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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추구한 세대

행복을 추구한 세대

(철학 업적 유산)

고지문 (지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5-08-05
  |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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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추구한 세대

책 정보

· 제목 : 행복을 추구한 세대 (철학 업적 유산)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철학 일반 > 교양 철학
· ISBN : 9788968492334
· 쪽수 : 368쪽

목차

머리말 _5

1. 윌리엄 에스. 버로우즈의 소설론과 그 영향력 _15
2. 죤 클렐른 호움즈: 자기긍정과 보존 _42
3. 노먼 메일러: 자아고수와 성숙 _67
4. 쟥 케러왝: 삶의 활력은 깨달음과 자유 _98
5. 윌리엄 에스. 버러우즈: 의식개혁과 확장 _196
6. 켄 키지: 통제 그러나 자유의 승리 _226
7. 토머스 핀쳔: 실존목적 왜곡과 상실의 극복 _255
8. 죤 엎다이크: 영혼과 육체는 하나 _286

찾아보기 _362

저자소개

고지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영문학과 학사(1955-1962)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석사(1962-1964) University of Hawaii 미국학과 석사(1971-1972) 제주대학교 영문학과 전임강사(1964-1969) 전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1969-2002) University of Wisconsin, Milwaukee ACLS-Fulbright 교환교수(1981-1982)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방문교수(1990-1992)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방문교수(1996-1997) 2020년 현재: 전남대학교 영문학과 명예교수 저서: Major Themes in the Contemporary American Novel(서울: 진명문화사, 1984; 신아사, 1999) 최근미국여성소설론과 작품세계: 굴레에서 자유로(서울: 신아사, 1999) 최근미국소설론과 작품세계: 삶 예술 자아실현(서울: 동인, 1994; 신아사, 2000) 최근미국소설의 핵심주제: 사랑 자유 정의(서울: 신아사, 2001) 포우스트모던 미국소설론과 작품세계: 언어 상상력 자아창조(서울: 신아사, 2005) 최근미국소설 연구방법: 주체적 자아, 자유스런 삶, 그리고 열린사회의 창조를 바탕으로 [증보판](광주: 전남대학교출판부, 2011) 포우스트모던 미국소설론과 작품세계 2: 언어 상상력 자아창조(광주: 전남대학교출판부, 2013) 행복을 추구한 세대: 철학 업적 유산(광주: 전남대학교출판부, 2015) 포우스트-포우스트모던미국소설론과 작품세계: 언어 상상력 자아탐구 공존의식(광주: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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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 윌리엄 에스. 버로우즈의 소설론과 그 영향력



