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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6272105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1-11-27
책 소개
목차
제1부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단 한 가지의 사랑/흘러가는 가슴/꽃 같은/홍이에게/비의 노래/겨울 편지/봄날/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만추/숨은 꽃 -떠남에 대하여/꿈길/사월/그 여자/찔레꽃
제2부 강물은 다시 흐른다
엄마 손/한식寒食/역전 평화상회/5월에/그들만의 꽃/전라도 여자/희망이란 이름의 담배/코로나 기일/걸레의 꿈/겨울 학하동/강물은 다시 흐른다/웃는 돌/삶/화양연화花樣年華/손톱을 깍으며/싸파의 봄/반곡리 이장
제3부 반곡에 오면
시를 잊었습니다/길의 노래/대평리에서 -유미에게/논두렁 물/반곡리에 오면/진호에게/눈물에 대하여/꽃 피는 하늘 -혜랑에게/여름 연가/연산역 바람개비/달의 소리/참회/12월/겨울 눈/학가산/강원도의 힘/풍장風葬
제4부 영혼 속의 영혼
부질없는 그대에게/서시序詩/왕의 가을/내 길의 씨앗 -슬픔에게/섬/사랑한다면/오늘 하루/지금 여기/바람의 넋/오월의 비/길 속의 길 -광비에게/왼손의 노래/영혼 속의 영혼/현해탄/산행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
그 품에 안기면 한없이 부서져
저를 다 내주고도 흐르고 흐르는
물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보고 싶었어
하나도 남지 않아도
가슴 끝까지 다 타버려도
지금 여기만 바라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것에나 닿아도 꽃이 피는 사람
꽃 같은, 사랑 같은 사람.
―「꽃 같은」 전문
있는 듯 없는 듯 삽니다
밤새 얼었다 녹았다
혼자 하늘 향해 두 눈 치켜뜬 산속 황태처럼
꿋꿋이 겨울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당신 계신 곳까지 못 갈 것 같습니다
사랑한다는 말도 이제 하지 않으렵니다
마음가지에 꽃 피면 어디라도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뿐인 세상에 마음 하나 지키기 어려워
겨울 아침 소소한 청수 한잔 올립니다
당신 있는 하늘처럼 저 맑은 물이 당신인 듯합니다
그 위에 물처럼 흘러갈 이름 석 자를 써보았습니다
그립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밤새 불었다 쉬었다 가는 바람인 듯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있습니다.
―「겨울 편지」 전문
역전시장 평화상회를 그만두던 날
엄마는 낡은 상처투성이 마늘 바가지부터 챙겼다
그녀만큼이나 나이 들고 야윈 바가지를 짐 보따리에 넣으며
사월 끝인데도 자꾸 코끝이 시리고 눈이 매웠다
이따금 역전 대합실에 가면 그렇게 눈이 아파왔다
아무렇지 않게 가버린 한 여자와 혼자 돌아온 사내가 거기 서 있었고
그 스물의 봄날 이후 나는 예외처럼 살았다
예외였기에 자유로웠고
때 낀 달력에는 여전히 주저앉아 있는 빨간 미수금들
2016년 4월 8일 은행동 노점 아줌마 고구마 4박스 배달
파장사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간 천변 슬레이트 집
홍등 아래서 아줌마는 울고 있었다
떡잎만 한 아이들을 두고 간 아저씨한테 재배를 드리고
벚꽃이 눈처럼 떨어지는 천변에 앉아 담배를 태웠다
역전시장 평화상회 바가지를 씻다 보면
그 깊은 곳에서 너무 많은 길들이 만나고 헤어지며 또 만나는
삶이 보이고
아무렇지 않게 떠나고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와야 하는 역전시장
사랑은 예외가 없다고 길이 말했다.
―「역전 평화상회」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