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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사회과학계열 > 사회복지학
· ISBN : 9788968173448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16-03-25
책 소개
목차
·서문
여는글 한국사회의 문화풍경
문화풍경 하나: 사당동 더하기 22
문화풍경 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문화풍경 셋: 풍경
문화풍경 넷: 무산일기
문화풍경 다섯: 혹성탈출
제1장 문화사회학으로 본 다문화주의
국민국가의 형성과 사회적인 것의 영토화
이주의 지구화와 사회적인 것의 탈영토화
문화의 사용: 이데올로기, 전통, 상식
‘다문화주의의 사용’의 관점에서 구성한 연구 분석틀
제2장 서구 다문화주의 정책과 담론
에스닉 집단과 다문화주의 정책
에스닉 집단에 대한 다문화주의 담론: 정의와 자아실현
공공 영역에서의 다문화주의: 공적 프라이버시
제3장 정의: 이데올로기 차원의 다문화주의
윌 킴리카: 개인의 자율성과 전 사회적 문화
낸시 프레이저: 동등한 도덕적 가치와 동등한 참여
제4장 자아실현: 전통 차원의 다문화주의
찰스 테일러: 지평의 융합과 포용적인 상호작용 문화
악셀 호네트: 자아실현을 위한 인정투쟁
제5장 공적 프라이버시: 상식 차원의 다문화주의
린 로플랜드: 근대성과 공공 영역의 출현
어빙 고프만: 성스러운 게임과 공적 프라이버시
제6장 한국의 다문화주의
국민국가가 사용하는 다문화주의
국가의 탈영토화
시장의 탈영토화
공론장의 탈영토화
가족의 탈영토화
공동체의 탈영토화
공공장소의 탈영토화
닫는글 민주주의와 사회적 공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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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머리말]
다문화주의는 국민국가를 넘어 더 나은 삶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개념이다. 개념은 한순간을 다른 순간으로 연결시켜준다. ‘쉴 수 있는 집’이라는 개념이 숲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고립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들로 향하도록 만드는 것과 같다. 누구라도 이 개념을 잘 사용하여 길을 나서면 미로와 같은 숲에서 빠져나올 길이 열린다. 그런 점에서 개념은 누구에게나 가용한 공적 상징체계다.
다문화주의는 ‘원래’ 서구 자유민주주의 나라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원래 출처가 어디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갖다 쓰면 오롯이 내 것이 된다. 지금까지 한국국민은 국민국가 프레임 안에서만 작동하는 공적 상징체계를 사용해서 삶을 살아왔다. 국민국가의 불멸성! 현재 우리는 이러한 삶의 의미가 위기에 처한 것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공적 상징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다문화주의는 바로 우리가 사용해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구성해야 할 공적 상징체계다. 이를 사용하면 새로운 미래가 보인다. 이 미래에는 국민국가가 없는 게 아니다. 국민국가는 국민을 생존에 급급한 경제적 동물로 추락시킬 수도 있고 성스러운 자아를 지닌 인간으로 상승시킬 수도 있는 ‘제도’다. 분명, 악한 제도 아래에서 선한 삶을 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제도 그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문제는 선한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제도는 행위자들의 행위와 무관하게 스스로 작동하는 이해 불가능한 체계가 아니다. 행위자들이 공동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존해야 하는 유형화된 행위 방식이다. 행위자들의 삶은 제도 안에서 그리고 제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제도는 행위자들의 삶을 제약하기도 하지만 행위를 할 수 있는 역량을 부여하기도 한다. 따라서 행위자들이 함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더 나은 제도가 필요하다. 제도는 함께 더불어 사는 유형화된 행위 양식이기 때문이다.
유형화된 행위를 한다는 것은 의사소통한다는 것이다. 의사소통은 공적 상징체계를 사용해서 이루어진다. 사적 상징체계를 사용하면 고립된 신비의 영역으로 갇히는 것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어떤 공적 상징체계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사소통이 다르게 나타나며, 제도의 성격도 바뀐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표상하는 새로운 공적 상징체계를 도입해서 의사소통하고 새로운 제도를 구축해야 할 이유다. 다문화주의는 바로 그러한 공적 상징체계다.
