. 내가 친구들과 뛰어놀던 마을 앞 고목을 목격하고 고향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해서 무척이나 편안했다.
배가 고팠다. 아침밥을 굶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었지만 세 시간이 넘는 시간을 고속도로를 달려 고향에 향하느라 점심을 먹지 못했다. 고양이 하품처럼 나른한 초봄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나는 등대가 보이는 방파제 쪽으로 무작정 걷다가 신선 횟집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섰다. 가게에 딸린 방에 있던 내 나이 또래의 여자가 살갑게 맞아주었다. 배가 고팠지만 우선 생선회와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생선회를 주문하면 나중에 매운탕으로 저녁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인이 내놓은 몇 가지의 밑반찬 중에서 오이 하나를 된장에 찍어 소주 한 잔을 마셨다. 빈속으로 흘러가는 소주가 위장을 훑었다. 술은 몸에서 빠르게 반응하며 먼저 콧김이 뜨거워지고 눈자위에 열이 느껴졌다.
생선을 다루는 여자의 솜씨가 놀라웠다. 비늘을 벗기고 배를 갈라 살점을 발라내 한 접시의 생선회를 만들어왔는데 조금 과장하면 생선회가 접시에서 파닥거릴 정도였다. 호리호리한 몸집에 걸맞은 여자의 손놀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느 바닷가 여자들처럼 억센 손이 아니라 붉은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가락들이 도마 위에서 춤을 추었는데 그것은 작은 꽃송이들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마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이 일정한 속도로 몸을 흔들면서 회를 저미는 여자의 귓불에 매달린 귀걸이도 덩달아 춤을 추었다. 고정관념이겠지만 바닷가 여자들의 대부분은 갯바람에 피부를 그을려 거칠고 바닷물에 노출된 손은 대나무처럼 마디가 굵은 데다가 그 굵은 손가락으로 삿대질하며 누군가와 대거리하는 목소리조차 모래가 섞인 것처럼 억센 모습을 떠올렸지만 횟집의 여자는 달랐다. 목에 두른 스카프도 추위 때문이 아니라 한껏 멋을 부리기 위한 액세서리처럼 느껴졌다. 왜냐면 아직 난로를 치우지 않은 식당은 매우 따뜻해서 여자는 반소매를 입고 생선을 썰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접시에 데커레이션을 강조하는 횟집이 대부분이지만 이곳은 윤기가 감도는 메밀묵 색깔의 회만을 도톰하게 썰어 담아왔다. 생선회는 씹는 느낌도 좋았고 맛도 일품이어서 술맛을 더욱 돋웠다.
바다의 많은 여자는 금전적으로 저렴하고 관리가 편리한 파마머리를 선호하는데 횟집의 여자는 긴 생머리를 나비 모양의 액세서리로 나름 멋을 부려놓았다. 사람의 겉모습은 그 사람의 생활 정도를 말해준다. 생활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것과 정신적인 여유까지도. 그런 의미에서 여자의 삶은 어떤 면에서든 윤택하게 느껴졌다.
초저녁이어서인지 다른 손님들은 전혀 없었다. 원래 선창이 육지보다 바람이 많은 법이지만 잠잠하던 바다에 바람이 불어 대는지 창문이 흔들렸다. 여자는 하릴없이 반대편 의자에 앉아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나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혼자서 술집에 찾아든 남자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여행 왔으예? 묵을 데는 정했는교?”
“네. 아직.”
“그라믄 우리 집에서 묵을란교? 방이 억수로 깨끗하쟤, 따신 물 펑펑 쏟아지쟤, 그라고 방값은 주고 싶은 만큼만 쪼매 주이소.”
“여기서 묵더라도 합당한 금액을 드려야지요."
“아니라예. 손님이 은제 올지 모르니까네 방 하나는 항상 보일라를 켜놓는다카이. 누가 자나 안자나 똑같이 기름이 들어간다 아닙니까.”
“그래도 장사를 하시는 분이......”
“괘안심더. 엿장수 마음인기라.”
여자는 거리낌 없이 술잔 하나를 들고 내 앞자리에 앉았다.
“술은 할마씨라도 여자가 따라야 맛 인기라.”
여자가 술을 따라주었고 나도 여자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두 손으로 공손하게 술을 받은 여자가 건배를 제의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부딪쳤고 단숨에 마셨다. 소주 한 병이 바닥날 때까지 연이어 잔을 부딪쳤다. 여자가 일어나 매운탕을 끓여왔고 밥 한 공기도 가져왔다. 소주 한 병을 더 나누어 마시고 술판을 작파했다. 나는 지갑에서 잡히는 대로 돈을 꺼내어 술값과 방값을 지급했다.
“너무 많습니더.”
여자가 절반의 지폐를 되돌려 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내도 양심이 있다 아닙니꺼.”
