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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가
· ISBN : 9788960530034
· 쪽수 : 124쪽
책 소개
목차
불안한 청년기(1853~1880)
뒤바뀐 탄생
첫 시련
학교에서 탄광촌으로
네덜란드 시기(1881~1885)
화가의 길
하층민의 편에서
부도덕한 관계
파리의 전환기(1886~1888)
예술의 심장부에서
힘겨운 공동생활
일본의 발견
프로방스의 하늘 아래(1888~1889)
빛의 발견
잠시 동안의 평온
고갱의 증언
광기(1889)
실존적 불안
마지막 시기(1889~1890)
생레미 요양원
가셰 박사와 함께 오베르로
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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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리뷰
책속에서
"난 화가들이 혼자 사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고립되어 있으면, 늘 패배하게 마련이지"라고 6월 초에 빈센트는 테오에게 썼다. 그는 다음 달에 다시 이 문제를 고민한다. "이번 겨우내 내 정신을 잘 가다듬고 싶다. 이 무렵 우리는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아를에 체류하는 동안, 반 고흐는 형제처럼 함께 생활하고 작업할 예술가 공동체에 관한 생각을 집요하게 키워나갔다. 그는 이 주제를 고갱이나 베르나르에게 쓴 편지에서 자주 언급했다.
빈센트는 어떤 명확한 본보기를 따르기보다는 중세적인 공동체를 생각했다. ... 빈센트는 분명 퐁타방파를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퐁타방은 1886년 이래 예술가들이 고갱과 베르나르를 중심으로 모였던 브르타뉴 지방의 한 마을이다. 이밖에 빈센트가 지녔던 일본풍에 대한 찬미도 일본적인 예술가 공동체를 꿈꾸게 했을 것이다. 반 고후는 고갱을 남프랑스 작업실의 우두머리로 삼고자 했다. 그는 공동체에서의 역할에 따라 이름을 지었고, 고갱을 "사제원장"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1888년 9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알 수 있듯, 이 공동체의 경제적, 상업적 문제는 테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아이디어는 오랜 생각 끝에 나온 것이고, 이 작업실은 후배 작가들에게 전수될 수 있을 것이다. 네게 정확히 설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다시 말해 이것은 우리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계속될 에술적, 사업적 단체가 될 것이다. 남프랑스의 관문에 이러한 작업실 겸 피난처를 만든다면, 그리 어리석은 일은 아닐 게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파리에서 너무 멀다는 등의 얘길 한다면 할 수 없다. 그들만 손해지." 그러나 불행히 남프랑스의 작업실은 고갱과 반 고흐 간의 분열과 빈센트의 광기로 인해 실패로 끝난다. - 본문 74쪽, '남프랑스의 작업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