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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가톨릭 > 가톨릭 성서 > 성서의 이해
· ISBN : 9788976354228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23-12-18
책 소개
목차
서문 _004
여는 말 _008
추천의 말 _022
한국어판 여는 말 _024
일러두기 | 약어 _027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사회
1. 입문 _037
2. 이스라엘 이전의 가나안(기원전 15-12세기) _039
2.1. 역사 개요 _039
2.2. 후기 청동기 시대 정치와 문화의 역사 _040
2.2.1. 지리와 자원, 그리고 그것이 지정학에 미친 영향 _040
2.2.2. 권력과 지배를 위한 투쟁 _041
2.2.3. 이집트(18왕조) _042
2.2.4. 밋탄(후르인) _043
2.2.5. 하티(히타이트) _044
2.2.6.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_046
2.3. 이스라엘 이전의 이스라엘 _048
2.3.1. 이집트의 원-이스라엘인? _049
2.3.2. 가나안의 원-이스라엘인 _053
2.3.3. 성경의 성조 _056
3.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의 시작(기원전 12-11세기) _064
3.1. 역사 개요 _064
3.2. 기원전 13-12세기 정치와 문화의 역사 _064
3.2.1. 이주와 바다 민족 _066
3.2.2. 이집트의 반응 _068
3.3. 이스라엘의 등장: 성경의 이집트 탈출과 정복 _069
3.3.1. 이집트 탈출을 언급하는 성경의 출처 _070
3.3.2. 가나안 정복: 칼로 또는 말씀으로? _073
3.3.3. 정복 가설 _073
3.3.4. 목축 유목민 가설(침투 모델) _076
3.3.5. 농민 봉기 가설(봉기 모델) _077
3.3.6. 개척자 정착 모델 _078
3.3.7. 농촌화 가설 _078
3.3.8. 종합 _079
4. 이스라엘의 지파(기원전 12-11세기) _081
4.1. 역사 개요 _081
4.2. 정치와 문화의 역사 _081
4.3. 이스라엘의 부족사회 _083
4.3.1. 고고학적 통찰 _083
4.3.2. 부족사회 모델들과 판관기 _087
4.3.3. 땅과 두루마리에 남은 이스라엘 지파의 흔적 _091
5. 이스라엘과 유다의 족장 체제와 왕정(기원전 11세기 말에서 9세기 초까지) _092
5.1. 역사 개요 _092
5.2. 정치와 문화의 역사 _092
5.2.1. 레반트 남부에 관심 없는 아시리아 _093
5.2.2. 레반트를 지배하려는 이집트의 시도 _093
5.2.3.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페니키아의 간접 지배 _095
5.2.4. 지역 족장과 왕 사이의 사소한 접전 _097
5.2.5. 요르단 동쪽 _098
5.2.6. 아람 왕국들 _098
5.2.7. 필리스티아의 팽창 _100
5.3. 이스라엘과 유다의 족장 체제 _101
5.4.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정을 향한 단계 _104
5.5. 완전히 수립된 왕국을 향하여 _107
5.5.1.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의 정치적·군사적 긴장 _107
5.5.2. 오므리 왕조 _108
6. 아시리아 팽창의 첫 물결(기원전 9-8세기) _111
6.1. 역사 개요 _111
6.2. 정치와 문화의 역사 _111
6.2.1. 앗슈르나시르팔과 샬만에세르 3세 치하에서 아시리아의 팽창 _113
6.2.2. 아다드-니라리 3세가 도입한 새로운 정치 전략 _115
6.2.3. 다마스쿠스의 정치적 전성기 _118
6.3. 기원전 9세기와 8세기 이스라엘의 흥망성쇠 _120
6.3.1. 아시리아와 이스라엘의 관계 개요 _120
6.3.2. 사마리아의 정치적 음모 _122
6.4. 이스라엘 통치 아래에서 유다 _133
6.4.1. 오므리 왕조와 맺은 결혼 조약의 암울한 면 _133
6.4.2. 요아스 치하에서 종교의 쇄신(기원전 836-798) _135
6.4.3. 유다식 야훼주의 _137
6.4.4. 유다-사마리아의 본격적인 봉신(기원전 790-750) _139
7. 최초의 세계 제국 아래에서 살기(신아시리아 시대: 기원전 8-7세기) _142
7.1. 역사 개요 _142
7.2. 정치와 문화의 역사 _143
7.3. 아시리아 제국의 시작(기원전 744-727) _144
7.3.1. 티글랏-필에세르 3세 통치의 개요 _144
7.3.2. 티글랏-필에세르 3세의 영토 및 군사적 팽창 _145
