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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 인물
· ISBN : 9788970093109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12-04-20
책 소개
목차
경허의 신화와 진실
01. 고해 속의 물고기, 소년 동욱
02. 이름을 떨치는 강백이 되다
03. 죽음의 처마 아래에 서서
04.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05. 나귀의 일과 말의 일
06. 간화선의 시작
07. 굶주리며 헤매다
08. 콧구멍 없는 소가 되다
09. 깨달음의 경계마저 허물다
10. 첫 번째 설법
11. 주장자를 꺾어 내던지다
12. 천생의 스승, 경허
13. 주정뱅이 선승
14. 그까짓 금덩이는 아무 데나 걸어 두어라
15. 대중은 아는가?
16. 주장자로 때리면 과자 살 돈을 주마
17. 누더기 한 벌, 지팡이 하나
18. 머리를 기르고 훈장이 되다
19. 발자국의 메아리
20. 삶도, 죽음도, 사랑도, 미움도 없다
부록_ 경허선사 연보
참고문헌
경허 문파도
저자소개
책속에서
경허는 천안(天安)의 한 마을을 지나다가 폭풍우를 만났다. 경허는 민가의 추녀 밑에서 비를 피하려 했으나 집주인은 경허에게 한사코 거부의 손짓을 내저으며 말했다.
“저리 가시오.”
쫓겨난 경허는 그 동네의 여러 집을 찾아갔지만 모두 내쫓아서 천지를 분간할 수 없이 퍼붓는 폭풍우를 피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의 야박한 심성을 이상하게 여긴 경허가 쫓아내는 이유를 묻자 분노와 공포에 질린 한 마을 사람이 경허를 질타하듯 말했다.
“이보시오. 뉘신지는 모르겠으나 이 마을은 전염병이 치열하여 걸리기만 하면 서 있던 사람도 죽으니 어찌 손님을 들일 정신이 있겠소?”
경허는 낙숫물이 떨어지는 처마 밑에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주검들이 거적에 덮여 있는 것을 보고 목이 조여들고 숨이 막혀왔다.
…
화상께서 이 말을 듣고 모골이 송연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져서 죽음이 임박하여 목숨이 한 호흡 사이에 끊어질 것 같았으니, 일체 세간이 모두 꿈 속에서 바라보던 경치에 지나지 않음을 알았다.
和尙忽聞其言 毛骨悚然 心神恍惚 恰似箇大限當頭 命在呼吸間 一切世間 都是夢外靑山
허공의 별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
유정과 무정을 다 집어삼키고
다시 집어삼킬 물건이 없어서
사방으로 굶주리며 헤매니
이 무슨 도리인가?
虛空星眠了 喫呑了有情無情
更無可喫物 飢走四處 此理如何
…
예절과는 전혀 상관 없는 굶주림이며 허기이다. 그러나 경허의 허기는 밥이나 국그릇을 쉴새없이 비움으로써 채울 수 있는 단순한 허기나 그리움이 아니었다. 그의 허기는 진실한 삶에 대한 허기였으며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 홀로 나서서 선악과 애증, 깨달음과 미망이 뒤섞인 혼돈의 양극에서 투쟁하며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자의 고독이었다. 그래서 허위에 대한 경허의 거부는 야성의 맹수만큼이나 단호하며, 경허는 그 단호함의 무게에 비례하는 깊은 고독과 우수(憂愁)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구한말의 경허는 이미 현대인의 불안을 넘어서고 있었다.
폭풍우 속에서 보낸 아승지겁의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왔다. 경허는 이제 당나귀의 일과 말의 일 사이에서 방황하는 일이 없는 콧구멍 없는 소가 된 것이다. 콧구멍 없는 소는 콧구멍을 꾄 고삐가 없으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닐 일이 없는 소이다. 바로 자유와 해탈을 상징한다. 그래서 경허는 자신의 새로운 법명을 성우(惺牛), 즉 깨달은 소라고 이름지었다.
…
이처사의 “콧구멍 없는 소(牛無鼻孔處)”라는 말을 전해 들은 화상의 안목은 정히 움직여(眼目定動), 옛 부처 나기 전의 소식이 몰록 드러나 활연히 현전하였다. 평평한 대지가 꺼지고 물(物)과 아(我)를 함께 잊으며 바로 옛사람의 크게 쉰 곳에 이르니 백천법문과 무량한 묘의(妙義)가 당장 얼음 녹듯이 풀렸다.
傳李處士之言到牛無鼻孔處 和尙眼目定動 撞發古佛未生前消息 豁爾現前 大地平沈 物我俱忘 直到古人大休歇之地 百千法門無量妙義 當下氷消瓦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