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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7076583
· 쪽수 : 344쪽
책 소개
목차
1. 마르셀
2. 닥터 정
3. 그 사람, 장
4. 마쓰코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마르셀은 몸을 곧게 세우고 그를 멀리 바라보면서 발을 내딛어 그것을 두세 개 밟았다. 물컹, 진흙과 밀랍이 함께 뭉그러지면서 발가락 사이로 쭉 밀려올라왔다. 보들보들하게 착 감겨드는 촉감이 그녀의 종아리를 타고 올라와 등뼈를 간지럽혔다. 뒤꿈치를 다시 내려놓을 때 물큰 앞으로 밀려나며 불룩 솟는 밀랍이 발의 아치를 살짝 찔렀다. 그것은 또 아주 가는 바늘을 그녀의 둥근 엉덩이 사이로 찔러 넣는 것 같았다. 나지막하게 내려앉은 어스름이 수많은 여자들의 성기에 빛과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것들은 바닥에서 얼마쯤 떠있는 것 같았다. 어떤 입술은 뾰족하게 내밀어져 있었고, 어떤 입술은 도톰한 볼에 숨어든 것처럼 보였다. 어떤 입술은 유난히 커다랗게 피어 있었고 어떤 입술은 꼭 다물려 있었으며, 어떤 입술은 금방이라도 바르르 떨릴 것처럼 살짝 벌려져 있었다.
그는 자기의 인생에서 마쓰코와 마르셀이라는 여자들을 만날 것이라고 가정했던 적이 없었다. 정말, 우연히 그녀들이 그의 인생에 접속이 되었다. 그녀들 또한 우연이었겠지. 그의 우연과 그녀들의 우연이 만나 괴상한 운명이 되어버렸다. 그녀들을 처음 만난 그 순간, 그가 특별한 느낌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런 방식으로 흘러가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녀들의 운명과 그의 운명이 만나 파괴와 자멸로 치달은 것이다. 그녀들 역시 장만큼이나 뒤틀린 운명을 가진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들에게는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장은 마르셀의 입술을 자세히 읽었다. 나를 바치고 싶어요. 윤기가 감돌고 촉촉하며 살아 꿈틀거리는 입술을 타고 그가 해독하기 어려운 문장이 흘러나왔다. 아니, 그 목소리를 들었다. 그 뜻을 헤아리기도 전에 금방 사라져버릴 목소리. 그 목소리를 잡으려고 장의 눈은 그녀의 입술에 바짝 다가갔다. 나를 바치겠어요. 그 두 마디는 장의 뇌에 도달하기도 전에 그의 손을 움직여 그녀의 목을 향해 뻗게 만들었다. 가는 목소리와 함께 가는 목덜미를 움켜쥐고 그는 문득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초록색 홍채의 무수한 잔주름이 그를 향해 서서히 열렸다. 그 어둡고 깊은 곳에서 이제껏 만나보지 못했던 열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깊고 깊은 우물의 한가운데서 나를 바치겠어요, 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바친다. 그것은 신성한 존재에 대한 숭배의 가장 높은 단계가 아니던가. 장에게는 내 목을 바치겠어요, 라고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