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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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永壽, 호 : 월주(月洲), 난계(蘭溪).
경남 울주 출생. 8·15광복 후에 귀국, 경남여고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시와 소설을 <백민>과 <신천지>에 발표하기 시작했다. 1950년 서울신문에 단편 「머루」입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갯마을』『메아리』등 잇달아 창작집을 간행했다.
어린이의 순진무구한 세계를 그린 『남이와 엿장수』, 『머루』(1950), 『대장간 두칠이』 등의 작품과 인정세태를 따스하게 그리면서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화산댁이』(1952), 『박학도』(1955), 『여우』(1957), 『후조(候鳥)』(1958)등이 있다. 이러한 소설에서 그는 도시의 혼탁한 세태를 추한 것으로 보고 그것을 헹구어낼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때묻지 않은 인간의 아름다운 정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또한 자연 혹은 고향에 대한 회귀의식을 나타내고 있는 『갯마을』(1953), 『메아리』(1959), 『은냇골 이야기』(1961), 『수련』(1961), 『추풍령』(1967), 『망향수(望鄕愁)』(1972) 등의 작품이 있다.
주로 서민들의 소박한 삶을 그린 단편소설을 발표한 그는 1954년 조연현과 현대문학을 창간하기도 하였고,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위원장을 역임했으며, 1979년 간염으로 작고하였다. 한국문학가협회상, 아세아자유문화상, 대한민국 예술원상과 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1993년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울산매일신문사에서 오영수 문학상을 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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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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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전남 나주군 영산면 이창리에서 태어났다. 영산포 남소학교를 졸업하고 영산포 서소학교의 급사로 근무하다, 채신원 양성소를 수료하고 오랜 기간 우체국에서 근무했다.
1947년 시내 서점에서 우연히 노자영의 《인생 안내》를 읽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탐독하고 문장 교본으로 삼는다. 1949년 《문예》 지에 단편 〈역풍〉을 투고해 심사 후기에 언급된다. 1951년 해병대 통신병으로 근무하던 중 김동리 선생을 찾아가 사사를 의뢰하고 작품 지도를 받는 한편 《우리말큰사전》을 통째로 필사하는 등 열정적으로 문학 공부에 매진한다. 1953년 황순원 선생으로 작품 사사를 옮긴 후, 1955년 《현대문학》에 황순원 선생 추천으로 〈두 나그네〉, 〈참외〉가 발표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면서 40여 년의 작품 활동 기간 동안 250여 편의 작품(장편 8편, 중편 10편, 단편 230편)을 발표해 다산성의 작가로 인정받는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소문〉, 〈젊은 홀어미들〉, 〈황량한 촌락〉, 〈달밤의 총성〉, 〈돌방구네〉, 〈월광〉, 〈이역의 산장〉, 〈어떤 노인의 죽음〉, 〈가난한 형제〉, 〈농지 정리〉, 〈농민과 시민〉, 〈농지 상한선〉, 〈쑥골의 신화〉, 《방앗골 혁명》, 《송잇골의 젊은이들》 등이 있다.
1957년 전라남도 제3회 도문화상, 1961년 제6회 현대문학상, 1971년 제3회 한국창작문학상, 1978년 흙의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81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생활을 하는 중에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99년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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