다문화주의의 사용!
다문화주의가 참인지 아닌지는 실제로 사용하여 결과를 얻어야만 알 수 있다. 아무쪼록 많은 사람이 다문화주의를 사용하여 좁은 국민국가 프레임 안에 안주하지 말고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데 나서기를 희망한다. 사용하려면 우선 깊게 읽고 내면을 성찰하고 연단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각자 더 좋은 삶에 대한 독자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서로 주고받아야 하고 그런 뒤얽힌 이야기 덩굴을 타고 ‘우리 모두’ 더 나은 세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글의 짜임은 다음과 같다.
여는 글에서는 한국사회의 문화풍경 다섯 개로부터 이 책을 시작한다. 이 문화풍경에는 모두 한국국민과 다른 문화를 가졌다고 상상되는 이방인이 등장하여 한국국민에게 문제적 상황을 야기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공적 상징체계를 살펴보면 한국국민이 지금까지 당연시해왔던 일상생활의 실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제1장에서는 국민국가의 형성을 사회적인 것의 영토화로 개념화하고 이주의 지구화가 사회적인 것을 탈영토화시키고 있다는 테제를 제출한다. 이어 탈영토화된 공간에서 이주자와 한국국민이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탐구하기 위해 물화된 문화 개념을 의미화 실천으로 재개념화한다. 또한 문화의 사용 방식을 이데올로기, 전통, 상식이라는 세 분석적 차원으로 나누고, 이에 맞추어 다문화주의 연구틀을 구성한다.
제2장에서는 서구에서 전개된 다문화주의 정책과 담론에 대해 논의한다. 먼저 다문화주의 정책이 각 국민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에스닉 집단 유형(원주민, 준국민집단, 이민자집단)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는 점을 밝힌다. 다음으로 에스닉 집단을 대상으로 한 서구의 다문화주의 담론이 정의와 자아실현이라는 두 축을 통해 이루어져 왔음을 지성사적으로 추적한다. 이어 기존의 다문화주의 담론이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의 삶을 조망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님을 밝힌다.
제3장은 정의의 관점에서 다문화주의를 주창하는 대표적인 학자 윌 킴리카와 낸시 프레이저의 논의를 살펴본다. 킴리카와 프레이저가 제출한 다문화주의는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에서 사용될 수 있는 공적 상징체계다. 정치 영역에서는 평등, 경제 영역에서는 성취라는 공적 상징체계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사용하여 정의를 추구한다.
제4장은 자아실현의 관점에서 다문화주의를 제창한 찰스 테일러와 악셀 호네트의 논의를 살펴본다. 테일러와 호네트가 그려낸 다문화주의는 시민 영역과 친밀성 영역에서 사용될 수 있는 공적 상징체계다. 시민 영역에서는 탁월성, 친밀성 영역에서는 사랑이라는 공적 상징체계를 전통으로 사용하여 자아실현을 추구한다.
제5장은 공공장소의 대면적 질서를 탐구한 어빙 고프만의 논의를 공적 프라이버시라는 다문화주의 담론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공공 영역에서 사용될 수 있는 공적 상징체계다. 공공 영역에서는 예의 바른 무관심이라는 공적 상징체계를 상식으로 사용하여 공적 프라이버시를 추구한다.