이 연구는 행복을 추구한 세대(Beat Generation)의 대표적인 소설이론가 겸 작가인 윌리엄 에스. 버로우즈(William S. Burroughs)의 창작철학과 기법이 포우스트모던 미국소설가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논지를 전제로 한다. 행복을 추구한 세대는 20세기 중반부터 미국사람들의 의식개혁을 선도하여 미국사회의 변화와 혁신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의 주장에 따르면, “행복을 추구한 세대는 동성애자의 권리확장과 차별폐지, 흑인공민권운동 그리고 여성해방운동에서부터 언어(문학작품)의 검열로부터 해방 . . . 그리고 환경의식의 고취와 확장으로까지 [미국사회의] 모든 분야에 변화와 개혁을 촉발했다.” 이처럼 행복을 추구한 세대의 긍정적인 영향에 관한 평가와 논의는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또 이 세대의 문학활동도 소상하게 기술되었다. 그러면서도 그 소설론이 포우스트모던 미국소설 철학의 연원이 된다는 연구는 적극적으로 수행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 논문은 포우스트모던 미국소설 창작철학과 기법이 윌리엄 에스. 버로우즈의 소설론에 연유하고 있음을 규명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논문은 먼저 행복을 추구한 세대의 창립자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실존철학으로 무엇을 탐구했으며, 그들의 철학 구현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누구이고, 행복을 추구한 세대는 어떻게 명명되었는가를 상술한다. 또 논문은 이 세대의 소설가들이 소설에서 창조하려고 한 주인공은 세대와 관련이 있는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가 창안한 새로운 인간형 하얀 흑인(White Negro)이며, 그들이 이런 주인공을 소설화한 창작철학과 기법이 종전소설론과 어떻게 다른가를 고찰하게 위해, 버로우즈의 소설철학과 창작기법을 규명할 것이다. 끝으로 포우스트모던 미국소설가들이 이 소설창작철학과 기법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앨런 긴즈버그가 어머니의 정신착란 때문에 암울한 가정 분위기에서 고독하게 성장하여 세상물정에 어두운 채 열일곱 살에 컬럼비어대학교(Columbia University) 신입생이 된 1943년 겨울방학에도 기숙사에 남아 있다. 어느 눈 내리는 날 오후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떠난 적막한 기숙사 복도에서 흘러나오는 브람즈 클래러넬 오중주곡(Brahms Clarinet Quintet)을 듣고 찾아간 방에서 천사처럼 보이는 미남, 루시언 카(Lucien Carr)의 환영을 받는다. 긴즈버그보다 두 살 많은 카는 세인트 루이스(St. Louis)의 유명가문 출신으로 책임감은 없으면서도 조숙한 10대로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해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쉬카고우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를 1년 다니다가 자퇴하고 방랑생활을 하다가 가을학기에 컬럼비아대학교에 입학해서 여유 있게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는 순진하게 학구열만 강하고 여자와 술에는 관심이 없지만 문학토론 지기로 사귄 긴즈버그를 황홀하게 하면서도 두렵게 하는 그리니쥐 빌리쥐(Greenwich Village, 예술가와 작가들의 거주지구)로 데려가, 긴즈버그에게 늙게 보이는 서른 살의 동향선배 버로우즈를 소개한다. 버로우즈는 부유한 가정출신으로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에서 1936년에 영문학학사를 취득하고,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다가 비에너(Vienna)에 가서 6개월 동안 의학을 공부했다. 그는 명문대학 출신배경과 해박한 학식으로 보수가 좋은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있었지만, 금전과 사회적 지위보다는 폭넓은 삶을 체험하기 위해 장래성 없는 시원찮은 일자리를 선호한다. 그래서 그는 작은 광고회사와 공장에서 하급사원으로 종사했고, 심지어 살충제를 살포하는 인부로 일했으며, 술집 종업원으로도 근무했다.
그렇지만 카와 긴즈버그는 그의 해박한 지식을 높이 평가하고 신뢰한다. 따라서 두 사람은 논쟁하다가 상대 주장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으면, 버로우즈에게 그의 견해를 묻는다. 긴즈버그가 “예술은 사회적이고 어떤 목적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카는 “예술은 그 자체가 근원이고 [목적이다]”고 반박한다. 별수 없이 두 사람은 버로우즈에게 자문을 구한다. 그는 일반의미론의 창시자, 코르집스키(Korzybski)의 강의를 수강하여 습득한 지식으로 설명하기를, art(예술)는 세 글자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단어는 그것이 지시하는 사물이 아니고, 개개인이 그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려는 의미이다. 