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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요리/살림 > 술/음료/차 > 술
· ISBN : 9788984988743
· 쪽수 : 300쪽
리뷰
책속에서
와인이 전파된 길을 추적해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와인의 전파는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대개 군대의 이동 경로와 함께 한다.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식민지를 넓혀가던 군대는 주둔지 근처에 포도나무를 심어 재배했고 이로 인해 포도재배 기술과 와인 문화가 함께 전파되었던 것이다.
와인 산업의 발달은 파티 문화와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와인은 파티를 흥을 돋우고 분위기를 내기에 적절한 음료다. 그러나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던가. 오랜 세월 승승장구했던 로마는 그 화려한 문화를 꽃피움과 동시에 멸망한다. 초기의 도전 정신이 사라지고 안락한 평화의 시간 속에서 향락 문화만이 발달한 탓이다. - p.124 중에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해상 무역이 매우 활발해졌다. 긴 뱃길에 오르는 선원들을 위해 준비한 와인은 오랜 항해를 거치는 동안 맛이 변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알코올 도수가 높은 브랜디를 와인과 섞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가짜’ 와인은 배에 실려 뜨거운 적도를 통과하고 대서양을 건너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숙성이 되었고, 오묘하고 깊은 맛이 일품인 새로운 와인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가끔은 ‘가짜’가 새로운 ‘창조’의 신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코냑 지방의 와인은 산도가 강하고 타닌과 당도가 부족해 좋은 와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저급 와인을 증류시켜 만든 코냑 브랜드는 40도에 이르는 알코올 도수로인해 부두 노동자 같은 하층민에게는 인기 있는 술이었다. 그러다 차츰 독주에 대한 선호가 떨어지고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자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그 방법으로 오크통 속에서 숙성 과정을 거친 다음에 비로소 싸구려 술이라는 오명에서 탈피해 고급술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이처럼 새로운 창조는 언제나 예상과는 달리 엉뚱한 곳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실수’로, 혹은 ‘가짜’로 태어난 것이 기품 있는 명품으로 거듭나곤 하는 것이다. 특히 와인의 세계에서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깊고 더 놀라운 맛의 와인을 만나게 해주는 신선한 기쁨이 된다. - p.154 중에서
와인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크게 네 가지 요소로 구분되는데 포도 품종, 토양(생산지)과 기후(생산년도), 그리고 양조 기술이 그것이다. 포도의 품종이나 품질은 결국 기후와 토양, 재배 기술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듯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 훌륭한 포도가 재배될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 이유를 ‘다음 세대를 위한 자기희생’이라는 위대한 자연 법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척박한 토지에서 자라는 포도나무는 양분을 찾아 더욱더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가까스로 흡수한 양분이 오로지 건실한 열매를 맺는 데 쓰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무성한 잎과 튼튼한 가지를 만들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고서 말이다. 이는 다음 세대를 위한 포도나무의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질 좋은 포도는 언제나 앙상한 포도나무 가지에서 나오는 법이다. - p.165 중에서