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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예체능계열 > 체육
· ISBN : 9788963621630
· 쪽수 : 229쪽
· 출판일 : 2013-03-11
책 소개
목차
추천사
옮긴이의 말
프롤로그: 약탈자 칼렌진
제1장 유전자 수집과 과학자들의 야망
제2장 운동생리학자의 갈등
제3장 과학과 스포츠
제4장 캠프라는 독특한 구조
제5장 그들이 달리는 이유
제6장 경쟁심으로 가득 찬 멘탈리티
에필로그: 수수께끼의 행방
책속에서
프롤로그(일부)
칼렌진 족은 유목민이다. 먼 옛날에는 다른 부족의 가축을 약탈하는 전통이 있었다. 유명한 마사이(Masai) 족도 가축을 훔치는 풍습이 있으나, 마사이 족은 인해전술로 다른 부족의 마을을 위협해서 사기를 꺾고 나서 당당하게 훔쳤다.
칼렌진 족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가축을 훔쳤다. 정찰대를 먼저 보내 약탈하기 쉬운 마을을 고른다.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150㎞ 넘게 떨어진 마을을 고르기도 했다. 실행대원으로 뽑힌 장정 20명쯤은 다시 더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 합동작업을 펼치며 주로 한밤중에 움직인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소리 없이 약탈한 다음 주인들이 눈치 채기 전에 추적 불가능한 곳까지 줄행랑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약탈의 주역은 먼 거리를 재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남자들이다. 신속하게 도망치지 못하면 가축 주인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무사히 가축을 훔쳐오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약탈 성공을 기뻐한다. 마을 사람들은 약탈부대의 지도자와 큰 공적을 세운 대원의 활약을 노래로 기렸으며, 대원들에게는 훔쳐온 가축을 먼저 선택할 권리를 주었다. 약탈 작전에서 여러 번 공적을 남긴 대원은 다음 작전 때도 참가할 수 있고, 몇 번이고 살아 돌아온 남자는 점점 더 많은 가축을 차지하게 되었다.
유목민에게 가축은 화폐 구실도 한다. 칼렌진 족은 결혼할 때 남자가 신부 측에 사례로 가축을 보내는 풍습이 있다. 가축을 많이 소유한 남자는 사례금을 여러 번 지불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몇 번이고 결혼할 수 있다. 강한 남자는 아내를 여럿 얻게 되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자식을 낳게 된다.
20세기 초 케냐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칼렌진 족은 영국군에 맞서 최후까지 저항했으나 영국의 군사력에 밀려 굴복한다. 케냐에 주둔한 영국군은 가축 약탈을 금지했다. 그러나 일부 칼렌진 마을들은 약탈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약탈은 살기 위한 수단이자 전통이자 사나이로서 힘을 겨루는 일종의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식민지 당국은 경찰력으로 약탈을 단속하는 한편, 용맹함과 힘을 겨루는 대안으로 영국식 스포츠를 장려하는데 그중 하나가 육상경기였다. 최후까지 영국의 식민지 정책에 저항했던 칼렌진 족은 뛰어난 전투 능력을 인정받아 군인으로 선발되는데, 군에 있는 동안 육상경기를 배우게 된다. 이러한 사실이 칼렌진 족이 장거리 선수에 적합한 유전자를 타고 태어난다는 설을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칼렌진 족의 어떤 부분이 육상 선수로서 자질을 지녔을까. 이러한 수수께끼를 다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고 칼렌진 족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런던에 있는〈아사히신문〉유럽총국에서 스포츠기차로 근무했던 2006년 12월, 〈러너스 월드Runner’s World〉영국 판에 눈길이 멈췄다. 전에 보았던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 기사에 등장하는 글래스고 대학의 야니스 핏실라디스 박사(Dr. Yannis P. Pitsiladis)에게 취재를 요청했다. 현지조사의 체험담과 그의 가설을 듣고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번 취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문헌을 읽었다. 이 수수께끼를 풀려는 시도를 했던 최초의 과학자 벵트 살틴(Bengt Saltin: 1935∼ , 스웨덴) 교수를 찾아가기도 했다. 살틴 교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훈장을 받은 운동생리학의 권위자다. 살틴 교수는 70세가 넘었는데도 수수께끼를 풀려는 의욕이 넘쳤다.
살틴의 제자인 헨릭 라슨(Henrick Larrson)은 교수의 연구를 이어받아 나이로비에 새 연구소 설립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핏실라디스 박사의 소개로 케냐에 있는 트레이닝캠프에서 두 달 동안 지내며 연구한 적이 있는 미국인 연구자 앤디 존슨(Andy Johnson)도 알게 되었는데, 그녀가 케냐 취재의 길잡이를 마련해주었다.
앤디가 소개해준 에릭 키마이요(Erick Kimaiyo) 코치의 남동생이 바로 필자를 여기까지 안내한 존이다. ‘뷰포인트’는 에릭이 운영하는 캠프로 가는 도중에 잠깐 들렀다. 존이 드넓은 경치를 내려다보며 설명을 계속했다.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의 반대쪽 절벽에 펼쳐진 산중에 당시 마라톤 세계기록보유자 폴 터갓(Paul Tergat)의 출신지가 있다. 왼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계곡을 지나 더 멀리 시선을 옮기면 유달리 높은 산들이 보인다. 그곳에 목적지인 카프사이트(Kapsait) 마을이 있다. 그 뒤쪽의 이텐(Iten) 마을에서도 수많은 올림픽 선수가 육성되고 있다.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를 따라 국경을 넘어 에티오피아에 들어서면 세계적인 장거리 선수가 배출되기로 유명한 아르시 지역(Arsi Zone)이 있다.
머릿속 가득 채워온 지식이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겹친다. ‘먼 곳까지 빨리 달리기’라는 원초적인 능력이 뛰어난 부족들이 이 계곡 근처에 많은 것이 정말 우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