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제

"CF에서 바보처럼 '헤' 웃고 있는 날 보고 뭘 생각했는지 모르겠는데, 나 원래 이런 애야. 못 배워서 무식하고, 참을성도 없어서 기분 더러우면 숨길 줄도 몰라. 교양이 철철 넘치는 여자를 기대했다면 일찌감치 집어치워요. 그런 거 바랐으면 당신 주변에 있는 여자들이랑 놀아야지. 안 그래?"
비스듬히 고개를 든 시영은 손가락 사이에 끼운 열쇠를 한 번 흔들었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사실 당신이 나한테 바라는 건 따로 있잖아. 결국은 그것 때문에 온 거잖아.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가방 끈이 기나 짧으나 한 꺼풀 벗기고 보면 남자들은 다 똑같은 걸, 뭐. 당신 남자잖아."
발목을 돌려 신고 있던 구두를 떨어뜨린 시영은 발을 움직였다. 탁자 아래를 더듬던 그녀의 발이 남자의 구두를 톡 건드렸다. 하지만 남자는 통나무처럼 반응이 없었다. 앙증맞은 입술을 실룩거린 시영은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녀의 날씬한 발은 똬리를 트는 뱀처럼 남자의 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솔직하게 굴어요."
마침내 움찔거리는 반응을 보이는 남자의 몸이 느껴졌다. 만족감에 입술이 비틀렸다. 무릎을 지나 단"단한 허벅지를 향해 움직이는 그녀의 발은 거리낌이 없었다. 무서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던 관형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리고 시영의 발을 사정없이 움켜잡았다.
"허억!"
"사실 이 자리에 나오면서도 잘 몰랐다. 내가 뭘 바라는지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겠어. 그걸 몸소 가르쳐 줘서 고맙기까지 하군."
우악스럽게 잡힌 발등에서 퍼진 고통에 시영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밥맛은 진작 사라졌고 저녁 스케줄은 비워뒀으니 딱히 할 일도 없군. 그럼 가볼까?"
'툭' 소리와 함께 그녀의 발이 아래로 떨어졌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