7.4. 샬만에세르 5세와 사르곤 2세 치하에서 이루어진 아시리아 팽창의 새 물결 _158
7.4.1. 사마리아의 함락 _160
7.4.2. 아시리아에 대한 유다의 충성 _163
7.5. 산헤립에서 앗슈르바니팔까지 _163
7.5.1. 반아시리아 연합에 참여한 유다 _167
7.6. 제국 통치 아래에서 살기 _170
7.6.1. 이주 _170
7.6.2. 아시리아의 행정 구조 _172
7.6.3. 아시리아의 정보망: ‘빅 브라더의 눈’ 아래에서 _175
7.6.4. 예언과 새로운 신학적 흐름 _178
8.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빌로니아 유배(기원전 7-6세기) _180
8.1. 역사 개요 _180
8.2. 정치와 문화의 역사 _180
8.3. 아시리아의 말기 _181
8.3.1. 독립을 위한 이집트의 투쟁 _181
8.3.2. 메디아의 보복 _182
8.3.3. 나보폴라싸르의 바빌로니아 부흥 _184
8.4. 아시리아의 멸망과 바빌로니아의 부상 _185
8.4.1. 승자들 사이의 고대근동 분할 _187
8.4.2. 유다의 정치적 줄타기와 예루살렘의 멸망 _189
8.4.3. 유다의 위기에 대한 바빌로니아의 해결책 _192
8.5. 바빌로니아 통치 아래에서 살기 _194
8.5.1. 바빌로니아 왕국의 특성 _195
8.5.2. 유배의 다른 현상 _196
8.5.3. 바빌로니아 문화 _197
9. 유배 후 복구(페르시아 시대: 기원전 6-4세기) _199
9.1. 역사 개요 _199
9.2. 정치와 문화의 역사 _199
9.2.1. 페르시아 반란 _200
9.2.2. 페르시아 제국의 정점과 붕괴 _201
9.3. 유배지에서의 귀환과 유다의 재건 _203
9.3.1. 페르시아 국제 정책에서 유다의 위치 _203
9.3.2. 유다와 예루살렘의 재건 _205
9.3.3. 그리스, 이집트, 유다인의 관점에서의 페르시아 _209
9.3.4. 유배자들과 귀환자들 사이의 긴장 _211
옮긴이의 말 _213
참고 문헌 _214
책속에서
고대 이스라엘 역사의 재구성은 고고학적 자료, 성경 외 문서(고대근동의 비문, 편지, 계약서 등), 그리고 성경 본문을 고려해야만 한다. 최근 역사학은 다른 나라들의 역사를 결정짓는 데 물질적 증거뿐만 아니라 기후와 지질 조건의 중요성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모든 지리적·사회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의 천재성이 없었다면 헬레니즘 제국은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뛰어난 왕들은 국경선을 변경할 뿐만 아니라 지리와 지정학을 바꾼다. 그래서 역사가는 고고학과 기록된 사료 외에 인간의 천재성, 자연, 지역의 모습, 기후, 그리고 인간 역사에 얽힌 다른 요인들도 고려해야 한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이집트 탈출이 페르시아 시대와 헬레니즘 시대에 핵심적인 신학적 주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세상 창조에 비유되고 예배에 연결되었으며, 이스라엘 법체계의 신학적 기초의 하나가 되어 땅을 차지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이끌어 내셨다는 것은 이스라엘 신조의 중심 기둥 중 하나가 되었다. 이스라엘이 형성되기까지의 역사가 아주 복잡한 과정이었지만, 이집트 탈출을 언급하는 성경 본문은 유배기 이후에 서로 긴장 관계에 있던 매우 이질적인 집단들의 공통된 정체성을 개발하려고 노력했던 이스라엘의 ‘역사기술’과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발생은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노예가 이주한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과정이었다. 이집트에서 셈족 노예들이 탈출한 것은 복잡한 민족 발생의 많은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바다 민족이든 이스라엘이든 혹은 다른 집단들이든, 새로운 유입자들이 요르단 동쪽과 가나안을 정복했다는 사실은 부분적으로 입증되었지만, 그 점은 후기 청동기와 철기 시대의 전환기에 작용한 다른 역학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게다가 야훼주의yhwh-ism의 역할을 경시할 수 없다. 각기 다른 민족과 사회 집단을 통합한 야훼주의는 이스라엘 민족의 발생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로 마땅히 받아들여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