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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우스트모던 미국 소설론과 작품세계 2

포우스트모던 미국 소설론과 작품세계 2

고지문 (지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3-10-31
  |  
17,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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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우스트모던 미국 소설론과 작품세계 2

책 정보

· 제목 : 포우스트모던 미국 소설론과 작품세계 2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어문학계열 > 영어영문학 > 영미문학
· ISBN : 9788968490576
· 쪽수 : 372쪽

책 소개

이 책의 가치와 진가는 미국대학에서는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데도,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8명의 포우스트모던 미국소설가들의 작품들을 연구하여 소개한 데에 있다.

목차

머리말 - 5

1. 죤 바스: 예측불허의 자아를 넘어서 - 9
2. 죤 바스: 순진과 고집불통의 자아를 넘어서 - 39
3. 죤 바스: 편견과 아집의 자아를 넘어서 - 79
4. 리쳐드 브로티건: 각성과 의식개혁 강조 - 115
5. 이쉬미얼 리드: 다문화주의의 신봉과 전파 - 141
6. 스탠리 엘킨: 생명력 예찬과 실존목적 탐구 - 169
7. 왈터 애비쉬: 답습과 이념보다는 도전과 탐구정신 - 193
8. 윌리엄 케니디: 전인적 실존 의지의 구현 - 221
9. 토머스 핀쳔: 실존목적 왜곡과 상실의 극복 - 247
10. 토머스 핀쳔: 편집증에서 판단중지로 - 278
11. 토머스 핀쳔: 인정, 수용 그리고 공존 - 309
12. 돈 디릴로우: 깨달음과 의식개혁 - 335

찾아보기 - 369

저자소개

고지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영문학과 학사(1955-1962)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석사(1962-1964) University of Hawaii 미국학과 석사(1971-1972) 제주대학교 영문학과 전임강사(1964-1969) 전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1969-2002) University of Wisconsin, Milwaukee ACLS-Fulbright 교환교수(1981-1982)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방문교수(1990-1992)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방문교수(1996-1997) 2020년 현재: 전남대학교 영문학과 명예교수 저서: Major Themes in the Contemporary American Novel(서울: 진명문화사, 1984; 신아사, 1999) 최근미국여성소설론과 작품세계: 굴레에서 자유로(서울: 신아사, 1999) 최근미국소설론과 작품세계: 삶 예술 자아실현(서울: 동인, 1994; 신아사, 2000) 최근미국소설의 핵심주제: 사랑 자유 정의(서울: 신아사, 2001) 포우스트모던 미국소설론과 작품세계: 언어 상상력 자아창조(서울: 신아사, 2005) 최근미국소설 연구방법: 주체적 자아, 자유스런 삶, 그리고 열린사회의 창조를 바탕으로 [증보판](광주: 전남대학교출판부, 2011) 포우스트모던 미국소설론과 작품세계 2: 언어 상상력 자아창조(광주: 전남대학교출판부, 2013) 행복을 추구한 세대: 철학 업적 유산(광주: 전남대학교출판부, 2015) 포우스트-포우스트모던미국소설론과 작품세계: 언어 상상력 자아탐구 공존의식(광주: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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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 죤 바스: 예측불허의 자아를 넘어서



