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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59137824
· 쪽수 : 187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007
책방 주인 012
에필로그 186
리뷰
책속에서
당신이 사는 나라와 도시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 여느 책방과 다를 것 없는 한 책방에서 책방 주인이 두 눈을 떴다. 방금 책방 문이 ‘ 뿌득뿌득뿌득 ’ 하면서 열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는 책상을 조금 정리한 다음 기다렸다.
책방 주인은, 책방에 들어오는 손님들이 제일 먼저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책상을 모퉁이에 놓인 서가 두 개 뒤에 감춰두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찾는 건 책이지 책방 주인이 아니었다.
책방 주인은 손님들이 책의 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책의 파도 앞에서 지켜보는 눈 없이 덩그러니 혼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게 좋았다.
주인 없이 책들만 남아 있는 장면을 상상하는 게 좋았다.
책방 주인은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좋아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책방 주인은 키가 꽤 크고 덩치도 꽤 좋았는데, 머리 모양을 제외하고는 외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걸 지루해했다.
그는 무난한 구두를 신고 역시 무난한 바지와 셔츠, 재킷을 입었다. 책상 옆 옷걸이에 모자 하나를 걸어두고 가끔 쓰기도 했다.
책방 주인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가 책을 닮았다는 사실이었다. 겉모습은 마치 딱딱한 하드커버 책 표지 같았고, 속은 인생의 사소하거나 큰일들이 적힌 페이지로 빽빽이 들어차 있는 것 같았다. 이미 쓰인 페이지가 얼마나 있고 앞으로 얼마나 더 쓰일지 가늠할 수 없었다. 책방 주인 자신도 전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책방 주인과 책의 또 다른 닮은 점은 얼굴에 모든 감정이 드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감정을 숨기는 데 젬병이었고 아예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책방 주인은 책방을 결코 떠나지 않았고 책들은 그를 동료로 여겼다.
책방 주인의 책방은 밤낮으로, 1년 365일, 일주일 내내, 24시간 동안, 쉼 없이 열려 있었다.
책방 주인은 문 앞에 아예 ‘열려 있음’이라는 문구를 페인트로 지워지지 않게 적어놓았다.
그는 책방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방 주인은, 필사적으로 책을 찾아다니다가 자신의 책방까지 오게 된 손님이 닫혀 있는 책방 앞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울적해졌고 왠지 모를 책임감마저 느꼈다.
그건 책방 주인의 여러 가지 독특한 성격 중 하나였다.
그래서 그는 책방 주인이 되었다.
형제와 누이들은 책방 주인이 사는 도시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살다가 가끔 책방 주인이 보내오는, 여러 책에서 뜯어낸 페이지를 우편으로 받았다.
아무런 설명 없이. 형제와 누이들이 받는 페이지는 그들의 어떤 일을 하는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각각 달랐다.
그들은 모두 그것을 읽었다.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읽었다.
책방 주인도 그들이 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책을 읽다가 형제나 누이 중 누구라도 봤으면 하는 페이지가 있으면 주저 없이 뜯어서 당사자에게 보냈다.
아무런 설명 없이.
그런 다음 페이지를 뜯어낸 책을 가지고 달팽이 계단을 올라가 서가 없이 책만 쌓아둔 방에 두었다.
형제와 누이들이 아이를 낳기 시작하자 책방 주인은 조카들 몫까지 챙겼다. 그즈음 책방 위층에는 페이지가 뜯긴 책들이 산처럼 쌓이게 되었다. 책방 주인은 이따금 생각했다. 자신이 죽으면 형제와 누이들, 그리고 조카들이 세상 어느 한구석에 모여 울고 웃으며 축하해주면 좋겠다고. 그때 그들이 받았던 페이지들을 모두모아 책방 주인의 책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