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58593362
· 쪽수 : 150쪽
· 출판일 : 2017-06-20
목차
05 시인의 말
133 해설: 현실에 대한 치열한 의식과 가상공간이 융합된
이미지의 세계 ; 심상운
1
15 6차선 도로
16 찰나
17 돌담을 넘어오는 달랑게
18 시법
20 예안리 무덤
22 길 위에 서다
24 도쿄 일기
27 스킨십
28 새를 낳는 사람들
30 스마트폰의 하루
32 망사리에 가득한 별
35 에밀레종
36 종지
38 돌아오지 않은 귀환
40 이제는
42 통영 점묘
2
47 고원을 가르는 경적 소리
48 별무리 지는 강물
49 무의도 감은 눈에게
50 49제
51 사북역
52 셰릴 스트레이드를 만나다
54 불새
56 감자
57 이즈하라항의 달빛
58 그의 초가
60 소리의 집
61 그믐달의 다음 페이지
62 바구니 선장
64 서녘을 애무하다
3
69 오동도
70 등촌시장 떡볶이 아줌마
72 부메랑
74 처마 끝에 물고기
75 갈림길
76 천년의 기다림
77 제주에서 온 편지
78 구포역
80 고인돌과 우주여행
81 포옹
82 유칼리나무
84 진눈깨비 내리는 날
4
89 만파식적
90 하얀 지평 너머
92 바다에 촛불을 켜주세요
94 석양의 눈썹
96 문 밖에 세워진 기억
98 교차로에서 바지 내리는 李箱
100 아구찜 속에 봄볕
101 예수가 거북선을 던지다
102 꽃잎의 타종
104 초당 마을
106 딸기밭
108 붉은 울음숲
110 보고 싶은 낯선 얼굴
111 잠금
5
115 새우등의 초대
116 겨울나무에 대한 단상
117 쪽문
118 북문 빨래터에는
120 시지프스의 돌멩이
121 바다라는 사내놈들
122 광명역으로 가는 KTX에 비는 내리고
124 다홍빛 중년
126 토큰 여덟 개
128 소래포구
저자소개
책속에서
6차선 도로
출근길이면 산탄散彈처럼
쏟아져 나오는 6차선 도로
검은 등 흰 배 고양이가
도로에 검붉은 내장을 토했다
단말마斷末魔
아직 놓지 못한 발끝 파르르 떨린다
퇴근길 달리는 6차선 도로
진회색 비둘기 몸통 으깨져
쥐포처럼 빨간 피로 뭉개져 있다
먹이를 찾아 도로에 나섰을까
떠나간 짝을 찾아 잠시
6차선 도로에 날아 앉았을까
문명의 톱날바퀴 밑에
깔린
거대한 한 마리 하늘님
찰나
-여수에서
동강난 바다
바다의 하얀 젖무덤을 더듬고 지나가던 물떼새들
바다의 음파가 질퍽질퍽 절벽을 때려대듯
그믐밤을 비껴가던 괭이갈매기 날개가
잽싸게 여자의 엉덩이를 핥고 갔다
금오산 산고양이가 두 토막 나던 날,
스님은 신발을 머리에 이고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은행잎의 날을 지나
툭
떨어졌던 2월의 동백
바다의 하얀 머리칼에 내리던 빗방울 신발은
오동도 흙바닥에 으깨졌던
동백 모가지를 송두리째
여수 하늘로 올려갔다
* 오경웅 지음, 류시화 옮김 『선의 황금 시대』에서 조주 스님의 행동
돌담을 넘어오는 달랑게
구겨진 갈햇살이 운현궁 툇마루를 쪼고 있다
가슴이 이랑처럼 패인 여자의 가슴팍에
쏟아지는 햇살은 갯벌 달랑게 걸음이다
해바라기가 졸다 간 햇살바라기,
퇴락한 왕조의 으깨진 갈색 노을빛에
꾸벅이는 행랑채
운현궁 마당에
찰칵대는 외국인들의 셔터소리
막아도 막아도 넘쳐나는 논두렁처럼
집주인은 햇빛 잘 드는 방에서
한 낮잠 잘 주무시고 계신 걸까
주인 없는 툇마루에 걸린 놀
돌담을 넘어오는 갈잎
시법詩法
1
신륵사 그림자가 사는 남한강
언 강물 뼈를 깨물다가
겨울새 한 마리
날아올랐다
서울 하늘 아래서
봄가을 오갔다, 동안
깨진 사금파리처럼
소녀의 허기진 사랑, 시법
신륵神勒 물그림자를
서울 하늘에 올려 심는 일이었다
2
소녀의 집은 신륵사 산문神勒寺 山門
분청사기터였다
도공 아버지는 흙짐 불 지고 두 손 모으며