죤 바스(John Barth, 1930- )는 “포우스트모던 [미국] 소설가들 중에서 가장 탁월하고 유능한 인재이다”는 격찬을 받고 있다. 그도 죤 혹스(John Hawkes), 레이먼드 페더만(Raymond Federman), 윌리엄 에이취. 개스(William H. Gass), 스탠리 엘킨(Stanley Elkin), 커트 보니거트(Kurt Vonnegut, Jr.), 토머스 핀천(Thomas Pynchon), 로버트 쿠버(Robert Coover), 도늘드 바털미(Donald Barthelme), 그리고 이쉬미얼 리드(Ishmael Reed)와 함께 사실주의와 모더니즘 소설의 창작철학과 기법을 부정한다. 다시 말하면 이 작가들은 “소설을 이론적으로 전복시켜, 소설[창작]을 플롵과 주인공의 진부한 사실주의적 활용 그리고 박진감의 강조나 일상생활의 본질[묘사]의 영역으로부터 이탈시켜 소설을 직접 창작하는 행위로 전환시킨다.” 그런데 바스는 창작기법에서 동료작가들과 상당한 이견을 드러낸다. 그는 그들이 천덕꾸러기로 내팽개친 전통소설을 빈사 상태에 빠진 쓸모없게 된 작품과 형식으로 간주하면서도, “이 소설을 상상력과 창의력이 넘치는 일련의 이야기들로 꾸며 소생시켰다.” 그는 사회의 경이적인 변화와 발전에 따른 인간 의식의 급격한 전환과 확장에 부응하지도, 더욱이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전통소설을 부정하지 않고 보완하여 현대인의 구미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 모색에 전념했다. 그래서 그는 처녀작, 떠도는 오퍼러호(號)(The Floating Opera, 1956, 개정판 1967)를 비교적 사실주의소설로 창작했다고 공언하면서도, 그 진수인 인과관계, 일관성, 연속성, 그리고 고정불변의 신념과 진리를 무시하는 포우스트모던 소설 기법으로 창작했다. 그가 이 소설에서 창조한 주인공들은 실존에서 당위적으로 인정, 수용되었던 생활규범과 철학을 부정하는 돌발적 행위를 서슴없이 하는 예측불허의 변덕쟁이들이다. 그들은 포우스트모던 소설의 전형적인 등장인물들이다. 이 논문은 바스의 소설창작철학과 기법 그리고 그 기법의 특이성(그와 동료작가들과의 이견)을 규명하고, 떠도는 오퍼러호를 분석, 고찰한다.
바스의 소설창작철학과 기법의 바탕은 소설가로서의 자기 정의에 있다. 그는 자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나는 직업이 소설가이기 때문에, 나 자신의 진리관을 [시사하면] 기질적으로 플레이터니스트(Platonist)이기보다는 훨씬 더 애리스터틸리언(Aristotelian)이고, 더욱이 인간 그리고 그의 행위와 창조의 견지를 피력하면 실재론자(實在論者)라기보다는 오히려 유명론자(唯名論者)이다.” 그는 유명론자의 입장에서 소설을 정의하고, 소설가의 사명을 부과한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소설은 본질적으로 [작가의] (우주관을 반영할지라도) 우주관이 아니고 우주 그 자체이다.” 그의 주장 ― “소설은 우주 그 자체이다” ―은 어느 작가도 세계를 자신의 선입관의 제약과 한정의 와중에서 인식하려 해서는 안되고, 무아의 경지에서 있는 그대로 응시, 수용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창작철학의 강조이다. 그러므로 “소설가는 궁극적으로 관찰자, 모방자, 혹은 영혼의 정화자가 아니고 우주의 창조자, 즉 조물주이다.” 다시 말하면 소설가의 사명은 우주에 대한 이해, 설명, 통제, 그리고 지배에 있지 않고, “우주를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보다도 더욱더 질서정연하고 의미심장하며 아름답고 재미있게 만드는”데 있다. 그런데 바스는 역설하기를, 이런 우주 창조는 전통소설이 시도했던 무엇에 관한 이야기의 완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설가는 어떤 의도도 목적도 없이 오로지 상상력과 언어구사로 이야기를 말하려는 시도와 과정에서 우주를 창조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야기 말하기는 하나님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있게 하라! 고 명하는 말씀을 하신 방식과 유사한 방법으로 우주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바스의 창작철학은 “소설은 우주 그 자체이다”는 주장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며, 기법은 우주창조를 다양한 이야기로 교묘하게 말하는 여러 방법들에 의존한다.
