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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가톨릭 > 가톨릭 일반
· ISBN : 9788973960682
· 쪽수 : 525쪽
· 출판일 : 2020-05-25
책 소개
목차
약어표
서론
에페소 공의회
제1장 공의회의 교훈적이며 정신적인 배경
테오토코스(qeoto,koj):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그리스도의 일치의 신비
신비와 그에 대한 문제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를 강조
그리스도의 영혼에 관한 문제
이원론에 대한 강조
제2장 네스토리우스와 키릴루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
신학의 결함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로마와 이집트에서 네스토리우스와 관련한 동요
키릴루스,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사람이 되신 말씀에 관한 신학
본성과 위격
키릴루스와 네스토리우스와 교황 첼레스티노
제3장 에페소 공의회
공의회 소집
에페소 도착
공의회 개최
제1회기: 네스토리우스의 폐위
안티오키아의 요한 주교의 도착과 동방 주교들의 교회회의
로마 사절단의 도착과 공의회의 재개
황실 경호대장 요한의 등장, 키릴루스와 멤논과 네스토리우스 체포
마지막 신학적 협상과 공의회 해산
제4장 에페소 공의회 교의
합법적인 에페소 공의회
네스토리우스의 단죄
교의적인 정의가 있었는가?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
433년의 합의, 교회의 공동 신앙
칼케돈 공의회
제1장 에페소 이후 에페소로부터: 에우티케스
키릴루스에 반대하는 동방인들의 저항
키릴루스의 추종자들 사이의 동요
총대주교 프로클루스의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보낸 서한(Tomus ad Armenios)」
에데사의 주교 이바스
키루스의 테오도레투스
테오도레투스의 신학: 「에라니스테스」
수도자 에우티케스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회의와 에우티케스에 대한 단죄
에우티케스의 저항
에페소 제2차 공의회의 소집
제2장 교황 레오와 그가 플라비아누스 총대주교에게 보낸 서한, 에페소 강도 공의회
교황, 수도원장 에우티케스의 오류
총대주교 플라비아누스에게 보낸 교서
교황 레오의 신학
에페소 강도 공의회(449년 8월)
교황에게 항소
교황 레오의 반응
제3장 칼케돈 공의회
새로운 공의회를 향한 길
니케아로 공의회가 소집됨
칼케돈으로 공의회가 옮겨짐
제1차 회기: 총대주교 플라비아누스의 복권
제2차 회기: 새로운 신앙 정식을 위한 노력
제3차 회기: 디오스코루스의 면직
제4차 회기: 개인적인 문제들
제5차 회기: 교의에 대한 정의
제6차 회기: 황제에 의한 승인
제4장 칼케돈 공의회의 교의 결정
신앙정식에 대한 분석과 출처
칼케돈 공의회의 신학
칼케돈 공의회의 교의
제5장 공의회 마지막 회기. 칼케돈 공의회의 규정들, 교황과 공의회
재치권의 경계 설정. 예루살렘 총대주교직의 등장
테오도레투스 주교의 복권
에데사의 이바스 주교 문제
칼케돈 공의회 규정들
칼케돈 공의회 입법의 의미와 중요성
항소 사건에 대한 상급 법원으로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주교와 칼케돈 공의회 규정 제28조
로마 사절단의 항의
교황에게 보내는 공의회 서한
교황 레오와 공의회
교황에 의한 공의회 승인
결론
칼케돈 공의회의 결과
칼케돈 공의회 교의에 대한 저항
황제의 정치
칼케돈 공의회 신학의 영향
교황과 황제
사도좌
교황과 공의회
부록
원문 · 번역문
책속에서
테오토코스(Qeoto,koj):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428년 4월 10일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는 총대주교로 네스토리우스를 선출했지만, 그해 말경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한 논쟁으로 동요되었다. 새로운 총대주교는 이단자들을 반대하여 그의 열정을 불사르면서, 테오토코스(Qeoto,koj), 곧 하느님을 낳은 어머니라는 칭호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그들의 신심 안에서 공경했던 그리스도인들을 반대하였다. 네스토리우스는 이 테오토코스라는 말에 반대하여 설교하게 하였고, 그 자신도 그것에 반대하여 설교하였다. 그는 이렇게 질문하였다. “그렇다면 결국 하느님에게 어머니가 있는 것인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수도에서 사람들은 천천히 동요되었다.
공의회 소집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는 430년 11월 19일자 서한으로 현재의 어려움들을 없앰으로써 교회 안에 안정과 평화를 확고하기 위해 모든 주교들이 모이는 공의회를 소집한다는 그의 결정을 키릴루스 주교에게 알렸다. 황제는 이미 모든 수도대주교들에게 서한을 보냈으며 그해 오순절에(431년 6월 7일) 에페소로 이들을 소집했다. 이들 수도대주교들은 그들의 부주교들을 대동해서 출석해야 했다.
“이 일은 본인에게 아주 소중한 일이기 때문에, 본인은 허가 없이 불참하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그리고 본인 앞에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