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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신유학의 철학적 탐구

중국 현대 신유학의 철학적 탐구

유술선 (지은이), 최대우, 이경환 (옮긴이)
전남대학교출판부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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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신유학의 철학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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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중국 현대 신유학의 철학적 탐구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인문계열 > 철학
· ISBN : 9788968493560
· 쪽수 : 316쪽
· 출판일 : 2016-11-10

책 소개

중국철학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고찰,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융합과 그 차이점, 초월과 내재의 문제를 양행의 도리라는 측면에서의 고찰, 현대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상대주의로 인한 윤리의 부재 문제와 동서윤리 융합의 가능성 탐구, 세계윤리선언의 기초 과정과 동양윤리의 위치 등에 대해 논한다.

목차

옮긴이의 말 / 5
자서 / 9

1.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본 현대 중국 철학사상의 변화 국면 / 17
2. 유학의 이상과 현실 - 최근 동아시아 발전의 성취와 한계에 대한 반성 / 37
3. 종교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논의함 / 76
4. “양행의 도리”와 안심입명 / 102
5. 세계윤리와 문화차이 / 181
6. “세계윤리선언” 초안의 어려움 - 제2차 세계윤리회의 스케치 / 204
7. 현대 신유가의 관점으로 본 세계윤리 / 219
8. 유가철학의 심리학적 의미 / 251
9. 통합지식과 지ㆍ정ㆍ의 - 반세기 이래 통합지식교육의 반성 / 280
10. 다원문화에서 중국문화의 위치 / 298

저자소개

유술선 (지은이)    정보 더보기
원적이 강서(江西) 길안(吉安)으로 1934년 상해에서 태어났다. 대만대학 철학과 학사, 철학연구소 석사, 미국 서던 일리노이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찍이 동해대학(東海大學) 부교수, 서던 일리노이 대학 철학과 교수, 홍콩 중문대학(中文大學) 철학과 강좌교수(講座敎授), 중앙연구원(中央硏究院) 중국문철연구소(中國文哲硏究所) 특임강좌를 담당하였다. 2016년 6월 서거. 저작으로 『문학 감상의 영혼』(文學欣賞的靈魂), 『새로운 시대 철학의 신념과 방법』(新時代化哲學的信念與方法), 『문화철학의 시론적 탐구』(文化哲學的試探), 『생명정조의 결단』(生命情調的抉擇), 『중국철학과 현대화』(中國哲學與現代化), 『주자철학사상의 발전과 완성』(朱子哲學思想的發展與完成), 『황종희 심학의 정초』(黃宗羲心學的定位), 『문화와 철학의 탐색』(文化與哲學的探索), 『중서철학논문집』(中西哲學論文集), 『대륙과 해외-전통의 반성과 전환』(大陸與海外-傳統的反省與轉化), 『유가사상과 현대화』(儒家思想與現代化), 『이상과 현실의 규결』(理想與現實的糾結), 『전통과 현대의 탐색』(傳統與現代的探索), 『당대중국철학론』(當代中國哲學論), Understanding Confucian Philosophy: Classical and Sung-Ming 등이 있다. 그밖에 영문으로 된 논문 수십 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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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우 (옮긴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충남대학교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전남대학교 명예교수다. 저서로는 『호남의 유학자들』(전남대학교 출판부, 2016, 공저), 『이제마의 철학』(경인문화사, 2009), 『정다산의 경학』(민음사, 1989, 공저), 『유학사상』(전남대학교출판부, 광주고전국역총서, 1992, 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 『유학의 개척자들』(전남대학교출판부, 2013, 공역), 『중국 현대 신유학의 자아전환』(전남대학교출판부, 2018, 공역), 『동의수세보원 역해』(경인문화사, 2012), 『유학사상(연보집성)』(한국 전산출판사, 광주고전국역총서, 1994, 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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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본 현대 중국 철학사상의 변화 국면