제6장에서는 국민국가가 다문화주의를 사용하여 새로운 국민 만들기를 실행하는 모습을 살펴본다. 핵심은 이주의 지구화 시대 사회계층의 맨 밑바닥에서 더러운 일을 전담할 사회적 형식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국가의 기획이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사회적인 것이 탈영토화되고 있다는 관점으로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진행되어 온 다문화주의 담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맺음말에서는 국민국가 차원을 넘어선 민주주의의 성숙과 인간의 성스러움의 보편화를 위해서는 사회의 각 영역이 각자 자율성을 지닌 사회적 공연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연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시민 영역의 공적 상징체계를 활용하여 사회적 공연에 들어가야 함을 밝힌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해야겠다. 두 아이의 육아로 바쁜 가운데도 귀중한 틈을 내어 자신의 책처럼 세세하게 읽고 다듬어준 최인영에게 감사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나와 꼼꼼히 읽고 때론 도발적인 질문까지 던진 이예슬도 고맙다. 장부배는 색다른 시선으로 빠르게 읽어주었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김경자, 최종희, 백종숙은 고맙게도 학교에 나와 즐겁게 읽어주었다. 마지막에 힘을 보탠 김영은은 미처 깨닫지 못한 미세한 부분까지 잡아냈다. 말끔한 책으로 만들어준 이은하 편집자의 노고에 감사한다. 이 연구가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해준 한국연구재단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이 책은 내가 지난 7~8 년간 문화사회학의 관점에서 다문화주의에 관해 연구한 것을 이론적으로 풀어놓은 것이다. 나는 이론이 안내하는 경험적 연구로서 2013년 ??지구화의 이방인들: 섹슈얼리티·노동·탈영토화??를 냈다. 2015년에는 소수자 연구의 구체적인 방법론으로서 서사사회학을 소개한 ??베버와 바나나: 이야기가 있는 사회학??을 제자들과 함께 펴냈다. 이 책은 앞의 두 책과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두 책을 이론적으로 아우르는 완결판이다. 따로 읽어도 좋고, 함께 읽으면 이해가 잘 되니 더욱 좋다.
[본문 발췌]
여는 글 / 한국사회의 문화풍경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히 부는 천변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들어, 물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렵지는 않은 모양이다.”
1930년대 중반 청계천 주변의 풍경을 그려낸 박태원의 소설 ??천변 풍경??이 시작되는 첫 구절이다. 제목에 걸맞게 소설에는 빨래터, 한약국, 신전집, 하숙옥, 선술집, 객줏집, 포목전, 요릿집, 기생집, 권번, 은방, 반찬가게, 고물상, 이발소, 미용원, 세탁소, 자전거포, 백화점, 카페, 당구장, 극장, 여관, 양복점, 양화점, 양약국, 병원, 신문사, 담뱃가게, 전매국, 목욕탕, 유치원, 공장, 전차, 경성역, 예배당, 우편소, 경찰서 등 다종다양한 공간들이 나온다. 왜 여러 공간이 나오는가? 그건 전통적 공간이 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가 강점한 땅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일상을 살아가며 상호작용하고 그 과정에서 삶의 새로운 공간들이 분화된다. 물론 기존 공간도 살아남아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새로운 공간들이 분화되어 나오게 되면 기존 공간의 성격도 바뀌기 시작한다.
이 공간들은 단지 물리적 풍경인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청계천 주변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며 살아가는 인물들이 어림잡아 70여 명 등장한다. 먼저 이미 터 잡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서로 사는 내력에 대해 샅샅이 알고 있는 이웃이다. 한약국 집 안잠자기 귀돌 어멈, 민주사집 행랑에 얹혀사는 얽음뱅이 칠성 어멈, ‘감때 사나웁게 생긴’ 수다쟁이 점룡이 어머니, 남편 사별 후 홀로 이쁜이를 키워온 이쁜이 어머니, 기생집에 드난을 살고 있는 필원이네와 같은 빨래꾼은 물론 재력가로 밤마다 마작을 일삼는 사법서사 민주사와 관철동 작은 마누라 안성댁, 경성부회의원 매부를 둔 중절모의 신수 좋은 포목점 주인, 다리 밑 거지대장과 깍쟁이들, 한약국 집 주인 영감 내외와 동경 어느 사립대학 영문과를 나온 한약국 집 큰아들, 입만 열면 기생 얘기, 여급 얘기, 갈보 얘기를 한바탕 늘어놓는 것을 좋아하는 은방 주인, 행여 청계천이 덮여 돈벌이를 잃지 않을까 걱정하는 샘터 주인 김 첨지, 나막신을 팔다 새로 나온 싸구려 고무신에 밀려 낙향하는 서울 태생 신전집 주인, 신전집 행랑에 있다가 독립해 돈푼깨나 번 미장이 신 첨지 등이 그러하다.
