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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6551002
· 쪽수 : 156쪽
책 소개
목차
서문 | 수주문학상 20주년을 맞이하여 홍기돈(수주문학제 운위원장) 5
1부 제20회 수주문학상 수상작
빨랫줄 저편 14
따뜻한 책을 펼칠 때 16
한 문장이 끝났다 17
이글루 18
수평선의 사람들 20
수상 소감
올곧은 정신을 마음에 새기며―장정욱 22
심사평
개성적인 감각이 돋보여―조은 24
절실한 상처의 기록―이영광 26
2부 기수상작
제11회
이사랑 바늘 끝에서 피는 꽃 30
강영숙 무화과나무4 32
강정숙 미라 33
금미자 달에 관한 기억 34
심사평―최문자, 정일근 36
제12회
송의철 노을 격포 38
김대호 하늘에 별 총총 40
윤근 삐비꽃 41
이명예 난 헌옷이다 43
심사평―정현종, 송찬호 44
제13회
홍순영 우산을 새라고 불러보는 정류장의 오후 48
류 흔 모란牧丹 50
금명희 책들의 거처 54
이예미 앵두나무 밑에서 잠을 깬 개가 55
심사평?문정희, 이숭원 58
제14회
정용화 거울 속 거미줄 60
심사평―오세영, 나태주 62
제15회
심강우 서술의 방식 64
심사평―천양희, 김명인 66
제16회
이병일 기린의 목은 갈데없이 68
심사평―고형렬, 장석주 70
제17회
박형권 쓸쓸함의 비결 72
심사평―최문자, 김기택 74
제18회
하수현 쇠정어리고래 76
심사평―이승하, 송찬호 78
제19회
장유정 누에 80
심사평―문효치, 문태준 82
3부 기수상자 자선시
문성해
Y의 이불 86
무릎담요 88
손택수
패배하는 나무들 90
파미르고원 91
임동윤
저녁의 기원 92
문밖·2 93
김주관
궁금한 언덕 96
공중전화 97
임경묵
우산 수리 전문가 100
하모니카를 불어주세요 102
최은묵
화이트데이 106
라면찌개김치사리 108
이사랑
붉은머리오목눈이 110
어둠 속에 개켜둔 문장을 거풍하며?킬리만자로 112
송과니
검정 비닐봉지와 밤비 114
가리사니 115
홍순영
문 120
파과破果 122
심강우
적소단장謫所短章?골방에서 124
통의 사랑 126
이병일
신보트피플 128
산양의 밤 129
박형권
변기통을 높이 모셔두고 130
가스토피아 132
하수현
붉은 사슴들이 숲의 심장으로 뛰어들고─환상의 숲 134
연립 국방부 136
장유정
그가 돌아왔다 138
목독木牘 140
평론 | 변영로, 민족정신과 근대적 감각의 시인―오세인(문학평론가) 142
저자소개
책속에서
질긴 죄목이었다
젖은 아이를 안고
무지개가 이어진 계단을 올랐다
아이의 입이 지워졌다
울음을 모르는 입에서
뚝뚝
이승의 끝과 끝이
파르르 떨렸다
환청의 기저귀를 채우고
빈 젖을 물리고
젖지 않는 오줌
아물지 않는 배꼽
무지개가 늘어지지 않도록
바지랑대를 세워
높이
아이를 널었다
―장정욱, 「빨랫줄 저편」 전문(제20회 수상작)
덕천마을 재개발 지역
반쯤 해체된 빈집 시멘트 벽에 걸린
깨진 거울 속으로 하늘이 세 들어 있다
무너지려는 집을 얼마나 힘껏 모아 쥐고 있었으면
거울 가득 저렇게 무수한 실금으로 짜인
거미줄을 만들어 놓았을까
구름은 가던 길을 잃고 잠시 걸려들고
새들은 허공을 물고 날아든다
거미줄에 무심히 걸려 있는 지붕 위
주인도 없이 해가 슬어놓은 고요를
나른한 오후가 갉아먹는다
간절함은 때로 균열을 만든다
한때 두 손 가득 무너지는 인연 하나
잔뜩 움켜쥐고 있었던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가느다란 손금이 조금씩 깊어졌다
심경, 마음을 들여다볼 때 마주치는 거울 속으로
손금이 흘러들어 무수한 실금을 남겼다
균열은 어떤 부재를 품고 갈라진 틈 속마다
허기진 풍경을 흘려 넣는 것인가
무너짐이야말로 더 큰 열림이기에
거울 속 거미줄은 어떤 것도 붙잡아두지 않는다
나를 흘리고 온 날
서까래 같은 갈비뼈 사이로 종일 바람이 들이쳤다
그러고 보면 깨진 거울은 무너지는 것을
움켜쥐고 있던 집의 마음이었음을
―박용화, 「거울 속 거미줄」 전문(제14회 수상작)
어제 잠깐 동네를 걷다가
쓸쓸한 노인이
아무 뜻 없이 봉창 문을 여는 걸 보았다
그 옆을 지나가는 내 발자국 소리를 사그락사그락
눈 내리는 소리로 들은 것 같았다
문이 열리는 순간
문밖과 문안의 적요寂寥가 소문처럼 만났다
적요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탱탱하여서 느슨할 뿐
안과 밖의 소문은 노인과 내가 귀에 익어서 조금 알지만 그 사이에 놓인 경계는
너무나 광대하여
그저 문풍지 한 장의 두께라고 할밖에
문고리에 잠깐 머물던 짧은 소란함으로
밤은 밤새 눈을 뿌렸다
어제오늘 끊임없이 내리는 눈에 관하여
나직나직하게 설명하는 저 마을 끝 첫 집의 지붕
나는 이제 기침 소리조차 질서 있게 낼 만큼
마을 풍경 속의 한 획이 되었다
나도 쓸쓸한 노인처럼 아무 뜻 없이 문 여는 비결을
터득할 때가 되었다
실은 어제 밤새워 문고리가 달그락거렸다
문고리에 손 올리고 싶어서
나는 문을 열었다
―박형권, 「쓸쓸함의 비결」 전문(제17회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