바스의 이런 주장 ― 소설은 우주이고, 소설 창작은 우주창조이다 ―은 쉽게 긍정, 수용되지 않는다. 더욱이 이런 주장이 일단 어떤 조건이나 형태로 긍정, 수용되더라도, 우주 이해와 창조방법에 대한 의견은 첨예하게 대립, 양분된다. 전통소설의 우주 이해는 전적으로 고전물리학의 요체인 고정불변, 확실성, 객관성, 그리고 절대성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전통소설의 우주창조는 이 요체를 뒷받침하는 인과관계, 일관성, 연속성 그리고 닫힌 귀결로 완성된다. 반면에 포우스트모던 소설은 현대물리학의 정수인 변화성, 애매모호성, 주관성 그리고 상대성을 우주이해의 근간으로 절대시한다. 그러므로 포우스트모던 소설의 우주창조는 비논리적 관계, 전위, 단절, 모순, 회의론, 변절, 그리고 열린 세계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진다. 오늘날 우리는 현대물리학의 절대적 영향을 받으면서 생존하기 때문에, 우리 실존은 분명하고 확실한 의식보다는 오히려 무의식세계의 본능과 욕구, 변화무쌍, 자유, 개체성, 그리고 독립성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직면할지도 모르는 파멸에 대한 불안과 공포 그리고 혼란과 무질서의 와중에서도 본능적 욕구충족, 자립의지, 잠재력 발휘, 그리고 황홀경을 갈망한다. 그런데 사실주의와 모더니즘소설은 우리의 이런 의식을 상상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었다. 마치 등잔불이 오늘날 우리 생활에서 무용지물인 것처럼, 전통소설도 우리 실존에 거의 쓸모없게 되었다. 그래서 바스는 전통소설의 한계를 절감하고, 우리 실존에 가장 타당하고 적절한 소설, 즉 포우스트모던 소설 창작철학과 기법을 동료작가들과 함께 창안, 구현했다. 바스의 창안과 구현의 바탕은 애리스터틸리언이고 유명론자라는 자기정의 그리고 이 정의에 부응하기 위해 자기와 사물을 어떤 선입관도 전제도 없이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고 정립한 “소설은 우주 그 자체이다”는 소설론에 있다.
바스의 소설론 ― 소설은 작가의 우주관이 아니고 우주이다 ―은 소설과 그 형식은 역사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모든 작가는 자신의 생존 시기에 가장 타당하고 적절한 작품과 형식을 모색, 구현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철학의 천명이다. 그의 철학에 따르면, “예술[창조]의 형식과 방법은 역사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적어도 특정한 시기와 장소의 많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에서도 쓸모없게 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기존] 예술 형식들은 폐기, 전복, 초월, 변형되어야 하며, 더욱이 새롭고 활력이 넘치는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 그 형식 자체들을 부정하는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따라서 바스는 어떤 목적도 전제도 없이 전적으로 상상력과 창의력에 의존한 소설창작만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무엇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는 전통소설을 폐기, 전복시켜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그는 그 부정의 의미와 방법에 있어서 동료작가들과 상당한 이견을 드러낸다. 그의 부정은 보완을 의미하지만, 그들의 부정은 글자 그대로 폐기와 전복을 함축한다.