새로 이주해와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게 주짜만 빼려 드는’ 젊은 이발사 김 서방과 유리창 너머 바깥구경에 권태를 느낄 틈이 없는 김 서방 조수 소년 재봉이, 여름에는 아이스크림 장사를 겨울에는 군밤 장사를 하는 점룡이, 서방 잘못 만난 탓에 시골에서 올라와 약국 행랑에 드난살이하는 만돌 어멈, 시골 가평에서 아버지 손에 이끌려 한성으로 올라와 한약국 사환이 된 창수, 15살 남편을 ‘호열자’로 잃고 금전꾼을 따라 천변으로 흘러든 금순이, 일본으로 밀항하려다 실패하고 서울로 온 금순이 친정아버지 용 서방과 아들 순동이, 부모형제는 물론 일가친척도 없고 가난하고 못생겼지만 협기 넘치는 카페 여급 기미꼬, 지방 순회 전문 극단을 따라다니다가 카페 여급이 된 메리, 광교 모퉁이 은방 2층을 세내어 ‘동아 구락부’라는 당구장을 새로 시작한 ‘사이상’, 빚에 쫓겨 알몸 하나 가지고 서울로 올라온 근화식당 주인, 남대문 밖 어느 석유회사 주인 등. 하지만 이들은 완전한 이방인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천변 어느 공간엔가 자리를 잡아 자신이 살아온 삶의 내력을 드러낸다. 낯선 이도 곧 친숙한 존재로 바꾸는 독특한 공간이 바로 천변이다. 물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카페에 객으로 온 ‘신사’, 샘터에 처음 빨래하러 나온 시골뜨기 ‘낯선 여편네’, 한약방에 온 애꾸눈 시골 손님, 금광 ‘뿌로카’, 금전꾼, 모군꾼, 등장수, 인력거꾼, 경찰, 신문 배달부, 음식점 배달부, 요릿집 보이, 당구장 ‘게임도리’, 카페 보이, 바텐더, 버스 걸, ‘내력을 알 수 없는 남자들.’ 이들도 ‘남들의 뒷공론’에 곧 정체가 밝혀질 터이지만, 근대 도시의 특성인 ‘익명성’이 어느 정도 그 모습을 갖춰가는 형국이다.
이렇듯 천변은 서로 내력을 속속히 알고 있는 토박이뿐만 아니라 새로 등장하는 이방인들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이다. 1930년대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자본주의적 변형이 조선인들의 삶의 터전을 무너뜨리자 수많은 이주자가 발생했다. 그들은 주로 일본인들이 사는 발전된 남촌으로는 가지 못하고 가장 낙후된 천변으로 몰려들었다. 서로의 생애사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토박이들과 서로에 대해 단편적 지식밖에 없는 뜨내기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 안에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공간들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분화되어 있다. 공간마다 행위를 안내할 규범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전부터 존재했던 상위규범이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다양한 공간에 선 천변 사람들은 어떤 규범을 활용하여 삶의 질서를 만들어나갈지 고민하게 된다.
천변 풍경에는 70여 명에 이르는 온갖 사람들의 삶의 이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군상들이 펼쳐 보이는 주관적 정신의 풍경처럼 보인다. 하지만 천변풍경은 공적 의미로 가득한 문화풍경이다. 장소?사람?문화의 일대일 상응이 이지러지는 경험이 1930년대에 등장하였다. 이주의 시대, 사람들과 그들이 활용하는 문화가 원래 있어야 할 제 장소에 있지 않다. 이러한 공간을 살아가기 위해 천변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가용한 다양한 이야기 자원을 가지고 삶을 헤쳐 나갈 수밖에 없다. 터 잡고 살아가는 자와 새로 유입된 자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이는 필경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가용한 언어로 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이 활용하는 언어의 레퍼토리를 확인해보면 당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회를 상상하는 방식을 가늠할 수 있다.