보통의 주인은 뜻하지 않은 횡재에 콧노래라도 부를 테지만 여자는 완강했다. 나는 머쓱한 기분으로 돈을 받아 지갑에 다시 넣었다.
여자의 말처럼 방은 깨끗했고 따뜻했다. 창문을 흔드는 바람 소리만이 방안을 휘젓고 다녔다. 나는 리모컨을 눌러 텔레비전을 켰다. 먼저 신음 소리가 들려오고 화면이 밝아지면서 섹스를 나누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리모컨 버튼을 눌러 채널을 바꾸었다. 홈쇼핑, 스포츠, 드라마, 가요제 재방송, 뉴스...... 나는 뉴스에 채널을 고정하고 일기예보를 기다렸다. 기상캐스터가 만주 지방에 형성된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한반도가 걸쳐있어 시베리아 저기압의 유입을 막아 추위가 하루쯤 늦춰지겠으며 지역에 따라 진눈깨비가 날리겠다고 읊조렸다. 계획을 실천으로 옮겨야 할 시간이나 장소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유 없이 짜증이 일었다.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었다. 작은 생수 한 병과 비타민 음료수 두 병이 들어있었다. 물을 마시니 정신이 조금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샤워를 할까 망설이다가 곧 생각을 접었다. 씻는 것이 귀찮아 포기했다. 텔레비전 옆에 놓인 콘돔 두 개와 재떨이, 성냥갑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콘돔 하나를 들고 봉지를 뜯어보았다. 콘돔에서 진한 향기와 함께 고무의 부드러움이 엄지와 검지에 느껴졌다. 그것을 탁자에 던져놓고 성냥갑에 적혀있는 꽃다방의 전화번호를 눌러 커피를 주문하면서 생수 두 병과 담배 한 갑을 부탁했다. 다시 목이 말랐기 때문이다. 횟집의 여자에게 물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왠지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전화를 거는 일은 마찬가지였지만 나의 선택은 다방이었다. 그것은 비록 처음 만났으나 소주를 나눠 마신 횟집 여자보다 낯설고 생소한 다방 아가씨가 횟집 여자보다 편할 것 같았다. 꽃다방의 아가씨는 꽃처럼 예쁘지 않았다.
“오빠, 안녕. 정양이에요. 커피 둘 크림 셋?”
“대충.”
능수능란하게 커피를 타서 내 앞으로 내밀었지만 나는 물부터 마셨다.
“오빠, 출장이야? 여행이야? 여하튼 심심하겠다.”
“담배 좀......”
“여기.”
다방 아가씨가 담배를 뜯어 한 개비를 꺼내주고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주었다. 그녀도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연기를 내뿜었다.
“오빠,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 이 밤을 혼자 지내려면 엄청 외롭겠다.”
아가씨가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커피보다 물과 담배가 목적이었기에 이제 아가씨가 돌아가 주기를 바랐다. 커피를 빨리 마시면 아가씨가 빨리 돌아갈까 싶어 식어버린 커피를 단숨에 마셨다.
“이 오빠 성격은 급한가 보네.”
“얼마?”
“음, 커피와 담배, 그리고 물...... 이만 오천 원.”
나는 지갑에서 오만 원권 두 장을 꺼내주었다. 꽃다방 아가씨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만들었다.
“오빠, 멋쟁이. 생각나면 전화해.”
아가씨가 내 지갑을 흘겨보며 야릇한 웃음을 짓더니 자기 지갑을 열어 명함 한 장을 주었다.
“내 번호야. 전화하려면 다방으로 하지 말고 꼭 핸드폰으로 해. 알았지?”
무엇이 생각나면 전화하라는 것인지를 물어보려다 짐작되는 것이 있어 관뒀다. 아직 물은 한 병이 남아있고, 담배도 넉넉했다. 밖에서 자동차 경적이 들려왔고 아가씨가 쟁반을 들고 방을 나갔다.
“오빠, 진짜 순진한 거야? 얼굴이 빨개졌어. 히힛.”
술기운 때문에 얼굴이 상기된 것을 모르는 아가씨는 신발을 발에 꿰며 웃겨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문을 닫았다. 뉴스가 끝난 텔레비전은 에어컨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고 여전히 바람은 창문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손에 들린 명함에 눈길을 주었다. 명함의 바탕에 예쁜 여자의 사진을 희미하게 깔고 그 위에 ★정이나★라는 이름과 전화번호만을 인쇄한 단순한 명함이었다. 누구의 사진인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배달하고 돌아간 아가씨의 얼굴은 아니었다. 꽃처럼 예쁘지 않았던 꽃다방 아가씨가 준, 꽃처럼 예쁜 얼굴이 박힌 명함을 구겨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명함을 만들어 다니는 유별난 다방 아가씨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명함에 인쇄된 이름은 당연히 본명이 아닐 테고 적혀있는 핸드폰 번호도 가족이나 친구와 통화하는 전화는 아닐 것이다. 다방 아가씨가 돌아가고 막상 바람 소리와 텔레비전의 소리만이 빈방에 남게 되자 아가씨가 조잘거리며 머물렀던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되었다. 무료함 때문에 꽃다방 아가씨를 떠올린 것이라 여기며 셔츠와 양말을 벗었다. 씻기는 싫었도 조금은 개운해진 느낌이 들었다. 텔레비전 옆에 뜯긴 콘돔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뜯긴 콘돔을 보고 다방 아가씨가 야릇한 웃음을 지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리려다 그만두었다. 그것을 버리는 일조차 귀찮았다.