예를 들면 바스와 죤 혹스의 창작철학과 기법은 매우 대조적이다. 혹스의 주장에 따르면, “나는 소설의 진정한 적들은 플롵, 주인공, 배경, 그리고 주제였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여 소설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소설에 대한 이런 인습적인 사고방식을 방기해버리자, 상상력, 다시 말하면 구성의 전체성이 실제로 현존해 있는 전부였다. 구성, 즉 언어적 그리고 심리적 일관성이 여전히 소설가로서 나의 최대 관심사이다.” 이처럼 혹스는 전통소설의 핵심요소인 플롵을 부정하지만, 바스는 플롵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는 자신의 소설창작에서 플롵의 절대적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나는 어느 작가가 소설이 어떻게 끝나게 되는가를 알지 못한 채로 소설 집필을 어떻게 시작하는가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보통 세밀한 개요, 즉 이 소설은 얼마나 많은 장들로 구성될 것인가를 구상한다.” 요컨대 바스는 전통소설의 기법들을 무시, 폐기하지 않고, 현대인의 구미와 욕구에 알맞게 보완하여 새롭게 활용한다.
게다가 혹스는 소설의 주제도 강하게 부정하지만, 바스는 그 반대이다. 그는 주제와 그 표현의 중요성을 각별히 강조한다. 그의 강조에 따르면, “문학의 주제는 ‘인간의 삶 그리고 그 행복과 불행이다’는 애리스토틀(Aristotle)의 주장에 나도 공감한다. [. . .] 예술창조기법은 . . . 사랑의 기법과 동일한 중요성을 지닌다. [사랑의] 무정한 기법이 효력이 있는 것처럼 진심에서 우러나온 정교하지 못한 [창조의] 기교도 매력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간절한] 욕구는 열정을 쏟은 기교이다. [그래서] 이 작품들이 감동적이지 않다면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나므로, 그것들의 저자는 도깨비 집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이처럼 바스는 주제로 우리 삶 그리고 그 표현 기법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의 역설에 따르면, 그 표현 기법의 정수는 독자의 마음을 제약하고 닫게 하는 어떤 특정인물의 삶에 관한 일변도적 기술에 있지 않고, 여러 등장인물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데 있다. 이런 묘사는 독자의 의식을 왜곡시키지 않으면서, 시야를 넓히고, 안목을 높이며, 의식을 개혁, 확장시키는데 일조한다. 요컨대 바스는 자신의 소설창작에서 주제로 우리 삶 그리고 그 표현기법을 절대시한다.
또 바스는 레이먼드 페더만의 이런 정의 ― “언어가 소설이다” ―에는 동조한다. 그러나 그들은 언어와 의미(삶) 중에서 어느 쪽을 더 우위에 두느냐의 문제에서는 서로 의견을 달리한다. 페더만은 “언어는 미리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고 이렇게 주장한다: “의미가 언어를 선재할 수 없고, 언어가 사용되는 가운데서, 즉 (말로 하거나 문자로 써서) 사용되고 있을 때, 다시 말하면 언어가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을 때, 언어가 의미를 창출한다 . . .” 그의 이런 지론에 반하여, 바스는 의미(삶)가 언어보다 먼저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어느 소설에서 언어가 아무리 멋대로 구사되었다 할지라도, 거기에 삶의 체험이 구현되어 있다면, 독자와의 소통이 가능하다고 이렇게 주장한다: “문학은 ‘다만’ 언어일 ‘뿐’이다. [. . .] 우리 삶의 체험은 본질적으로 언어체험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가장 추상적이고 심지어 파격적인 실험소설들도 . . . 아무리 파격적이라 할지라도 이 소설들이 투사하는 빛으로 언어체험과 삶의 체험의 일부인 창의력[계발]에 도움이 된다면 우리의 관심을 끌 것이다.” 요컨대 바스는 삶을 언어보다 더 우위에 둔다.