그는 두 사람에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를, “그것은 내가 처음 받았던 가장 어리석은 질문이다. 그것은 두 사람이 ‘예술’을 무엇으로 정의하고 싶은 의사에 달려있다. [. . .] 단어들은 고정된 정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너희가 이것을 예술로 정의하고 싶으면, 이것을 예술로 정의한다. 너희가 예술을 그런 의미와 상황으로 사용하고 싶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예술이냐 아니냐의 논쟁은 분명히 용어(사용)의 혼란이다.” 긴즈버그는 마치 그가 “컬럼비어대학교에 만연되어 있는 지적 독소, 다시 말하면 개념들이 절대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개념들에 집착하는 반지성적 분위기를 쇄신하는 것” 같다. 따라서 그는 이제 자신을 구속하는 용어의 고정관념과 고지식한 학문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되려고 최선을 다하게 된다.
또 카는 여자 친구를 통해 과거 컬럼비어대학교 미식축구(football)장학생이었다가 감독과 싸우고 무릎 부상으로 축구팀에서 퇴출당한 쟥 케러왝(Jack Kerouac)을 만났다. 그는 퇴교당해 축구선수로 입신하기를 갈망한 사업실패자인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다. 그는 사회적 지위향상과 경제적 이익추구를 포기하고, 1942년 12월 해군에 입대했다가 부적응 성격으로 명예제대하고, 1943년 여름부터 상선선원으로 일했다. 더욱이 그는 문학과 음악을 독자적으로 이해하고 감상하려는 주관성과 개체성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저명 학자들의 권위적인 견해와 주장들에 도전하고자 했다. 그는 이런 암담한 여건 가운데서도 소설창작에 열중했다. 카는 케러왝과 예술과 문학을 토론하다가, 긴즈버그와 케러왝이 좋은 지기가 될 거라고 믿고, 1944년 5월에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 긴즈버그는 운동선수였던 케러왝이 토로하는 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수성에 감탄하여 바로 그에게 완전히 매료당했다. 서로 지기가 된 긴즈버그와 케러왝은 버로우즈를 방문하여, 그의 환대를 받을 뿐 아니라 서재에 있는 다양한 분야의 장서를 보고 놀랐다. 이렇게 카를 통해 만난 세 사람은 미국문학사에 소설창작철학과 기법을 변화시키는 이정표가 된 행복을 추구한 세대를 태동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버로우즈의 지도를 받으면서 카, 긴즈버그 그리고 케러왝은 “행복을 추구한 세대의 이론적 원천이 되는 [예술과 문학의] 신철학(New Vision)” 정립에 각고의 노력을 쏟는다.
이 네 사람은 “반항자들이 아니라 금전 만능주의에 매몰된 사회와 절연하고 [홀로 진리를 탐구하는] 선각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의 주체성, 개체성, 감수성, 그리고 본능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사회현실과 제도 그리고 전통예술과 문학을 그대로 수용하여 거기에 순응하려고하기보다는 오히려 도전하여 반발하려고 했다. 카는 전통예술론과 문학론에 반발하는 예술과 문학의 신철학을 정의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실토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주장하기를, 신철학은 “사회를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하려는,” 다시 말하면 사회에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창조하여 파급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시도이다. 신철학은 사회변화와 개혁을 촉발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긴즈버그는 예술은 사회적이고 어떤 목적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철회하고, 신철학은 카의 이런 예술론에 있다고 확신한다: “예술은 궁극적으로 그 자체의 표현이기 때문에, 가장 개인적이고 객관적이며 자유스러운 솔직한 표현이 진정한 예술이다라고 우리는 단정한다.” 또 그와 케러왝은 신철학은 “모든 사람의 영혼의 진수를 공감적으로 이해하려는” 의도라는 데 동감한다. 더욱이 두 사람은 신철학을 “만물은 하나이다”라는 사상으로 정의한다. 이 뿐만 아니라 그들은 버로우즈로부터 영감을 얻어 관념론을 초월하여, 이제 “의식의 본질을 연구하고 개혁하고 탐구하는 자신들이 새롭게 창안한 방법”의 유도에 따라 실존하려고 한다. 신철학의 이런 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솔직한 자기표현이 창조력의 원천이다. 2. 예술가의 의식은 [자신의] 감각들을 일상과 무딤으로부터 신기함, 경이감, 그리고 민감하고 예민함으로 바꾸려는 의지와 능력에 비례하여 확장된다. 3. 예술은 구태의 인습과 도덕을 타파한다.”