1960년대에 쿤(T. S. Kuhn)은 “패러다임”(paradigm)론을 제시하여 과학철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과학의 발전은 안정적인 상태에서 지식이 부단히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기에 모두 모종의 패러다임을 받아들임으로써 잘 살펴보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정상 과학(normal science)의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패러다임은 결국 새로운 상황과 문제에 대해 대처할 수 없게 되면서 과학혁명을 낳게 된다. 이러한 혁명은 결코 지엽적인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던 때가 바로 이러한 변화의 시기였다. 표면상으로 볼 때 역사에 연속성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역사는 단절되었다. 근대과학은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전시킨 것으로서 고전적 패러다임과는 구조적(framework)으로 서로 받아들일 수 없을(incompatible)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incommensurable) 것이다. 계발성이 풍부한 쿤의 학설은 당시의 논리실증론이 주도하여 주류가 된 “통합과학”(unity of science) 사상에 직접적으로 도전한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분명한 사실에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과학의 발전은 평온하게 흘러 온 것이 아니라 일단 돌발적인 변화가 발생하게 되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어 표면상으로는 여전히 옛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이미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관찰은 미시적이다. 그렇지만 쿤의 학설에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 역사의 단절을 주장한 그의 학설은 상대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는데, 어떤 면에서 보면 슈펭글러(Oswald Spengler)와 같은 유형으로 변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라면 해석학(hermeneutics)의 이른바 “지평의 융합”(fusion of horizons)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고대 그리스, 중세기와 근대 서양의 사상 구조는 큰 차이가 있지만 화이트헤드는 근대 서양 과학의 연원은 바로 그리스의 사조와 중세기의 보편적 관념으로 소급해갈 수 있다고 논하였다. 이것으로 패러다임의 차이가 반드시 지평의 융합을 방해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상 발전이 모종의 상황에 이르게 되면 돌발적인 변화를 초래하게 되어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포괄적인 의미에서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패러다임을 엄격한 이론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여러 가지 난점에서 벗어날 수 없고 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을 얻을 수도 없다.
모두가 곤혹감을 갖게 되는 것은 “패러다임”이라는 용어가 근본적으로 엄격한 정의를 결핍하고 있다는 점이다. 쿤 자신이 그 용어를 사용할 때부터 다른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도 일찍이 비교적 확정적인 표현을 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그다지 성공을 하지 못하였다. 그 자신은 뒤에 이 용어의 사용을 자제하였다. 그렇지만 “패러다임”론이 제기되었을 때 그 개념이 갖는 엄격성의 결핍과는 상관없이 빠르게 전파되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이 이해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고, 또 반드시 쿤이 말한 원래 개념에 구속될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뉴턴의 고전물리학에서 20세기의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으로 변화한 것은 한 차례의 과학혁명으로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닌가? 비교적 느슨한 기준으로 볼 때, 그것을 과학혁명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여전히 많은 물리학학자들은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의 성과는 단지 몇 가지 중대한 수정에 불과한 것으로 패러다임의 전환과 같은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준을 다시 좀 더 관대하게 적용하면, 이른바 유심(唯心)ㆍ유물(唯物)은 두 가지 다른 패러다임으로 볼 수 있는가? 헤겔로부터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를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안 될 것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패러다임의 의미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유심ㆍ유물은 서양 근대에 데카르트가 심물이원(心物二元)을 엄격하게 구분한 뒤에 발전되어 나온 두 가지 종류의 철학적 기본 유형으로 피차간에 모순ㆍ충돌을 하지만 오히려 상호 충돌하면서 교류하는 것이다. 공산당 정부는 전체 철학사를 유심ㆍ유물이라는 두 가지 노선의 투쟁으로 보지만 이것은 패러다임의 이해에 있어서는 쿤의 학설과 별반 관련이 없다. 종합하면, 사람들은 모두 “패러다임”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살펴보면 곳곳에 모두 문제가 있어 하나로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논쟁을 해결할 의도는 없고, 단지 “패러다임”을 하나의 계발식의(heuristic) 관념으로 삼아 우리의 견해에 도움을 받고자 할 뿐이지 그 밖의 더 큰 뜻은 결코 없다.