이처럼 바스는 동료작가들과 동일한 소설철학을 공유하면서, 창작기법에서는 상당한 이견을 피력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소설창작에서 동료작가들처럼 “내용, 다시 말하면 ‘[무엇에] 관한 것’에 대한 일반 개념을 무시하고, 언어와 형식을 가장 중요시한다”고 천명한다. 그런데 바스의 이런 천명에는 자가당착적인 일면이 있다. 왜냐하면 그는 내용을 무시한다는 주장을 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기법과 내용을 똑같이 이렇게 강조하기 때문이다: “대수학은 기법, 즉 문학작품의 기술적, 형식적 양상들을 표현하게 하라. 불은 작가의 열정, 즉 그나 그녀가 감동적으로 전달되게 하려는 사물들을 대변하게 하라. 내 설교(창작)의 단 하나의 부담은 예를 들면 훌륭한 문학작품은 대수학과 불을 다 필요로 한다는 데 있다. 요컨대 [내 창작은] 열렬한 예술가의 자질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주로 대수학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면, 대수학이 논의의 아주 좋은 주제이기 때문이다. 불은 스스로 타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바스의 창작론에 자가당착적인 일면이 있는 까닭은 그가 중용철학을 실천하려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그의 동료작가들은 지나치게 전통소설을 부정하면서, 언어와 형식을 극도로 중요시한다. 그들은 일변도적인 성향이 너무 강하다. 그러나 바스는 전통소설을 부정하지 않고, 현대인의 구미와 욕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보완한다. 더욱이 그는 어느 하나에 편향되지 않고, 언어, 형식, 기법, 그리고 내용을 똑같이 중요시하면서 소설창작에 전념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본론은 바스가 약관 24세에 3개월 만에 탈고, 출판하여 1956년도 최우수 미국소설상(National Book Award) 후보작에 올랐던 떠도는 오퍼러호를 분석, 고찰한다. 이 소설은 바스의 이론과 창작 사이에 빚어진 전형적인 자가당착의 산물이다. 그는 처음 의도했던 작품의 플롵에서 크게 이탈하여 예상을 뒤엎고 떠도는 오퍼러호를 완성했다. 그는 이렇게 된 사연을 실토한다: “처녀작, 떠도는 오퍼러호의 집필은 내가 메럴런드(Maryland) 연안을 떠돌아다녔던 낡은 연예선의 사진을 보고 시작되었다. 나는 일곱 살 때 그 연예선을 보았다고 기억한다. 1954년에 그 낡은 연예선의 사진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나는 이 사진이 철학적인 민스트럴 쇼우(minstrel show, 백인이 흑인으로 분장해서 하는 연예)를 집필할 영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전혀 소설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 . .] 나는 민스트럴 쇼우를 창작하기 시작했는데, 이 쇼우가 결국은 소설로 완성되었다.” 서구 비평가들은 떠도는 오퍼러호를 주로 “허무주의적 희극”으로 논의했지만, 필자는 이 소설의 특징은 우리 실존에 엄청난 부정적 역할을 하는 예측불허의 자아를 넘어서는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시각으로 소설 주인공, 토드 앤드루즈(Todd Andrews)의 자아가 구체적으로 분석된다.