이 신철학을 구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두 사람, 허버트 헝크(Herbert Huncke)와 닐 캐서디(Neal Cassady)가 있다. 버로우즈는 1945년에 타임즈 광장(Times Square)의 남창, 마약상용자 그리고 절도범인 헝크를 긴즈버그와 케러왝에게 소개한다. 그는 대학생과 절도범, 다시 말하면 현학적인 지식인과 어떤 역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시정잡배를 연결시킨다. 이리하여 그는 상아탑문학과 길거리문학, 또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구별하지 않고 하나로 통합시키려고 한다. 긴즈버그는 헝크를 만나 순진, 학문 그리고 보도 위주의 세계에서 벗어나 경이와 활력이 넘치는 시정잡배의 삶을 직접 목격한다. 케러왝은 헝크로부터 의식전환의 계기를 얻는다. 헝크는 부모의 버림을 받아 열두 살부터 절도행각을 벌이면서 홀로 떠돌이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는 교도소를 자주 드나든 공권력의 피해자이다. 그렇지만 그는 타임즈 광장에서 싹트기 시작한 매춘부와 휴대품 보관소 여직원들의 억압적인 사회체제에 도전하는 운동의 태동과 방향을 제시한 반항아이다. 그는 반항하면서도 이렇게 고독, 절망 그리고 비행으로 얼룩진 과거를 극복하고 자제하면서 소망과 사랑이 넘치는 현재를 창조하려고 한다: “고독, 수치심 그리고 죄의식이 자주 그를 엄습하는 격정이다. 그는 이런 격정에 휩싸이면서도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고 초연하는 능력을 결코 상실하지 않는다. 그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자비를 베푼다.” 케러왝은 그가 실존의 악조건 가운데서도 언제나 자성하려는, 더욱이 사랑하려는 삶과 정신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래서 케러왝은 그가 실망하다 혹은 녹초가 된 의미로 사용하는 “비트(beat)”에서 다른 가능성, 행복이 넘침을 발견한다. 조만간 이 단어는 두 가지 뜻으로 통용되었다. “비트”는 자신의 진실한 자아와 자아해방을 탐구하려면, 너는 먼저 네 심장, 영혼, 육체 그리고 의식의 가장 비밀스럽고 탕진 뒤에 남아 있는 부분을 탐색해야 한다는 견해를 대변하게 되었다. 따라서 “비트”는 냉철함과 사랑스러움, 성적임과 정신적임을 동시에 함축했다. 케러왝도 천주교신자로서 교리해석을 활용하면, “‘비트’는 마치 순교처럼 실존이 막다른 골목에 빠지면 의식이 기진맥진이나 좌절을 넘어서는 상태를 함축한다.” 이런 깨달음으로 케러왝은 악몽과 비행의 과거에서 벗어나 사랑과 자비를 베풀 수 있는 현재를 중요시하는 헝크를 떠돌이 삶(On the Road, 1957)에서 엘모 하설(Elmo Hassel)로 소설화한다.
닐 캐서디도 여섯 살 때 부모가 이혼하자, 술 중독자인 아버지와 함께 싸구려 여인숙에서 기거한다. 그는 소년시절을 당구장, 화물야적장 그리고 유흥가의 어두운 세계에서 보내면서 비행을 저지른다. 그가 열네 살부터 훔치기 시작한 자동차 대수가 7년 동안 500대가 넘는다. 그는 절도 목적이 오로지 여학생들을 태우고 돌아다니는 즐거움에 있으므로 훔친 자동차를 팔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절도죄로 여섯 번이나 소년원에 수감된다. 그러나 그는 헝크와 같은 공권력의 피해자가 되지는 않는다. 그는 세상과 주변상황을 기민하게 파악하는 생존방법에 익숙한 데다 출중한 체격, 절륜한 체력 그리고 비범한 재능의 소유자로 자기 잠재력을 계발하여 꿈을 실현하려고하기 때문이다. 그는 “10대 초기에 표우더르 미카일러비취 도스터예프스키(Fyodor Mikhaillovich Dostoevsky), 챨즈 디킨즈(Charles Dickens), 이매뉴얼 캔트(Immanuel Kant), 그리고 프리드릭 빌헬름 니쳬(Friedrich Wilhelm Nietzsche)를 정독하여 자기를 경멸하려고 하는 선생님과 부자 친구들의 환심을 산다. 이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 느낌에 좋아하게 될 거라는 일들에 성심성의를 다해 열중하기 시작한다. 그는 몇년 안에 충심으로 작가가 되고 싶어한다. 그가 작가가 되지 못하면 그의 기독교 도덕관의 마지못한 고수를 포함한 다른 잠재력들의 소산만큼의 죄의식에 시달릴 것이다”고 생각한다. 이런 그가 1946년 12월에 갑자기 뉴욕(New York)에 와서 긴즈버그와 케러왝을 만나고, 케러왝에게 소설창작법 강의와 지도를 간청한다. 이렇게 간청하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그는 행복을 추구한 세대의 문학과 문화 활동이 지향할 방향을 제대로 제시한 특출한 인물이다. 그는 “잭 케러왝, 앨런 긴즈버그 그리고 죤 클렐른 호움즈(John Clellon Holmes)에게 그들이 대학에서 체험하지 못했던 실존과 사고방식의 실감 있는 실례를 제시한다. 자발적인 캐서디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를 [현학적으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모든 길을 보이는 대로(본능적으로) 따라간다. 따라서 그의 실존탐구는 도로 위에서도(실생활에서도), 더욱이 문학과 종교연구 그리고 의식을 일변하는 환각제들의 사용을 통한 자기앎의 확장 과정에서도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캐서디의 실존이 분출하는 무한한 정력과 역량은 행복을 추구한 세대의 창립자들에게 인간행동을 일반적으로 평가하는 법률과 제약들을 검토하고, 우주 속의 인간 위상과 책무에 대한 새롭고 더욱 의미 있고 더욱더 낙관적인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하라고 권유한다.” 