이와 같이 우리는 “패러다임”이라는 관념을 중국 철학사상의 발전 과정에 응용해보고자 한다. 어떤 면에서 볼 때, 만약 반드시 쿤의 원래 의미에 따라야 한다면 피차간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중국은 한대 이래로 2천 년 동안 유가사상을 주도로 하여 흡사 어떤 패러다임의 전환을 볼 수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유가가 지배하던 상황에서도 몇 가지 패러다임의 전환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곧 이른바 한대와 송대의 논쟁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한대에 정치화된 유학은 경학을 주축으로 한다. 송명이학은 의리(義理)를 중심으로 하여 천도성명(天道性命)이 서로 관통한다고 제창하였으며, 이 노선은 발전하여 황종희(黃宗羲)에 이르러 종결을 지었다. 청대 초기에 이르러 진확(陳確), 대진(戴震)은 또 “감정과 욕망을 긍정한다”(達情遂欲)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대 학술은 고증학으로 전환하였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관념을 현대 중국철학에 응용하게 되면 매우 복잡한 이론적 효과를 낳게 된다. 이 글에서는 다만 초보적인 논의를 하고자 한다. 마땅히 주의해야 할 것은 쿤의 과학혁명론은 일종의 역사의 단선 진행론을 예정하여 옛날의 패러다임을 대체한 후에는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으로 “문예부흥”의 가능성을 단절해버리는 것과 같다는 점이다. 송학은 한학이 몰락하면서 계승하여 일어난 것이기는 하지만 한학은 단절되지 않았고, 청대에는 또 한학을 기치로 한 학문이 크게 일어났다. 당연히 청학은 한학과 동등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는 나선형식으로 전진하는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같은 이치로 송명 리학은 건가지학(乾嘉之學)이 성행할 때 거의 몰락한 것 같았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또 현대 신유가가 있어 이러한 전통[統緖]을 새로운 모습으로 회복하였다. 이것으로 철학사상 발전의 영역 내에서 패러다임은 한 번 사라지면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실상 부단히 문예부흥이 있는 것이고, 부단히 새로운 시각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부흥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모두 반드시 그에 합당하게 중시되어야만 철학사상의 발전 궤적을 파악할 수 있고, 그에 상응하는 해석을 할 수 있게 된다.
현대에 이르러 서양의 강력한 군사력으로 중국은 자신의 문화가 많은 측면에서 서양에 낙후되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 결과 이른바 “의미의 위기”(意義的危機)가 발생하였다. 장호(張灝)는 5ㆍ4 신문화 운동이라는 반 전통의 광풍이 불 때 “상실”(迷失) 상태는 극치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것은 “도덕 상실”(道德迷失), “실존 상실”(存在迷失), “형이상학 상실”(形上的迷失) 등 다른 측면을 포괄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유가 전통의 패러다임이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어 한 때 선별[揚棄]을 당하는 운명에 처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나는 1995년에 새로 나온 『캠브리지 철학사전』 (Cambridge Dictionary of Philosophy)의 “중국철학” 조목을 편찬할 때 현대 중국철학의 발전을 논하면서 유가사상을 포함한 전통 중국철학은 결코 현대 중국철학의 주류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최근 백 년 이래 서양의 여러 가지 사상이 앞 다투어 들어왔다. 20세기가 곧 마감되는 오늘날 최근 백 년 이래 중국철학의 대세를 총결하면 대체로 아래와 같은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로 득세하고 있는 것은 서양의 자유주의 사상으로 호적(胡適)을 대표로 한다. 그 다음은 마르크스 ―레닌주의 사상으로 모택동을 대표로 하는데 오늘날까지도 중국 대륙 사상의 주도적 원칙으로 그 의식형태의 근거이다. 마지막으로 의도적임을 벗어날 수 없기는 하지만 최근에 갈수록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것은 현대 신유가 사상의 전통으로의 회귀이다. 이것으로 볼 때, 유가사상은 비록 20세기 중국 철학사상의 주류가 아니지만 전통사상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중국 대륙의 학자들 중에도 두유명과 필자의 학설에 동의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현대 중국사상의 전도는 서양철학,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신유가라는 세 가지 사조가 건강하게 상호작용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과 아시아의 네 마리 작은 용이 경제적 기적을 창조한 뒤에 갈수록 많은 학자들이 유가사상은 미래에 중요한 정신 자원을 제공할 수 있으므로 가볍게 볼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21세기로 들어서기 전에 대면하고 있는 사상적 상황이다.
광의의 패러다임론의 관점에서 볼 때, 20세기는 바로 중국이 천지가 개벽하는 것과 같은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에 직면하게 된 때이다.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근 백 년 사이에 연이어서 서양, 마르크스 ― 레닌주의 및 신유가의 패러다임이 출현하면서 내면에서 복잡하게 전통과 현대가 뒤엉켜 패러다임 사이의 시각 영역이 융합하는 상황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관찰하고 탐구해볼 가치가 있다.
