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92055833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26-01-02
책 소개
심리적 리얼리즘의 대가,
조지 엘리엇이 파헤친 인간 내면의 심연
조지 엘리엇은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여자 셰익스피어’라 불린다. 인간 심리에 대한 탁월한 통찰과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영문학을 한 단계 더 격상시켰던 조지 엘리엇의 작품 가운데, 비뚤어진 욕망과 기이한 정신을 지닌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중편 두 편이 『고장 난 영혼』이라는 제목으로 엮였다. 이 책에 수록된 「벗겨진 베일」과 「제이컵 형」은 인간의 탐욕과 위선, 허영을 폭로하는 동시에, 사회적 규범이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옥조이고 개인들의 운명에 명암을 드리우는지를 보여준다.
「벗겨진 베일」은 조지 엘리엇이 쓴 유일한 고딕 소설로, 골상학과 투시 능력,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수혈 요법 등의 소재가 등장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타인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불행한 능력을 타고났다.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는지까지도 낱낱이 예지하고 있는 그는 형의 약혼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데, 그가 그녀에게 매혹된 것은 오직 그녀의 마음만이 들여다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민한 기질, 시인의 천성을 지닌 그와 간교한 정신의 소유자인 그녀는 비참한 결말을 향해 함께 치닫는다.
「벗겨진 베일」의 주인공 래티머가 원치 않은 능력 때문에 괴로워하는 반면, 「제이컵 형」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포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능력과 조건을 탐하는 탓에 점점 더 운명의 실타래가 엉켜버린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있던 포는 자신은 이런 “좁은 운명”에 걸맞지 않으며 마땅히 “최상의 자리”에 올라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꿈을 이룰 ‘신세계’로 떠나기 위해 그는 기꺼이 가족을 배신한다. 그런 그를 막아서고 파국을 선사하는 인물은 아무것도 모르고 오직 먹는 것에만 집착하는 바보 형이다. 「제이컵 형」은 인습과 가부장적인 질서가 지배하는 전통 사회에서 상업자본주의 도시로 변모하는 중인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신분 상승 욕구와 가치 충돌이 빚어내는 다양한 갈등을 펼쳐 보여준다.
조지 엘리엇은 “서양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해럴드 블룸)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놀라운 업적을 이뤘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결코 평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 그가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는 여성에게 어울리는 일이란 아이를 키우는 것이나 가사노동이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했기에 자신의 본명을 숨기고 ‘조지 엘리엇’이라는 필명을 사용해야 했고, 못생긴 외모 때문에 조롱당해야 했다. 또한 유부남이었던 헨리 루이스와의 사랑이 당대의 도덕 관념에 위배되었던 탓에 가족에게 의절당하고 고립된 삶을 살았다. 사회적 관념이 용인하지 않는 능력과 이상, 열정을 갖고 있었던 조지 엘리엇 또한 또 한 명의 ‘고장 난 영혼’이었던 것이다.
1856년 《웨스트민스터 리뷰》에서 “예술의 위대한 기능”은 “공감의 확대”와 “동료 인간들과의 접촉을 확대하는 것”이라 썼던 조지 엘리엇은 이 책 『고장 난 영혼』에 수록된 작품들에서 욕망하고, 갈등하고, 좌절하는 인간들의 내면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동시에 그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보여준다. 운명이라는 굴레에 갇혀 발버둥치는 모순된 인간들의 갈등과 고독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이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근원적 괴로움을 다시 돌아보게 될 것이다.
목차
벗겨진 베일
제이컵 형
해설 고장 난 영혼, 그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오래된 이야기다. 먼 훗날에나 치를 대가에는 아랑곳없이 인간이 유혹자에게 자신을 팔아넘기고 피의 계약을 맺는 것. 인간의 주위에는 늘 어두운 그림자가 있기에, 그 계약을 맺고도 여전히 사나운 충동으로 영혼의 갈증을 채우고자 허겁지겁 악마의 잔을 들이키는 것. 지혜에 이르는 지름길이란, 특허받은 전찻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수세기에 걸친 발명과 발견이 있었음에도 영혼의 길은 가시 돋친 황야에 펼쳐져 있어 여전히 과거와 같이 혼자서, 피 흘리는 발로, 도와달라 흐느끼며 걸어야 한다.
그 순간 내가 어떻게 보였는지 안다. 버사가 매서운 회색 눈을 들어 나를 바라봤을 때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내 모습을 봤으므로. 유령이나 보는 딱한 인간, 한낮에도 혼령에 둘러싸여 있어 나뭇잎도 움직이지 않는 산들바람에 벌벌 떨고 인간이 일반적으로 욕망하는 대상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달빛에 애달파하는 인간.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서로를 재단했다. 완벽한 조명이 모든 것을 밝히는 지독한 순간이 닥치자 나는 어둠이 내게 숨겼던 풍경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텅 비고 범속한 벽뿐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버사와 이 여자 사이의 비밀은 무엇이었나? 나는 통찰력이 돌아와 사랑 없는 두 여자의 심장에서 무엇이 자라났는지 강제로 보게 될 것이 끔찍이도 두려워 버사에게서 눈을 돌렸다. 버사가 자신의 비밀에 봉인을 찍을 이 죽음의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비밀이 내게 계속 봉인되어 있음에 나는 신께 감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