이렇게 캐서디는 창립자들에게 새로운 인간 정의를 전제로 자아와 실존을 탐구하고, 삶과 학문을 통합하여 종교, 도덕 그리고 제도를 창의적으로 재검토하라고 조언한다. 요컨대 그는 그들에게 폐쇄적 학문 위주의 사고와 행동에서 벗어나 본능과 직관력을 바탕으로 자아와 우주를 탐구하라고 격려한다. 이럼으로써 그는 그들의 의기소침하고 무기력한 의식과 실존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캐서디는 그들의 의식과 실존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성을 적극 긍정하고 예찬한다. 그가 행복을 추구한 세대에 기여한 정곡은 성의식을 일변시킨 데 있다. 성은 억압과 부정의 대상으로 금기시되어, 누구도 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도 논의할 수도 없었다. 이런 풍토에서 그는 케러왝과 긴즈버그에게 자신의 실존에서 성이 창조적 역할을 하는 실례를 제시하여, 그들의 성의식을 개혁한다. 그는 그들에게 “성은 ‘남녀가 하나가 되는 융합’”이라고 설파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비난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오로지 자기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세번 결혼하고, 두번 이혼하면서 “행복한 융합”을 만끽한다. 그는 이 만끽으로 자신의 불행과 비행으로 점철된 과거 삶을 극복할 수 있다고 일방적으로 믿기 때문에, 여자 마음의 상처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성이 어떤 극한상황도 극복할 수 있는 삶의 활력소라고 역설한다. 그의 영향을 받아 케러왝은 “닐 [캐서디]에게 ‘성은 삶의 가장 성스럽고 중요한 활력’이다”라는 주장을 인정하고 수용한다. 긴즈버그도 “성은 [자기]정체성을 재확인하고 고수하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두 사람은 성의 긍정과 예찬을 넘어 창조적 역할을 중요시하는 경지에 다다른다. 노먼 메일러는 그들의 성의식보다 더 비약하여 “성적 황홀경은 당신이 [자아와] 삶을 속일 수 없는 순간이다”라고 갈파한다. 한 사람의 거짓 자아와 삶은 자신과 상대방, 심지어 인류와 세계를 순식간에 파멸시킬 수 있다. 그런데 메일러의 견해에 의하면, 남녀를 하나로 융합하는 성이 이 파멸을 방지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암시한다. 이렇게 우리 실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성의식을 개혁한 선각자, 캐서디는 떠돌이 삶에서 딘 모리아티(Dean Moriarty)로, 그리고 죤 클렐른 호움즈의 열광하자(Go, 1952)에서 하트 케니디(Hart Kennedy)로 소설화된다.
이처럼 헝크와 캐서디의 과거 비극적 실존과 현재 긍정적 자유분방한 의식은 케러왝의 소설철학을 구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호움즈도 캐서디가 자유분방하게 성적 황홀경을 만끽하려는 열의에 감탄한다. 더욱이 호움즈는 제2차세계대전 후의 작가로서 자기정체성, 특히 자기 세대의 정체성을 탐구하여 정립하려고 한다. 그는 자기 세대의 특징은 1940년대 유행하기 시작한 봎(bop)을 즐기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봎은 “우리[세대]가 느끼는 불협화음과 복잡성의 표현일 뿐 아니라 우리를 분명하게 바로 지난 세대의 사람들과 구별시킨다. 왜냐하면 우리의 30년대 쟤즈 우상들이 거의 봎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30년대 쟤즈를 즐겨 들었던 사람들은 일차원적 의식에 유폐되어 있으므로 음악을 음악으로 들으면서 봎을 감상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봎이 우리 세대에 의미하는 진의와 감정을 이해하여 수용할 수 없다. 우리 세대도 봎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야 “그의 성생활, 문학과 예술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즐거움, 폭력, 흑인, 그리고 깨달음에 대한 마음의 단면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정신의 소유자인 호움즈가 1948년 가을에 케러왝과 대화하면서, 조심스럽게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탐구심이 강한 타임즈 광장의 젊은 힢스터들의 의식 특징은 무엇인가하고 그에게 질문한다. 케러왝은 대답하기를, “그 특징은 일종의 내밀함이다. 마치 우리가 내밀한 세대의 사람들인 것처럼. 당신도 알다시피, 자기앎에 관심을 쏟으면 공개적으로 [자기를] 과시할 필요가 없다. 내 의미는 일종의 적나라함,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확실히 알기 때문에 진심(眞心)의 극대화, 즉 우리 자신에게 정직함이다. 모든 형식들과 세상의 인습들에 대한 반항이다. [. . .] 힢스터들의 의식 특징은 이런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우리는 행복을 추구한 세대라고 말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행복을 추구한 세대가 명명되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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