전통적 패러다임이 장벽에 부딪치게 된 것은 1919년에 발생한 5ㆍ4 신문화 운동이 그 상징적 사건이라 할 것이다. 5ㆍ4운동의 반 전통은 전면적이고 철저하였다. 그것이 폭발하면서 처음에는 애국운동이 되었고 한 바탕 정치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뒤에는 확대되어 전면적인 신문화 운동이 되었다. 서화파(西化派)의 대표적 인물 호적은 자신이 직접 5ㆍ4 애국운동에 참여하지 않았고, 반대로 그는 이 정치운동에 대해 억지로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5ㆍ4 신문화 운동이 민주와 과학의 구호를 제기하자 호적은 전면에 등장하여 이 운동의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그는 소극적으로 오우(吳虞)의 “유학을 타도하자”(打倒孔家店)는 구호를 받아들였고, 적극적으로 진서경(陳序經)의 “전반서화”(全盤西化)라는 구호를 받아들였다. 뒤에 또 반광단(潘光旦)의 건의를 받아들여 노선을 수정하면서 “전심전력하여 현대화하라”(全心全意的現代化)는 구호를 주장하였다. 어쨌든 호적의 마음속에 전통과 현대는 대립하는 양 극단이었다. 혹은 실용적 목적에서 볼 때, 적어도 호적의 의식 차원에 출현한 전통은 반드시 제거해야만 하는 걸림돌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61년 호적은 “동아시아 과학 회의”(亞東區科學會議)라는 강연에서 중국문명과 인도문명은 정신 가치를 결핍하였다고 비판하면서 서양의 과학과 기술의 근대 문명만이 고도의 이상주의적이고 정신적 문명이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볼 때, 호적이 그의 일생 동안 하였던 사상적 고취는 패러다임의 혁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서양의 과학, 민주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통적 패러다임을 대체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우리가 만약 호적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서 그를 단편적으로 반 전통적 급진주의의 선봉장으로 그린다면 그 당시 중국사상사의 실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전통과 현대 사이에는 더 복잡한 변증법적 관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임육생(林毓生)의 관점에 의하면, 5ㆍ4운동의 반 전통주의자는 중국 전통은 유기체적 정체(整體)로 전통을 타도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전통을 타도하려면 그 전체를 타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같은 정체관의 사유 방식은 바로 중국 전통의 사상을 근본으로 한 일원론적 사상 방식에서 변화하여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임육생은 5ㆍ4 신문화 운동의 정체성은 반 전통주의의 흥기라는 단방향의 길을 다시는 취하지 않고 “주로 세 가지 요소 ― 수입된 서양 문화, 전통 정치 질서가 붕괴된 이후 생겨난 결과, 중국에 깊은 뿌리를 내려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 문화 중에서 몇 가지 경향 ― 가 서로 격렬하게 싸우면서 성립한 것이다”고 논하였다. 임육생의 전통으로써 사상을 견지한다는 결정론적 태도가 학설로서 성립하는지 여부는 또 하나의 다른 문제이지만 그의 예지적 인식은 우리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우리는 호적의 반 전통의 겉모습만을 봐서는 안 된다. 사실 그의 사상은 전통의 제약과 한계를 깊게 받았다. 양정덕(楊貞德)은 표면적으로 볼 때 호적이 듀이(John Dewey)의 실용주의를 크게 주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가 강조한 실제 내용은 스승의 관점과 같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듀이는 외재적 조건의 질서를 중시하였지만 호적은 이른바 “대담하게 가설을 세우고 조심스럽게 증명한다”(大膽假說, 小心求證)고 제창하여 중점을 심리 방면으로 전이시켜 중국의 수신의 전통에 더 접근하였다. 듀이의 사상 중에는 사회참여의 경향을 중시하는 것이 있어서 이미 서양 전통의 자유주의가 개인을 중시하는 경향과는 매우 달랐으므로 중국인이 받아들이기에 비교적 용이하였다. 그런데 호적이 듀이의 주장에서 약간의 진보적인 개량주의 사상을 계승하였지만 사실 중국 전통과 자못 합치된다. 호적 본인은 작은 것을 취하여 평생 고수하였다. 이것은 그의 실제적 행위가 전통과 완전히 합치된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그의 일기 역시 부사년(傅斯年)의 행위가 근본적으로 전통적인 중국의 방식이었다고 관찰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사대부”의 모종의 보편적인 방식으로 가볍게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이 내부에 깊게 침윤된 서화파였던 호적과 부사년의 반 전통적 경향이 단지 폼이나 잡는 것에 불과하였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들의 전통에 대한 파괴는 분명 큰 영향을 주었고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다만 시대가 그들이 원하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된 그 부분적인 원인은 바로 그들이 제공한 방안이 전통의 파괴에 철저하지 못하였고 신속하지도 못하였다는 점에 있다. 호적의 점진적 개량주의는 당시에 직면한 내우외환이라는 중국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그것을 대신하여 흥기하였으면서 갈수록 급진적으로 변한 마르크스 ― 레닌주의 사상이 점차 시대적 사조의 주류가 되면서 서화파는 곧바로 제국의 식민주의 깃발을 들고 소리치는 낡은 사상이라 폄하되었다. 서양화라는 패러다임은 한 때 주도적이었다가 곧바로 한쪽에 내쳐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했던 가장 큰 역할은 급진파의 마르크스 ― 레닌주의 혁명사상에 길을 닦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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