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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자기계발 > 행복론
· ISBN : 9788976777188
· 쪽수 : 368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도대체 무엇을 위한 인생인가 | 인트로 ‘난문쾌답’을 위한 구조조정
PART 1 생명의 몸살
BigQ 1 한번 태어난 인생, 왜 이렇게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워야 하나?
1-1 Real Q 사는 게 고달플 땐 생의 모멘텀을 어디서 구해야 하나요?
1-2 Real Q ‘불안’과 ‘두려움’이 끈질기게 따라올 때 극복할 방법은 있는 걸까요?
1-3 Real Q 가슴속에 분노가 가득한데 이 분노를 다스릴 수 있을까요?
BigQ 2 착한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나?
2-1 Real Q 선한 ‘부’와 악한 ‘부’가 따로 있다면 재테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PART 2 고독한 영혼의 초월본능
BigQ 3 우리는 왜 자기 인생에 쉽게 만족하지 못할까?
3-1 Real Q 외로움과 고독은 어떻게 다른가요?
BigQ 4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알 필요가 있을까?
4-1 Real Q 기도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4-2 Real Q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만 하는 ‘얌체기도’에도 응답이 있을까요?
BigQ 5 악한 사람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례는 대체 뭔가?
BigQ 6 극단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BigQ 7 우리나라는 종교가 번창한데 사회 문제는 왜 그렇게 많나?
PART 3 내 인생의 비밀코드
BigQ 8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대체 어디에 숨어 있나?
BigQ 9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증거가 있나?
9-1 RealQ 내가 사는 이유를 찾을 방법이 있을까요?
BigQ 10 창조와 진화에 관한 생각은 영원히 평행선인가?
BigQ 11 과학이 더 발달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질까?
PART 4 피할 수 없는 물음
BigQ 12 악인의 길과 선인의 길은 미리 정해져 있나?
12-1 Real Q 다 용서하면 행복해진다고요? ,
BigQ 13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나?
BigQ 14 천국과 지옥이 우리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BigQ 15 지구의 종말이 오긴 오는 걸까?
15-1 RealQ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좌절의 순간 출구는 어디에 있나요?
15-2 RealQ 꿈을 향해 달려가지만, 꿈은 자꾸 도망가고 이를 어찌해야 하나요?
에필로그 추격전에 나선 형사처럼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묻게 해줍니다. 음식점에 갔는데 종업원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장 나오라고 그래!” 하고 항의하듯이, 우리는 살면서 문젯거리가 생길 때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합니다. 이를 빗대어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고통으로 대표되는 한계 체험을 ‘최종적 포괄자’를 위한 암호라고 말했습니다. 어떠한 것이 되었든지 사람이 겪는 어려움은 ‘최종적 포괄자’ 하느님을 찾게 하는 구실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통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최종적 포괄자와의 상관관계를 짚어보면서 더 넓고 높은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홀로 운전을 하거나 일을 하는 동안 또는 설거지나 청소를 하는 동안, 그 침묵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시도해볼 수도 있습니다. 주어진 일, 습관이 시켜서 하는 일을 멈추고, 잠깐 나 자신에게 묻는 것입니다. ‘지금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너를 어떻게 대해줄까? 너 참 사느라고 고달프지?’
이는 독백 같지만 엄연한 대화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내가 내면의 ‘나’와 나누는 소통인 것입니다. 이 대화는 우리가 절친과 나누는 대화보다 훨씬 진솔하고 따뜻합니다.
침묵과 친해지기 위해 가벼운 산책이나 여행으로 시야를 넓힐 수도 있습니다. 오직 나와 일대일로 대면하는 세상 속에 뛰어들면 새삼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천하의 나쁜 놈’들에게 벼락을 내리시지 않는 신은 신이 아니거나 아니면 없거나 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누군가 울분을 터트린다 해도, 그 ‘의로운 분노’는 옳습니다.
고집스럽게 성실의 법칙을 따라 사는 노력파보다 교묘하게 사기의 법칙으로 사는 요령파가 더 잘사는 꼴을 봐주기란 정말로 분통 터지는 일입니다.
만일 신이 있다면 왜 이런 어거지가 용납될 수 있을까요? 초간단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신은 벌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적어도 현세에서는 말입니다.
흔히 신은 상선벌악賞善罰惡으로 인간의 행위에 보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상선벌악의 시행은 궁극적으로 사후 또는 종말의 때에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현세에서 그 중간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마지막 때로 유보되어 있을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죄인 또는 악한 사람에게 회개(또는 회심)의 기회를 주기 위한 신의 자비가 그 이유입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양심이라는 것이 있으니 언젠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마음을 고쳐먹기를 기다려주는 신의 자비가 바로 그 답답한 침묵의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