떠도는 오퍼러호는 주인공 겸 화자(작가)인 토드 앤드루즈가 서른일곱 살 때(1937년) 어느 순간 극도의 절망감에 빠져, 자살을 시도했다가 포기한 6월 21일이나 22일 하루 동안의 사건들 그리고 그때까지 자신의 변신에 하나의 큰 계기가 되었던 중대사들의 회상을 쉰네 살이 되어서 소설화한 작품이다. 그는 “사람들을 지극하게, 아니 적어도 진지하게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다. 그가 이런 인간이 된 까닭은 어렸을 때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일곱 살 때 어머니는 작고하셨고, 아버지는 사업에만 열중하여 그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에, 혼자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어떤 간섭도 제약도 없이 마음대로 했다. 그는 버릇없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의 성격은 “과묵하면서도 할 말은 하고, 내성적이면서도 소외되지는 않으며, 때때로 활동적이면서도 열성적이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대인관계에서 상호이해와 공감을 도모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일방적이었다. 그의 이런 성장 배경 때문에, 그는 소송사건들에서 어떤 방법과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승소하려는 승부욕과 성취욕이 강한 변호사로 메럴런드주의 동부 해안도시, 케임브리쥐(Cambridge)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변호사로서 무수한 소장들과 1930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의 자살 동기를 규명하는 글들을 계속 썼지만, 소설 창작만은 처음 시도한다. 따라서 그는 창작기법도 잘 모르고 자신감도 없기 때문에, 자주 옆길로 빗나가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 쓰기는 저자(바스)의 소설과 소설가의 정의 ― “소설은 우주 그 자체이다” 그리고 “소설가는 우주 창조자이다” ―에 자가당착되는 이런 소설의 개념을 전제로 한다: “[그는] 소설을 우리가 실존에서 불가피하게 저지르기 마련인 삶의 왜곡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로 정의한다. 바꾸어 말하면 소설은 왜곡의 표현이지, 삶의 표현이 아니다. 소설은 삶의 표현의 표현이다. [. . .] 결국 소설은 인위적이다.” 이 정의는 사실주의소설의 정수인 표현을 강조하고 있지만, 표현의 대상과 방법은 전혀 다르다. 사실주의소설은 객관적 진리와 사실의 직접적 표현을 원칙으로 하지만, 이 정의는 실존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 이해, 그리고 판단의 비유적 표현을 역설한다. 그러므로 토드의 소설창작은 삶과 절대적 진리의 표현도 현실의 반영도 아니고, 자신의 주관적 삶과 현실인식에 대한 왜곡의 천명이다. 요컨대 그의 소설창작은 사실주의소설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플롵의 핵심요소인 절대성, 객관성, 고정불변, 그리고 정확성의 표현에 그 바탕을 두지 않고, 자신의 실존철학의 기저를 이루는 상대성, 주관성, 변화무쌍, 그리고 애매모호성으로 가득 찬 유아론적 삶의 실토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머리말

