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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어린이 > 동화/명작/고전 > 국내창작동화
· ISBN : 9788957985809
· 쪽수 : 120쪽
책 소개
목차
진짜는 나쁘지 않았다
[쑥ː]
그날, 우리는
가출 같은 외출
망월동 삼거리
날 좀 내버려 둬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6학년 들어 처음으로 운동장에서 체육을 하고 들어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오금을 톡톡 건드렸다. 누구든 가만두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돌아보니, 5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던 민영이었다. 드러내 놓고 괴롭히지는 않지만 실수인 척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면서 반 전체를 휘젓는 아이. 내가 찍힌 건가, 쟤를 이길 수 있을까, 가슴이 철렁하면서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지만 냉정한 척 침을 삼키고 민영이에게 향했다. 민영이가 애들이랑 이야기하는 걸 들었던 게 떠올랐다.
“너, 바비 인형 좋아하지?”
“어. 난 옷 사는 게 취민데.”
뜨거운 물 한 바가지에 살얼음이 풀린 것처럼 민영이 목소리가 변했다. 나도 자신이 생겨 한껏 부풀렸다.
“옷 한 벌 선물해 줄게.”
“너도 바비 마니아였구나!”
민영이는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람처럼 왜 주는지, 그런 건 묻지도 않았다. 나는 다음 날 인터넷에서 주문한 분홍색 드레스 한 벌을 가져다줬다. 그 뒤로 민영이는 급식실에서 자기 오른쪽 자리를 내줬다. 쉬는 시간이나 청소 시간에도 불러 같이 수다를 떨었다. 민영이와 같이 있으면 청소를 안 해도 책상 위에서 발을 달랑거려도 아무도 날 건드리지 않았다. 더 신기한 건 민영이 옆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와 손동작이 커졌다는 거다. 가끔 민영이가 원하는 물건을 사 주거나, 돈을 주면서 내 존재를 확인시켜 주면 그것으로 모든 문제는 끝이었다.
“틀린 문제 다시 풀어 와. 그리고 참, 요즘 학교에서 돈 뺏기는 일이 있다던데, 우리 반에는 그런 사람 없지……?”
가슴이 철렁했다. 몇 마디 선생님 말이 더 이어졌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종현이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간 칠판 앞에서 있었던 일보다 더 큰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려고 한 일이 아니었는데.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진 느낌이었다.
“순간의 실수가 뒤늦은 후회를 불러온다. 항상 조심하자. 알았지?”
힘주어 마무리하는 선생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래, 난 돈을 뺏은 적은 없어. 받은 것도 없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마음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말았다.
“결국 애 엄마가 바람난 거지. 그 집안은 끝장이고.”
5학년 선생님들이 모두 모인 데서 우리 담임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 다른 선생님들은 당황해하며 이야기를 끝내자는 눈치였지만 담임 선생님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그러면서 내 등까지 토닥였다.
“그래도 잘 살 수 있지? 엄마 없는 애들이 한둘이야? 선생님을 아빠라 생각하고 어려운 일 있을 때 찾아와. 알았지?”
솔직하게 말한 내 자신이 한심했다. 엄마에 대한 원망과 함께 날 위해 주는 척하는 선생님도 미웠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혼자 빈방에서 몸을 돌돌 말고 공벌레가 되어 웅크리고 있었다. 가끔 전화벨이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혹시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화기를 들었는데 뭘 미납했으니 언제까지 내라는 안내였다. 그 뒤로는 일절 전화를 안 받았다.
금방 소문이 퍼졌는지 마트나 문구점에서까지 나를 보는 눈길이 곱지 않았다. 이건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알 수 있는 거다. 돌아서면 뒤통수가 따가웠다. 자연스럽게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