민주사는 “무어, 돈이 제일이지. 지위가 제일이지”라며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배금주의와 출세주의 언어를 사용한다. 돈이 제일이라 믿는다면 당대 떠오르고 있던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돈을 벌어야 할 것이지만 전통사회의 비합리적 방식인 도박으로 한탕을 노린다. 사법서사 주제에 ‘부회의원’에 출마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이냐고 스스로 물으면서도 지위를 얻기 위해 돈을 풀어 교제를 넓힌다. 이렇게 돈과 지위에 분망하다가도, ‘일처 이첩’을 둔 옛날의 벼슬 높고 부유한 사람들을 흉내 내느라 등골이 휜다. 작은 마누라와 가증할 젊은 애인놈을 간통죄라도 걸어 아작 내고 싶다. “호옥, 간통죄루래두?….” 하지만 근대법상 호적상의 부인이 아니라 그리 할 수도 없고 체면도 안 따라주는 일이라 전전긍긍한다. 당대 지배적인 힘을 얻어가는 돈을 갖게 되자 합리적 이윤을 추구하는 근대의 길로 가는 대신, 생산보다 소비에 몰두하는 전통적인 양반의 삶을 따라간다.
한약국 집에 사환으로 들어간 창수는 머슴 대하듯 하는 주인 영감의 하대에 열불 난다. 주인 영감 말투를 흉내 내는 아이스크림 장수 재봉이에게도 종종 놀림감이 된다. “허∼, 그눔이 시굴서 배질 못 헌 놈이라….” “허∼, 당장이래두 저눔 애빌 불러다가 시굴루 쫓아야지, 그눔 참 못쓰겠군….” 길에서 아이스크림을 팔 말정 서울에 사는 것이 지방에 사는 것보다 낫다는 당대인의 사회적 상상이 녹아들어 가 있다. 하지만 창수에게도 탈출구는 있다. “늦도록 자도 괜찮고, 일은 힘이 들지 않고 ‘다마’를 남들은 일부러 돈을 내고 배우러 오는 것을 한 푼 안 들이고 여가에 배울 수도 있고, 또 그렇게 편하게 지내면서 돈은 10원씩이나 벌” 수 있는 동아 구락부 게임도리. 시골로 내려갔던 창수는 결국 다시 돌아와 게임도리로 취직한다. 한약방 집 사환과 당구장 게임도리 사이에서 근대의 공간을 선택한 것이다.
카페 여급 하나꼬는 손님으로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된 양반댁 남성과의 결혼을 정당화하기 위해 낭만주의 사랑의 문화를 활용한다. “이이는 분명히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고, 그래, 내가 자기의 참말 안해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 것이다….” 결혼 혼수품을 마련하면서도 전통적 여성의 필수품인 경대보다는 모던 걸이 선호하는 핸드백, 양산, 비단 양말, 화장품, 슈트케이스, 에나멜 구두를 먼저 산다. 그러다가도 구르마꾼 아버지와 안잠자기 어머니가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신분 질서의 언어를 사용한다. 결혼해서는 구박하는 시어머니를 따르고 전처의 자식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제가 나은 자식은 비록 아니나, 역시 사랑하는 남편의 어린 것들을 지성으로 사랑하고 돌보고 그러면, 어린 것들도 응당 새어머니를 따를 것이요, 그래 자기도 능히 행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건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모든 것을 참자, 죽어도 이 집 귀신이다….” 마음 다잡고 전통적 여성상을 실천하지만, 결말은 남편의 변심과 불행한 결혼 생활이라는 낡은 레퍼토리의 반복이다.
이렇듯 천변 사람들은 전통적인 언어와 현대적인 언어 사이에서 주춤거린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의 문화풍경은 어떤 모습인가? 이 시대의 몇몇 문화풍경을 살펴보면 현재 한국국민이 한국사회에 대하여 상상하는 방식을 알아낼 수 있다. 나는 다섯 개의 풍경으로 이 책을 열고자 한다. 이 풍경은 모두 시각적 이미지를 담은 영상이다. 영상은 한국사회의 작은 문화풍경 조각들이다. 이 영상에는 모두 한국국민과 ‘다른 문화’를 가진 이방인으로 상상되는 사람들이 나온다. 1930년대, 시골을 등지고 유랑하기는 하지만 ‘같은 문화’를 가진 조선인들이 천변에 등장한 것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한국사회의 문화풍경이 바뀌고 있다. 이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한국국민과 이주자가 활용하는 문화자원을 들여다보면, 21세기 이주의 지구화 시대 새로운 한국의 문화풍경이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