이 책은 저자가 졸저, 포우스트모던 미국소설론과 작품세계: 언어 상상력 자아창조(서울: 신아사, 2005)의 머리말에서 언급한 대로 1940년 이전에 출생한 리쳐드 브로티건, 이쉬미얼 리드, 스탠리 앨킨, 왈터 애비쉬, 윌리엄 케니디, 돈 디릴로우의 작품을 고찰한 6편의 논문에다 죤 바스와 토머스 핀쳔의 세 작품씩을 논의한 6개의 글을 추가한 위 저서의 속편이다. 저자는 포우스트모던 소설이 나의, 우리의, 다른 나라 사람들의 적극적, 긍정적, 초월적, 창조적 실존학의 입문서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이 연구에 깊은 관심과 열정을 쏟는다. 모든 국가와 사회의 사람들은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신념, 독선, 아집 그리고 편견 때문에 분열되어 적대관계에 있다. 이 적대관계를 완화하고 해소하는데 포우스트모던 미국소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포우스트모던 미국소설가들은 세상과 인간사는 제행무상이다고 전제하고, 실존에서 변화무쌍, 불확실성, 불확정성, 유연성 그리고 융통성의 절대적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개인의 자아탐구와 실현 의지와 실천, 가능성과 잠재력의 부단한 계발과 발휘욕구충족 그리고 공동체의식의 확장을 역설하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다르게 사고하고 반대하는 사람들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라고 그들은 호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들은 이런 강조, 역설 그리고 호소를 바탕으로 실존하려고 하지만, 본의 아니게 외부사정과 압력으로 인해 자아상실, 극심한 소외감 그리고 극한상황에 빠진다. 포우스트모던 미국소설가들은 절망적인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바탕으로 언어가 창조한 별세계에서 상실감, 소외감 그리고 극한상황을 극복하는 돌파구를 제시하여, 현실에서 자아를 탐구하고 실현하면서 함께 위기를 돌파하려는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렇게 하여 소설가들은 그들에게 다시 적극적, 긍정적, 창조적 실존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 계기가 나의, 우리의, 다른 나라 사람들의 실존학에 입문하게 한다. 그래서 저자는 포우스트모던 미국소설의 매력과 위력은 독자가 상상적으로나마 암울한 현실의 한계와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고취되어 주체적 자아, 자유스런 삶 그리고 열린사회를 창조하려는 의지와 실천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영어인명과 지명을 우리말로 올바르게 표기했다. 따라서 이 표기가 위 저서, 최근미국여성소설론과 작품세계: 굴레에서 자유로(서울: 신아사, 1999), 최근미국소설론과 작품세계: 삶 예술 자아실현(서울: 신아사, 2000), 최근미국소설의 핵심주제: 사랑 자유 정의(서울: 신아사, 2001), 최근미국소설의 연구방법: 주체적 자아, 자유스런 삶 그리고 열린사회의 창조를 바탕으로(서울: 글월 마로니, 2003)에, 또 논문들이 게재된 학술지에 표기된 것과 다른 경우가 상당히 많다. 영어인명과 지명이 저서들에서는 저자의 게으름과 무지로, 학술지에서는 편집자의 요구로 잘못 표기되었다. 이 책에 수록된 11편의 논문은 다음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예측 불허의 자아를 넘어서: 떠도는 오퍼러호를 근거로”는 영미문화 11권3호(2011)에, “순진과 고집불통의 자아를 넘어서: 연초무역상을 근거로”는 용봉인문논총 36집(2010)에, “편견과 아집의 자아를 넘어서: 염소-소년 쟈일즈를 근거로”는 용봉인문논총 38집(2011)에, “각성과 의식개혁 강조: 미국에서 송어낚기를 근거로”는 영어영문학21 22권2호(2009)에, “다문화주의의 신봉과 전파: 멈보우 점보우를 근거로”는 다문화사회연구 2권2호(2009)에, “생명력 예찬과 실존목적 탐구: 죠지 밀즈를 근거로”는 영어영문학21 22권1호(2009)에, “답습과 이념보다는 도전과 탐구정신: 독일의 정체를 근거로”는 영어영문학21 22권4호(2009)에, “전인적 실존의지의 구현: 섬꼬리풀을 근거로”는 人文科學論文集(대전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42ㆍ43집(2007)에, “실존목적 왜곡과 상실의 극복: 토마스 핀쳔의 비.(V.)를 중심으로”는 용봉인문논총 40집(2012)에, “편집증에서 판단중지로: 제49호 품목의 경매를 근거로”는 영미문화 12권 3호(2012)에, 그리고 “소설은 깨달음과 의식개혁의 원동력: 요란한 잡음을 근거로”는 美國學 29집(2006)에 게재했다. 위 논문집들의 발행인에게 깊이 감사한다. “인정, 수용 그리고 공존: 메이선과 딕선을 근거로”는 학술지에 게재하지 않았다.
저자는 부덕한 소치로 논문을 집필하면서 소설을 논의할 동료와 후학들이 없어 매우 아쉽고 답답했다. 혼자 작품을 읽고 사색하면서 제대로 이해하고 글을 쓰고 있는가에 대해 회의한 적이 많았다. 이럴 때마다 삶의 반려자 차정원이 읽고 저자에게 많은 조언을 해 주었다. 이 조언이 큰 격려, 도움 그리고 활력이 되었다. 또한 광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감 강의섭박사가 바쁜 학교업무의 와중에도 과거에 맺었던 사제관계 때문에 다섯 편의 논문 ― “편견과 아집의 자아를 넘어서,” “각성과 의식개혁 강조,” “답습과 이념보다는 도전과 탐구정신,” “실존목적 왜곡과 상실의 극복,” 그리고 “편집증에서 판단 중지로” ―을 읽기 편하게 수정해주었다. 강박사의 노고는 저자에게 축복이었다. 논문 집필에 필요한 서적들을 구입하고 논문들을 복사해준 두 딸 원렬, 원실의 협조는 저자에게 큰 도움이었다. 이들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헌정한다.

2013년 10월
고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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