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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1042734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0-10-27
책 소개
목차
제1부
사과의 다양성 ————— 10
분수 ————— 12
여름의 끝에서 ————— 14
접선 ————— 15
공과금 ————— 16
저녁의 자세 ————— 18
몸살 ————— 20
불기소처분 ————— 22
오래된 골목 ————— 24
밤의 도감 ————— 26
창문 닫힌 방 ————— 28
팬지꽃을 보다가 ————— 30
디저트 ————— 32
그네를 타다가 ————— 34
냄비 받침 ————— 36
제2부
미안의 계절 ————— 40
눈이 삐었냐고? ————— 42
겨울 소묘 ————— 44
곁눈질 ————— 46
헬리콥터 ————— 48
라일락꽃 필 무렵 ————— 50
앤슈리엄 ————— 52
5cm에 관하여 ————— 54
어디야? ————— 56
진눈깨비 ————— 58
그 해, 여름은 ————— 60
그 언니의 생활 ————— 61
도깨비바늘 ————— 62
제3부
보고 싶었다는 말은 아니고 ————— 66
와락 ————— 67
불임 ————— 68
삼계동 1151-3번지 ————— 70
마당 넓은 집 ————— 72
생일선물 ————— 74
울화 ————— 76
주전자 ————— 78
울면 ————— 80
삼계동 시편 ————— 81
제4부
굳이 ————— 84
배냇저고리의 힘 ————— 86
하루살이 ————— 88
장마의 걸음마 ————— 90
하이에나 ————— 92
혹 ————— 94
어떤 날 ————— 96
배웅 ————— 98
붕어빵 시편 ————— 100
데면데면 ————— 102
눈에 밟힌다는 말 ————— 104
오늘은 맑음 ————— 105
땡볕 ————— 106
▨ 장정희의 시세계 | 박성현 ————— 108
저자소개
책속에서
눈에 밟힌다는 말
차창 밖, 눈 비비고 있는
보릿대에 기대어
당신의 안부를 묻고 싶은 오후
잠시 버스가 정차한 길가, 강아지 두 마리 어떤 허물도 다 받아줄 수 있다는 듯 익숙한 체온에 기대 졸음을 즐기고 있다. 저 다정함 속엔 방치란 없어, 굳이 말 안 해도 알아듣는 뜨거운 자세.
편하다는 것은 익숙해졌다는 것일까, 서로에게 물들어 가고 있다는 것일까, 언 땅을 품고도 뻗어 오르는 푸른 기세. 들판의 보릿대나 길가의 강아지나 보이지 않는 곳의 상처까지 오롯이 보듬는 강건한 기개가 꼭 당신 같다는 생각.
눈에 밟힌다는 말
자근자근 밟을수록 일어서는 보릿대처럼
눈을 질끈 감으면 감을수록
유독, 마음을 들끓게 하는 격정의 말
접선
누군가 은밀히 목련꽃을 건드리고 있다. 경직된 몸을 푸는 꽃들처럼 조여 있던 일생 풀어헤치고 싶었던 걸까. 꽃송이를 한 남자의 편지로 읽은 나는 우체통이 되기로 자처했다. 도처에 칭얼대는 잔가지를 다 품고 살았는지 미간에 골이 깊은 남자. 그러고 보니 저 남자나 나나 마음은 연필인데 몸은 지우개처럼 물컹해질 나이, 한때 흑심을 품었던 계절은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어디로도 부칠 수 없는 편지를 물고 울기 좋은 방을 찾아다니며 도둑고양이처럼 눈치만 는 건 아닌지, 한 시절 저울질에 이제야 우표를 찾는 손. 소풍을 나온 자들을 위해 시간은 잠시 밀봉해도 좋겠다. 목련꽃 빛 순수를 카메라에 담는 절정의 순간에 와락, 청춘이 다 빠져나온 출구에서도 봄날과 접선을 꾀하려는 저 중년의 남자, 메마른 심경에 다시 한번 환한 등불 들어 앉히고 싶은 것이다.
진눈깨비
슬픔은 사선의 무늬를 가졌다는 걸 아시는지요
울어보지도 못한 채 하수구로 유기되고 말죠
말문을 닫아야 하는 오늘이 딱 그런 날이네요
누구든 좋아요, 창을 열고 내 이야기 좀 들어주지 않을래요?
함부로 짓밟진 마요 제발, 나도 품위란 게 있거든요
당신이 우산을 펴야 할지 고민하고 있으니 눈치만 볼 밖에요
고개 빳빳이 치켜든 사철나무를 볼 때면 나는 우울해져요
노란 귤이 내 앞으로 굴러오는데 손발이 다 녹아버려 잡을 수가 없어요
그러고 보니 제대로 무릎 한번 펴본 적 없네요
참 쓸모없는 것이라며 고양이가 중얼중얼 욕을 하며 지나가네요
나도 세상에 경쾌한 종소리 한번 퍼뜨려보고 싶네요
저 먹구름을 잠시만 붙들어 매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