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내가 사랑한 성경

내가 사랑한 성경

(박희천 자서전)

박희천 (지은이)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2016-12-16
  |  
11,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9,900원 -10% 2,000원 550원 11,35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인터파크 로딩중
11st 로딩중
G마켓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내가 사랑한 성경

책 정보

· 제목 : 내가 사랑한 성경 (박희천 자서전)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목회일반
· ISBN : 9788957317136
· 쪽수 : 192쪽

책 소개

신학은 보수적이지만 말씀을 실천하는 삶에서는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과감했던 박희천 목사는 고난에 처한 성도와 제자들을 보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또한, 한 번 일을 맡기면 전폭적으로 믿어주고 밀어주고 일절 간섭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목차

서문 | 일평생 말씀 사랑으로 불길처럼 살다 ㆍ 4

1부 북쪽에서의 삶 ㆍ 11
2부 피난 시절 ㆍ 37
3부 신학교에 진학하다 ㆍ 55
4부 내수동교회에 부임하다 ㆍ 81
5부 잊을 수 없는 분들 ㆍ 115

부록 | 내가 만난 박희천 목사님 ㆍ 139

저자소개

박희천 (지은이)    정보 더보기
평양신학교와 숭실대학교를 거쳐 고신신대원을 졸업한 후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Th. M.)와 미국 칼빈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서울 내수동교회를 담임하였고, 총신신대원에서 28년간 교수로 역임하면서 헬라어, 설교학, 성경해석학 등을 가르쳤다. 현재 내수동교회의 원로목사인 그는 성경에 대한 특별한 사랑으로 한국 교회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많은 후학들과 목회자들에게 성경을 올바르게 설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귀감이 되어 왔다. 『표준성경』(생명의말씀사) 번역위원으로도 활동했으며, 저서로는 『나의 설교론』, 『사무엘상』, 『사무엘하』,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왕국』, 『북국 이스라엘』 외 수권이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집에 돌아와 식산은행에 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식구들도 야단이 났다. “그 좋은 직장에 왜 안 들어가느냐” 하며 난리였다. 주일성수를 모르는 가족들에게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1948년 2월 식산은행에 들어갔다면 그해 9월 평양신학교에 가지 못했을 것이고, 아마도 목사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식산은행은 6·25전쟁이 터지면서 문을 닫았다. (…)
기독교연맹 가입 마감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연맹에 가입하지 않으면 투옥되거나 순교를 각오해야 했다. 나는 가입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감옥 아니면 순교밖에 다른 길은 없었다. 타의에 의해 결심하게 되었지만, 각오는 단단히 다지고 있었다. (…)
대문에서 방으로 들어가 성경책을 챙겨 나오는 데 대략 12초 정도 걸렸을 것이다. 막 대문을 나서려는데 순경 두 명이 총에다 총검을 꽂은 채 걸어오고 있었다. 심장이 쿵 떨어져서 바로 몸을 숨겼다. 만약 성경을 가지러 다시 집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길에서 순경들과 마주쳤을 것이다. ‘하나님이 날 살려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용기가 났다. 순경들이 지나간 뒤 바로 나가서 산으로 피했다. 그야말로 성경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이다.
1부. 북쪽에서의 삶


전세가 불리해지면서 서울에서도 피난을 떠나야 할 처지가 되었다. 할 수 없이 또 길을 나섰다. 가마니와 이불을 둘둘 말아 지고 화물열차 지붕에 올라탄 채 대구까지 왔다. 부산으로 가면 서울로 돌아가기 힘들 것 같아 대구에 내렸다. 대구역 대합실에서 셋이 가마니를 깔고 잤다. 겨울인 데다 대구 바람이 세서 무척 추웠지만, 셋이 의지하고 견뎠다. 두 아이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를 하늘같이 믿고 따라다니는 녀석들을 보면서 내가 뭔데 이렇게 의지하나 하는 생각에 더욱 책임감이 생겼다. (…)
내가 북한에서 순교할 각오를 했던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었다. 공산치하에서 기독교연맹에 가입하지 않고 목회를 계속하려면 감옥과 순교밖에 달리 길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순교할 마음으로 흉내라도 냈더니 1950년 8월 6일부터 1952년 1월까지, 약 1년 6개월 동안 하나님은 나에게 아홉 가지 기적을 허락하셨다.
2부. 피난 시절


그날 회개하면서 나는 무력하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았다. “제 힘으로 하려면 새끼손가락 하나도 못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셔야 할 수 있습니다. 제 힘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없고 내가 전부였던 것을 처절하게 회개했다. 그날로부터 나는 없어졌다. 그 이후 나는 교만과 담을 쌓았다. 교만하면 망한다는 것을 마음 판에 깊이 새겼다. (…)
한상동 목사님은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거절하여 평양감옥에 6년간 있다가 출옥하신 분이다.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해도 끄떡도 하지 않던 한 목사님은 해방을 맞이하면서 석방되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존경해 마지않는 분이셨다.
더욱 감격스러운 것은 미혼이었던 내가 한상동 목사님 댁에서 하숙하게 된 일이다. 삼일교회에 가자마자 6월부터 그해 말까지 황송하게도 하루 세 끼를 한 목사님과 겸상을 했다. 보통 축복이 아니었다. 존경하는 목사님 곁에서 2년 7개월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3부. 신학교에 진학하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