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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종교일반 > 종교철학
· ISBN : 9791176110068
· 쪽수 : 168쪽
· 출판일 : 2026-01-15
책 소개
예수라는 북극성을 향해 가면서도 우리는 나침반처럼 늘 흔들린다. 흔들림을 멈추기 위해서는 내 안의 뜨거운 갈망을 직시하고, 타인의 욕망을 흉내 내는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침묵’은 그 멈춤의 시작이며, 가쁜 호흡을 가다듬어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보게 하는 생명의 길이다. 이 책은 속도전 속에 매몰된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서서 진짜 나를 만나는 품격 있는 신앙을 제안한다.
욕망의 기관차처럼 달리는 우리에게 ‘멈춤’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보통 ‘멈춤’의 의미는 피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과 내 주변을 적극적으로 돌아보게 되고, 성찰의 계기를 제시한다. 자발적 멈춤의 필요성과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경쟁에 쫓겨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사람에게 있다. 또 경쟁과 속도에 매몰되어 목적 지향점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은 자발적 멈춤과 진정한 행복을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현대인이 ‘내면의 불’과 세상의 미혹, 욕망에 사로잡혀있다고 본다. 이 내면의 불에 있는 사회를 광야로 보고 이곳에서 타협하지 않고 제대로 살 수 있게끔, 멈출 수 있게끔 예수를 닮고 실천하는 영성의 가치로 넘어서자고 한다.
이를 저자는 르네 지라르의 모방욕망으로 설명해낸다. 욕망은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이지 않고 모방일 뿐이고, 주체가 라이벌과 대상을, 특히 내부적 중개에서 라이벌에게 모방욕망이 모방폭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안한 심리와 얕은 호흡으로 성찰조차 하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한국교회와 무조건 복종만 하는 성도를 보며 그 앞은 낭떠러지일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아노미 상태에 있는 현대인에게 이 책이 개인과 공동체에 하나의 새로운 기준과 삶의 방식 그리고 사람에 대한 다른 접근을 하는 데 있어 방향성을 제시하기를 기대한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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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프롤로그
1부 멈추지 못하는 세상
나침반과 같은 인생
어두운 밤을 지나
‘슈필 라움’에서 ‘스피리추얼-라움’으로
2부 욕망하는 군상들
열정의 출발
르네 지라르의 모방욕망
지라르의 렌즈로 사무엘하 11-12장 보기
3부 멈춤의 길: 침묵
침묵의 의미
침묵을 경험하는 사람들
침묵: 깊은 호흡의 회복
침묵을 통한 의식 성찰
침묵에서 기도로 나아감
기도를 통해 자기 욕망에서 벗어나기
부록
멈춤을 위한 질문들
저자소개
책속에서
헤롯 안티파스, 헤로디아, 그리고 살로메…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권력자? 맘만 먹으면 세상에 자기 맘대로 못할 것이 없는 자? 이들은 자신의 내면이 불안하기에, 헛된 소유욕으로 치우친 편심으로 가득한 자들이다. 그것이 헤롯 안티파스처럼 성장 과정에서 형성되었든, 아니면 헤로디아처럼 결혼을 통해 만들어졌든, 아니면 살로메처럼 부모에게 학습되어 자기 것이 되었든, 그들은 세상의 것을 다 가진 사람들처럼 보였지만, 한없이 깨지기 쉽고 흔들리기 쉬운 사람들이다.
자신의 내면이 약하니, 치우치기 쉬우니, 내면의 약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어떤 공격에도 깨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더 두껍게 포장한다. 내 얼굴의 주름을 보이지 않기 위해 더 두껍게 화장을 하듯, 그렇게 내 자신을 감추고 헛된 것으로 채우려 한다.
1부 _ <나침반과 같은 인생> 중에서
영적으로도 이런 ‘자기만의 공간’ 문제는 중요한 화두다. ‘슈필라움’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라면, 영적인 공간 즉 ‘스피리추얼 라움’은 ‘내 마음껏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영적 공간’이다. 전자인 ‘슈필라움’은 자기 멋대로 하는 공간이라면 후자인 멈춤 ‘스피리추얼 라움’은 하나님의 초대에 우리가 들어가는 공간이다.
그래서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이 초청하시는 공간 즉 사막과 광야로 들어가서 주님을 깊이 만나기를 사모했다. 그렇게 1,500년 전 ‘베네딕트 공동체’가 태동했고, 290년 전에는 얀 후스Jan Hus의 후예들이 ‘헤른후트Hernhut 공동체’를 만들었으며, 70년 전에는 맨발의 성자로 불리는 이현필 선생님이 한국 개신교 최초로 ‘동광원東光院’이라는 수도원을, 얼마 후에는 엄두섭 목사님이 은성수도원을 만들어 ‘스피리추얼 라움’ 즉 영적 공간을 확장시켜 나갔다.
나에게 그런 영적 공간이 있는가? 나를 위해 내 멋대로 하던 슈필라움의 욕망이 그치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는 공간, 내가 잠잠해지고 주님이 일하시는 것을 느끼는 공간, 그런 공간이 있는가? 가장 바람직한 것은 내 맘대로의 쉼의 공간인 ‘슈필라움’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스피리추얼 라움’이 되는 것이다.
1부 _ <슈필 라움(자기 틀)에서 스피리추얼 라움(영적 자리)으로> 중에서
그런데 왜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멈추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을 잘 설명해주는 접근이 있다. 그것은 언어적 접근이다. 언어만큼 한 개인과 사회의 감정 밑바닥 정서를 잘 드러내는 표현은 없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다. 그 너머의 것이다. 언어는 그 문화권의 철학과 세계관을 반영한다. ‘사람’이라는 단어만 보더라도 그렇다. 어떻게 각 문화권이 서로의 이해를 가지고 ‘사람’을 정의하는가?
동양 문화권에서는 사람을 인간人間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한다. 이런 인간 규정을 가진 동양 문화권에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가 미덕이 아니라, ‘우리 가족’, ‘우리 조직’이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미덕이다. 사람의 가치는 ‘사람들 사이’에 짙게 밴, 서열과 위계질서, 곧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매겨진다. 동양 문화권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는 빨리 내 선명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조직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 조직에서 힘 있는 사람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즉 조직이 나아가는 바에 힘을 보태는 것이 무엇인지 빨리 파악하는 것이 곧 생존의 길로 여겨진다.
2부 _ <열정의 출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