물빛 찰진 분청사기 구웠지만
항상 등이 추웠다
시월 몇 닢 목련나무 아래
어머니는 여윈 뺨으로 서 있었다
불짐 지고 등이 추운 아버지와
지아비 붉은 등 바라보는 지어미의 여윈 가슴
가서 닿지 못하는 거리를 보다가
달밤이면 소녀는 남한강 물 숲에서
신륵사 그림자를 건져 올렸다
베옷 아버지 아침은 분청사기 깨뜨림부터였다
가끔 덜 식은 분청사기 밑바닥은
불의 혀처럼 뜨거웠다
깨어진 분청 사금파리에 소녀는 남한강 물을 담다가
손을 벨 때도 있었다
소녀의 빨간 피가 강물에 풀리고
하얀 꽁지 물새가 날았다
소녀는 구름이 신륵사 그림자 숨기던 날
길을 떠났다
예안리* 무덤
-김해국립박물관에서
바람의 꼬리에도 할 말은 남아 있다
보낸 메시지의 응답 없는 빈 우체통에 들이치는
겨울바람
바닷가 마을 김해 예안리 무덤엔 큐수에서 헤엄쳐 온
투박조개 팔찌만 남았다
낙동강 구릉에서 불던, 쓰러진 갈대숲
가야의 벌판을 달리던 눈동자, 말발굽도 멎었다
다호리 다락집에서 가야를 갈무리했던
아라가야의 혼들은 흰 사슴뿔로 하늘을 이었다
하늘 뿌리가 솟듯 나뭇가지 꺾어 금관에 꽂았던 너는
흙과 하늘 마당을 잇듯이 갈참나무를 심고
사슴을 풀어 별을 따 모았다
사슴을 타고 사슴을 먹고 사슴뿔을 갈아
낙동강 물고기를 잡던 이들이여
항아리에 담긴 간절한 염원은 염도 하지 않은 채
적갈색 녹이 슬었지만
읽지 않은 메시지가 허공을 채우듯
휘리릭 휘익 별무리 언덕이 가야를 전했다
가야, 가야, 가야 하리, 가야 하리
너에게 가야 하리
가야 벌판을 질러 사슴을 타고 검은 저승불이라도 건너
낙동의 침묵을 건너
너에게 가야 하리
* 예안리 :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에 있는 마을. 옛 가야국의 고분이 많이 남아 있음
도쿄 일기
1
도쿄의 아침 전봇대에 콩알참새는 미로迷路다
원수의 앞모습처럼 그어대는 빗살에 내 발도 젖는다
나의 회색빛 쓸쓸함을 히비야공원 벤치에 기대고
저만치 안경도 없는 안경 다리, 니쥬바시 해자 위로
은초록 청초록 물화살 꽂힌다
돌의 무게 돌의 힘 돌의 자랑들이 쌓아놓은
황거 담벼락엔 고즈넉한 돌이끼가 풍경을 더한다
돌에도 권력이 있다
쪼갠 적 없는 돌덩이의 성대함으로 돌들은
자랑을 쌓는다
빗살이 뚫지 못하는 황거皇居의 단단한 소나무
도쿄의 비는 외롭다 보슬비도 장엄한 심포니처럼
바깥을 차단하고
히비야공원에 연분홍, 하얀 벚꽃이 하늘 구름처럼
하늘을 덮었다
한국에서 편지가 왔다
비에 젖은 피분홍 진달래 꽃잎 편지
2
도쿄역 돔천정 7각 기둥에는 하얀 비둘기가 천정을
뚫고 날아갈 것 같다
목련빛 비둘기를 쫓아 하늘을 날아
도쿄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장 일본다운 시골역에
내리고 싶다
거기에도 콩알참새가 우리집 고양이 쿵이처럼
나를 반겨줄 것이다
비에 젖은 시골역에서 내집 고양이
러시안블루를 그리워하며
단무지 하나 주지 않는 우동을 먹으며
일본을 기억할 것이다
3
도쿄 갓바바시 거리에서 유년의 내음을 주워 담았다
감 뚜껑 작은 종지를 바구니에 개켜 넣으며,
소꿉장난했던 일곱 살 꼬맹이를 기억에서 꺼내어
쓰다듬어주고 싶다
다 쓴 엄마의 화장품 통을 얻은 날,
하늘처럼 팔딱팔딱 뛰었던 삐쩍 마른 꼬맹이
그녀가 한 국자 떠서 클릭하고 싶은 어린 날의 영화 화면엔
비에 젖은 신문지를 깔고 풀 뜯어 소꿉놀이하던
꼬맹이가 앉아 있다
깨진 항아리 조각을 주워 그릇을 삼았던 내 유년의 파편
웅크리고 앉아 공기돌 놀이를 하던 그 계집아이도
그녀를 안다고 했다
갓바바시 도쿄 거리에서 작은 종지들을 오십이 넘은
꼬맹이에게 선물하고 싶다
웅크렸던 단발머리 계집애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