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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간증/영적성장
· ISBN : 9788974354831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17-04-07
책 소개
목차
서문
1. 주님, 저는 외롭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2. 내 시간은 주님 손안에 있습니다
3. 두렵습니다. 나를 구원하소서!
4. 하나님을 신뢰하니 나는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5. 하나님의 모성애
6. 외롭고 상처받은 나, 그 덫에서 풀어 주시는 여호와
7. 배신자까지도 품으시는 여호와
8. 저녁에도, 아침에도, 정오에도 내 목소리를 들으시는 주님
9. 두려워해도 괜찮습니다
10.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기록하십니다
11. 올바른 두려움
12. 좋은 일이 없을 때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13. 올바른 자랑
14. 얼굴의 광채와 천사들
15.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
16. 우리가 모든 소망을 잃었을 때 주님은 가까이 계십니다
17. 죽을 것 같은 나를 주님께서 도우셨습니다
18. 사악한 자는 윤택하지 못하다
19. 우리가 우둔할 때 하나님이 손을 잡아 주십니다
20. 이 땅에서는 사모할 것이 없습니다
21. 주님은 죽음에서도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22. 우리가 특별하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23 유혹을 이기도록 도와주소서
24. 하나님은 외로운 사람에게 가족을 주신다
25. 예배는 정말 중요하다
26.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
27. 아무런 보장이 없는데도 평안한 이유
28. 우리의 슬픔을 역사적 관점에서 생각하라
29. 주님은 우리 마음이 원하는 바를 주십니다
30. 내가 초조하고 넘어질 때에도 ‘샬롬’은 있다
31. 그래서 이제 이것을 나만 간직할 수 없다
부록 A. 수영하며 시편 묵상하기
부록 B. 바퀴 자국이 언제 트랙이 되는가?
시편 23편에 숨겨진 약속
주/ 참고 문헌/ 성구 색인/ 역자 후기
책속에서
그 열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히브리어 단어인 ‘헤세드’라는 명사에 놓여 있다. 이 단어는 시편 13편 NIV역에서는 “변함없는 사랑”(unfailing love)으로 번역된다. 이는 주님의 확고한 언약적 사랑과 우리 곧 그분의 백성을 향한 주님의 무한한 자비와 긍휼의 은혜를 표현한다. 이 단어는 시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에 대답한다. ‘헤세드’의 변함없는 확고함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단 한순간도 우리를 잊으신 적이 없고 앞으로도 절대 잊지 않으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헤세드’는 “얼마나 오래도록?”이라는 세 번째 질문에도 답한다. ‘헤세드’의 본질은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돌보시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지 않을 때, 또는 끝없이 계속되는 슬픔을 없애 주지 않으실 때,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를 돌보시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한 지혜와 사랑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를 위한다. _ <01. 주님, 저는 외롭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중에서
히브리어 본문은 우리의 위급(두려움, 공포)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가를 영어 번역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보여 준다. 우리가 ‘끊어졌다’라고 번역한 동사의 근본적 의미는 근절시킨다(exterminate)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 명사 ‘도끼’와 연관되는데, 이 동사는 구약에서 이곳에만 나타난다. 이렇게 드물고도 폭력적인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시인의 공포가 그로 하여금 과도하게 두려워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이 주님의 시야에서 완전히 지워졌으며, 도끼로 찍혀 잘리듯 그분의 선하심에서 영원히 끊어졌다고 생각했다.
_ <03. 두렵습니다. 나를 구원하소서!> 중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미래에 모든 일을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항상 감사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습관이다. 우리는 악으로부터 선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환경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그분의 약속을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치료되지 않은 엄청난 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도 하나님께 감사만을 드려야 한다는 허위에 저항한다. 계속 하소연하는 대신 오직 감사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학의 위험은, 그렇게 강요된 감사는 우리의 고뇌 위에 종교성이라는 겉치장을 덮어씌우고 때로는 우리가 슬퍼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치료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슬픔으로 고통당하고 있을 때 그것을 억누르려 해서는 안 된다. 종교적 경건이라는 명목으로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_ <08. 저녁에도, 아침에도, 정오에도 내 목소리를 들으시는 주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