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또 하루

_ 그리고 또 하루 … 11
_ 거기, 너 … 75
_ 사랑해선 안될 … 143
_ 모텔「피아노」… 211
_ 그대 발 밑에 내 꿈을 깔았으니 … 259
_ 처음 해본 이야기 … 319
_ 표현의 자유 … 375
_ 두 아이 … 425

[그리고 또 하루]

바람이 없는 날에도 나무들은 바람의 모양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숱하게 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천천히 걷던 시간이 문득 갈 곳을 잃은 것처럼,
그렇게 생겼다, 이 섬은.
그 풍경 속에 조금은 설익은 모양으로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바닷가에 앉아 있는데,
둘 다 바다 쪽을 향하고는 있어도
시선의 깊이는 서로 다르다.
아마도 이야기는 여자 쪽에서 계속 했던 모양이다.

여자 당신의 뗏목이 점차 멀어지고 나 혼자 남으면….

남자는 파도를 세는 것처럼 바다를 노려본다.

여자 구름을 봐요.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면서 모양이 바뀌는 걸 보고 있으면 시간이
가죠. 어렸을 때 딱 한 번, 꽃봉오리가 벌어지는 걸 목격한 적이 있었는데, 움직이는
구름을 볼 때 느낌이 그때와 비슷해요. 비밀을 훔쳐보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