나는 또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창문을 열었다. 바람에 갯비린내가 물씬 묻어났다.
“손님, 주무신교?”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고 여자의 손에는 작은 쟁반이 들려있었다. 그 쟁반 위에는 소주 두 병과 회무침 한 접시, 그리고 컵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잠이 안 와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왔심더. 아직 아홉 시도 안되야서 안 주무실지 알었어예.”
여자는 거리낌 없이 들어와 술병을 땄다.
“묵고 죽은 귀신이 때깔이 좋은기 아니라 술 묵고 죽은 귀신이 때깔이 좋다고 안캅니꺼.”
“네?”
“술을 마시문 얼굴이 벌게지니까네 때깔이 좋은기라 이 말입니더,”
여자의 우스갯소리에 웃음이 삐져나왔다. 딱히 할 일도 없는 밤이어서 여자와 술을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여자 앞에 앉았다.
“손님, 안추워예?”
나는 일어나 창문을 닫았다. 창문을 닫지 않았다는 것은 갑작스러운 여자의 방문에 적잖이 당황하여 나타난 행동이었다. 나는 혹여 그 당황스러움을 여자가 눈치를 챌까 새롭게 당황스러웠다.
“받으시소.”
여자가 한 손에 잔을 들고 나머지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권했다. 술을 받고 여자에게도 술을 따라주었다.
“건배하입시더. 그란데 뭣을 위해서 건배를 해얄꼬?”
“글쎄요.”
“맞다! 이 밤을 위하여.”
뜻하지 않은 여자의 방문이 반갑지도 싫지도 않았지만 부담까지 떨치기는 어려웠다. 바닷가 여자답지 않게 교양을 갖춘 사람이라 여겼던 것이 잘못인가 싶어 혼란스러웠다. 여자는 밤에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낮보다 생기가 넘쳤다. 하루의 일과를 끝낸 여유로움 때문인지 본래 럭비공처럼 튀는 성격인지, 초저녁에 마신 술이 여자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남자 혼자 묵은 방에 술을 들고 찾아왔다는 것은 분명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여자에게 어떤 믿음과 신뢰를 심어주었는지 그것이 아니라면 겁이 없는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나도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늙은 나이도 아닌, 미모가 뛰어나지는 않지만 밉상도 아닌 여자와 단둘이 술을 마시다가 자칫 사소한 실수나 언행으로 여자가 오해한다면 나의 본심과 달리 낭패를 경험하지 말란 법이 없었다. 낭패가 발생하면 나의 계획이 뒤틀릴 수 있어 여간 신경이 쓰였다. 나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여자가 그러한 상황을 유발하기 위해서 술을 들고 찾아왔는지 모른다는 의구심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다른 일은 귀찮아하면서 여자의 방문이 싫지 않은 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 귀찮게 여겨져 생각을 접었다. 정답을 찾아야 하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직 횟집을 끝내기에는 이른 시간이 아닌가요?”
“어데예. 선원들이 술 묵으러 안 오면 그날 장사는 끝인기라. 지금은 항에 들어올 고깃배도 ㅤㅇㅡㅄ어예. 간혹 뜨내기손님이 있지만도 오늘은 주말이 아니라서 애초에 글렀심더.”
“그렇군요. 일찍 쉬시지 않고요.”
“초저녁에 잠이 옵니꺼?”
여자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하고 술병을 들어서 내 잔을 채우고 자신의 잔도 채웠다. 여자에게 술을 채워줄 틈이 없었다.
“지는예, 혼자서 술을 묵는 것은 싫어하지만도 스스로 따라 마시는 것은 괘않습니더.”
미안한 마음이 얼굴에 나타났는지 여자가 묻지도 않은 얘기를 꺼내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 씁쓸함이 묻어난 듯 보였다.
“가오리 회무침인 데에 억수로 맛있심더. 봄의 별미라예.”
여자의 말처럼 새콤달콤한 가오리 회무침은 맛이 일품이었다. 쫀득쫀득 씹히는 것이 술안주로 안성맞춤이었다.
“어디서 오셨는교? 지는 여그가 고향이라예.”
나는 대답 대신에 술잔을 들었고 여자도 술잔을 들어 부딪쳤다.
“이 밤을 위하여.”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